17. 선영이

by 진우


“예, 어무이. 별일 없지예? 예, 예. 저희는 잘 있습니더. 명희는요? 학교 잘 다닙니꺼? 예, 어무이. 저희들이 면목이 없습니다. 저희들 걱정은 하지 마이소. 예, 예, 알고 있습니더. 예. 장사 잘 됩니더. 다음 달에 부산 함 갈 게예. 예, 어무이. 들어 가이소.”

명희 아버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이고, 저 양반이. 어데서 담배를 피울라 카능교? 필라믄 나가서 피소.”


명희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길가에는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군항제가 열리는 기간이라 길에는 오가는 차들로 붐볐다. 명희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혼잣말을 했다.

“길에는 사람들이 저리 많은데, 장사는 우째 이리 안 되노?”


노모에게 어린 명희를 맡겨 두고 부산을 떠난 지도 벌써 오 년이 지났다. 몇 년만 고생해서 부산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가게는, 그러나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가게를 시작하자마자 불어 닥친 오일 쇼크와 유례없는 경기 불황까지 겹쳐, 넘쳐 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길바닥의 개들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은 헛된 우스개가 된 지 오래였다. 그나마 경기가 나빠 집주인이 가게를 비워 달라거나 월세를 올려 달라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권리금을 합쳐서 그간 들어간 돈을 되찾으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고생을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만큼 부산으로 갈 시기는 더 멀어졌다.


처음에 부산 남포동에서 내 가게를 가지고 장사를 할 때만 해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경쟁이 치열한 부산보다는 한결 돈 벌기가 나을 거라는 주위의 말을 듣고 마산으로 옮긴 것이 잘못의 시작이었다. 부산의 가게를 내놓고 마산으로 세를 얻어 옮기고 보니 한 집 건너 한 집이 식당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꽤 많은 옷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물론 잘 되는 집은 잘 되었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집이 잘 되는 집이 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그때의 시장 분위기였다. 좀 더 알아보고 난 다음에 결정했어야 될 일이었는데, 섣부른 판단을 후회해본들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일일 뿐이었다.

유치원에도 입학하지 않은 명희를 마산으로 데려오려면 따로 애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죽어도 부산을 못 떠난다는 노모의 고집에, 할 수 없이 어린 명희는 부산에 두고 국민학교 오 학년이던 큰딸 선영이만 같이 오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마산은 교육열이 높아 아직도 평준화가 되지 않아서 학원비를 포함, 따로 들어가는 돈이 많았다.


다행히 선영이가 공부를 곧잘 해서, 주위 사람들은 훌륭한 딸 덕에 나중에 호강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당장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기에도 벅찬 살림살이가 명희 아버지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다.

속 깊은 딸 선영이는, 장차 음악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을 미리 알았는지 작년부터 주산, 부기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명희 아버지도 선영이의 그런 장래 희망과 학교 성적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영이에게 가정환경이 이러하니 꿈을 접으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영이가 주산을 배운다고 했을 때 어린 딸의 그 속을 짐작하면서도, 그래, 그걸 배우면 수학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취미로도 좋지 않겠나, 하며 허락을 해 버렸던 것이다.


손님이 없어서 일찍 가게 문을 닫고 늦은 저녁상을 차렸다. 제 방에서 공부하던 선영이가 주전자를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선영이, 오늘도 공부 열심히 했나?”

“네……”

선영이는 힘없이 대답했다.

“와? 니 어데 아프나? 열은 없는데……”

명희 어머니가 선영이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 잠시 후에 선영이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버지, 학교에서 진로 결정해야 된다고 부모님 오시라 하던데요.”

“진로 결정? 그기 먼데?”

“에헤이, 이 사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니 무슨 애 공부가 되겠노? 고등학교 어디로 갈 건가 물어보는 거 말이다.”

명희 아버지의 타박에 어머니가 입을 실룩거렸다.

“뭐 그런 거는 그냥 학교에서 알아서 하믄 되는 거지, 머 할라꼬 바쁜 부모들을 오라 가라 하노?”

“거 참 이 사람이, 선영이 말 좀 들어 봐라.”

명희 아버지는 다시 표정을 고쳤다.

“그래, 선영아. 니 생각은 어떻노?”

“잘……모르겠어요.”

“그래? 아빠 생각에는……”

선영이가 기대에 찬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험, 험. 그래, 아빠 생각에는, 니 희망이 먼지, 니 성적이 어떤지 잘 안다. 그런데 니도 알다시피 우리 형편이……”

“아버지, 저도 잘 알아요. 근데……”

“근데?”

“아버지, 아버지랑 엄마 고생하는 거 잘 아는데 더도 말고 저 고등학교까지만 보내 주세요. 그럼 대학은 제가 알아서 갈게요. 예?”

“그럼 니 실업계 간다 말이가?”

엄마가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다.

“그게 아니고, 엄마. 인문계 고등학교까지만 보내 주시면 대학교 등록금이나 입학금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러니까 아빠, 엄마 고생하는 거 잘 아는데……”

선영이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야가 밥상머리에서 와 울고 지랄이고? 뚝 못 그치나?”

명희 어머니가 선영이의 등 짝을 때렸다. 선영이는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그러니까 인문계 가라고 허락만 해 주세요. 그럼 제가 밤에 공장을 다녀서라도 졸업할 게요. 예, 아버지.”

그러자 어머니가 소리를 쳤다.

“야이, 가시나야. 니 미친나. 밤에 공장 다니고 낮에 공부할 바에야, 차라리 낮에 공장 다니고 밤에 공부해라. 딴말 말고 그냥 야간 실업계 가라. 니 말대로 우리 형편 잘 알면은. 야간 가서 낮에는 은행에 다니고 저녁에 공부하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그야말로, 그 머꼬, 일석이조 아이가? 그라고 니, 니 동생 명희는 생각 안 하나? 갸도 낼모레면 중학교 갈 낀데, 갸는 어쩌고? 니 고등학교, 명희 중학교? 너그 부모가 어데 떼돈을 버는지 아나? 아서라. 니 맘은 다 아는데 우리 집 형편을 생각해라.”

“엄마, 제발……”

“제발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내가 내일 선생님한테 찾아는 못 가고, 전화로 말할 테니까 니는 그냥 실업계, 여상 가라, 여상. 너그 사촌, 애자 언니 봐라. 실업계 가서 학교 다닐 때부터 돈을 척척 벌더만 나중에 은행 가서 떡 하니 좋은 신랑 만나 갖꼬, 떡 두꺼비 같은 애를, 그것도 둘, 둘이나 낳아서 떵떵거리며 산다 아이가? 다음 달에 아파트도 산다 카더라. 나는 그 행님 보면, 세상에 무신 저런 임금 팔자가 다 있겠노 싶더라.”

“엄마, 나는 교대를 가서 선생님이……”

“시끄럽다. 그래, 인문계 가서 대학 가면 니는 폼은 잡고 좋겠지. 근데 저 우엣집 진태 총각 봐라. 사년제 나와 갖꼬 지금 몇 년이고, 우리 마산 올 때 졸업했으니까네, 그래, 오 년째 집에서 놀고 묵는다. 그기 사람 할 짓이가? 실컷 집에서 돈 갖다가 대학생이라꼬 오만 폼 다 잡다가 지금도 육십 넘은 저그 부모 피 빨아 묵고 산다. 니는 그기 부럽나?”

“에헤이, 당신은 무슨 말을 그리 하노? 폼은 머고 또, 피를 빨다니.”

명희 아버지의 핀잔에 명희 어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봐라, 선영아. 우린들 와 니 공부 안 시키고 싶겠노? 대학이 아니라 부자들만 간다는 그 머꼬, 그래, 해외 유학이라도 보내주고 싶다. 돈만 있다믄. 그런데 니도 인자 나이 열여섯 아이가? 우리 형편을 봐라. 우리가 우째 사는지를. 아이고, 우짜다가 우리가 딸년 대학도 못 보내는 꼴이 됐노? 아이고.”

명희 어머니는 급기야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런 어머니를 이젠 오히려 선영이가 다독거렸다.

“엄마, 울지 마세요. 그래요. 알겠어요. 저, 엄마 말대로 실업계 갈 게요. 아버지, 저 그렇게 할게요.”

“니 그 말 참말이제?”

명희 어머니가 엉엉 우는 소리를 내다가 얼굴을 가렸던 치맛자락을 살짝 내리고 선영이를 쳐다보았다.

선영이는 너무 속이 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에이, 밥 묵다가 이게 무신 짓이고?”

명희 아버지는 수저를 탁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명희 아버지는 방파제 위를 걸었다. 한참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열두 시가 이미 넘었다.

저녁 밥상 앞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도 공부가 되는지 선영이의 방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명희 어머니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명희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꺼내 식당 탁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계산대 위의 휴대용 라디오를 가져와서 틀었다.

늦은 밤이라 작은 라디오 소리가 식당 홀에 크게 울렸다. 명희 아버지는 급히 소리를 낮추었다. 라디오에서는 심야 음악 방송을 하고 있는지 감미로운 연주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명희 아버지는 연신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나 술은 취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더욱 또렷해질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계속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것은 다시 가게 문틈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갔다. 활짝 핀 벚꽃이 달빛에 눈부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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