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났다. 사흘 동안 추적추적 비가 내린 탓에 벚꽃이 많이 떨어졌다. 나뭇가지 끝에서 하늘거리던 벚꽃이 바닥에 떨어지니, 멀리서 보면 꼭 한겨울에 눈이 내린 것만 같았다.
명희 아버지는 손님이 나간 자리를 닦으며 시계를 보았다. 열 시가 훌쩍 넘었다. 더 이상 손님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가게 문을 닫고 슬슬 정리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가게 문이 다시 드르륵 소리를 냈다. 손님이 왔다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인사부터 하고는 고개를 돌려 보니 선영이가 문을 열고 서 있었다.
“아, 선영이가? 왔나?”
“네. 아버지. 근데 아버지……”
선영이가 문간에 서서 들어오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안 들어오고 머 하노? 무슨 일인데?”
선영이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곧 그 그림자도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명희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어? 선생님, 최 선생님 아입니꺼?”
가게로 들어 선 사람은, 선영이의 담임인 최상훈 선생이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잘 계셨습니까?’
최 선생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엉겁결에 명희 아버지도 맞절을 하다시피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봐라, 명희 엄마야. 선영이 담임 선생님 오셨다. 머 하노? 퍼뜩 나와서 인사 안 하고.”
“머라꼬요? 선생님이요? 이 늦은 시간에, 하이고. 선생님예.”
선반 너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명희 어머니가 물 묻은 손을 행주에 닦으며 서둘러 나왔다. 명희 어머니도 선생님을 보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런 누추한데 우짠 일이십니꺼? 보자, 아이고 선영아, 니는 머 하노? 선생님께 빨리 의자 내 드리라.”
“선생님, 진짜 누추합니더. 여기 앉으이소.”
“아뇨, 가게가 좋은데요? 아담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데가 다 이렇심니더. 아이고, 맞다. 선생님, 식사는 하셨습니꺼? 준비 좀 하까예?”
명희 아버지가 서둘렀다. 그 말을 듣고 최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아버님. 저녁 먹고 왔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내 집에 온 손님 아입니꺼. 아이고, 내가 정신이 없네, 손님이 머꼬. 우리 딸 담임 선생님이신데, 내가 그랄 수는 없지요. 보소, 명희 엄마요. 여기 선생님 자실 거, 좀 빠알리, 빠알리 준비 좀 해 오소, 어이?”
“맞네, 내 정신 좀 봐라. 내가 선생님 얼굴 보다가 정신을 놓을 뻔했네.”
명희 어머니는 서둘러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곧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났다. 선영이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조용히 서 있었다.
“선생님, 이거 좀 자시 보이소. 맛은 별로 없지만 따뜻한 기운에라도 드실 만할 낍니더.”
“제가 늦은 시각에 민폐를 끼치는군요.”
최 선생은 아귀찜을 한 젓가락 집어 접시에 덜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후후 불고 입에 가득 넣은 다음 우적우적 소리가 나도록 씹었다. 입 속에 들어간 아귀찜이 뜨거웠는지, 최 선생이 천장을 쳐다 보고 붕어처럼 입을 벙긋벙긋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제야 명희 아버지와 명희 어머니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아버님, 진짜 맛있습니다. 저 이제 여기 단골 해야겠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단골이라니요. 언제든지 오이소. 선생님은 전부 공짭니더, 공짜.”
무슨 일로 이 늦은 시각에 가게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최 선생의 그런 가식 없는 태도가 명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명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몇 번의 젓가락을 정신없이 놀리던 최 선생이 갑자기 명희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명희 아버지가, 왜 그러나 싶어 숨을 꿀꺽, 삼켰다.
“저, 아버님. 죄송합니다만.”
“예, 말씀하이소.”
“아버님, 저……소주 한 잔 주실랍니까?”
“예, 예? 소주요? 아, 아하하하하. 난 또 머라꼬. 아이고, 드리다마다요. 명희 엄……”
명희 어머니가 이미 소주와 잔을 들고 옆에 서 있었다.
“아버님, 한 손으로 받으셔도 됩니다.”
“어데예. 감히 언감생심 선영이 담임선생님하고 대작을 하다니, 내가 죽을 때가 다 되었는갑십니더.”
“하하, 아버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이제 겨우 서른다섯 살입니다. 아버님의 막내 동생이나 조카 뻘 밖에 안될 겁니다.”
“와아, 그래요? 나는 선생님이 너무 젊어서 인자 한 스물다섯이나 됐겠나 싶었는데, 허허허.”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그런 공치사와 함께 몇 번의 술잔이 더 오갔다. 명희 어머니와 선영이는 나란히 옆 탁자에 앉았다.
최 선생이 온 지도 두어 시간이 지나 벌써 자정이 넘었다. 세 병의 소주를 마신 탓에 최 선생도 명희 아버지도 얼굴이 제법 발갛게 달아올랐다.
“선영이 아버님.”
다시 잔을 건네면서 최 선생이 말했다.
“예, 선생님. 말씀하이소.”
명희 아버지가 최 선생을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
“아버님, 선영이 진학 문제 말입니다.”
“예.”
“사실 제가 오늘 그것 때문에 아버님을 뵈러 왔습니다.”
“마, 저도 대강은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더.”
“아버님의 따님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아버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 말씀이라믄 안 하셔도 안 되겠습니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가 자꾸만 부모 도리를 못 한 거라 창피할 뿐입니더.”
“아버님, 그런 게 아니고.”
“선생님, 무슨 말 하실 지 잘 압니더. 그런 말이라면 우리는 결정 봤습니더.”
명희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이 사람이, 여그가 어데라고 끼어 드노? 어서 방으로 가라. 선영이도.”
명희 아버지가 명희 어머니를 나무랐다.
“아닙니다. 어머니와 선영이도 같이 들으셔야 됩니다.”
최 선생이, 일어서려는 명희 어머니와 선영이를 만류했다.
“아버님, 역시 판단은 아버님께서 하시겠지만, 우선은 담임인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명희 아버지가 다시 잔을 들이켰다.
“아버님, 선영이 장래 희망이 뭔지 아십니까?”
“예.”
“그럼 선영이 학교 성적이 어떤 지도 잘 아시잖습니까?”
“……”
“선영이는 장차 음악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교사지만 사실 교사라는 직업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영이에게는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꿈입니다. 아버님.”
“압니더, 선생님. 하지만 그 꿈이라는 것도 이룰 수 있는 뒷받침이 되어야 되는 거 아이겠습니꺼?”
“선영이는 꾸준히 전교 오 등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입니다. 저희 교장 선생님까지도 선영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수한 자질과 능력을 가진 선영이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실업계를 가야 한다니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꼭 돈을 벌라 하는 기 아이고……”
“아버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실업계를 보내시려는 거 아닙니까?”
“선생님, 말씀이 좀……”
명희 아버지가 술잔을 탁, 하고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아버님. 지금은, 공부를 못해 성적이 나빠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이 문제지, 선영이처럼 훌륭한 학생이 돈이 없어서 진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것은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진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 말씀대로라면 선영이는 굳이 지금 공부할 필요 없이 지금은 그냥 돈이나 벌고, 나중에 이제는 대학가도 되겠다 싶을 때 대학에 가면 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때를 놓친 공부는 공부가 아닙니다. 남과 같이 달릴 때, 그것이 경쟁이고 그것이 재미있는 것이지, 시간이 다 지나고 남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 뒤늦게 아, 내가 이제 한 번 뛰어 볼까, 하는 것은 경기도, 경쟁도, 게임도 아닌 혼자 만족일 뿐입니다. 선영이는 지금 재미있는 경쟁을 해야 하고, 충분히 그 경쟁에서 이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아버님, 외람되지만 아버님께서는 그전에 유복하셨습니까?”
“……”
“아마도 그렇게 형편이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그냥 알았다, 하셨습니까? 아니면 주위의 누구라든가 환경을 원망하지는 않으셨습니까?”
“하기야 저도 공부가 참 하고 싶었습니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지금 선영이는, 경제적인 뒷받침은 나중 문제고 우선은 진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잖습니까?”
“……”
“아버님, 다른 건 없습니다. 공부를 하고 말고는 선영이의 선택입니다. 선영이가 인문계를 가겠다는 것을 지금 야단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간다고 해서 다 대학을 가고, 본인이 원하는 장래 희망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을 가고 말고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선영이를 야단치시려면 지금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인문계를 간 다음, 진학도 못하고 장래 희망도 물 건너 가면 그때 야단치십시오."
"......"
"또 선영이가 자기 노력으로 공부를 하겠다 하니 그것도 한 번 믿어 보십시오. 그러니 최소한 그런 노력이라도 해 볼 수 있도록 최소한의 허락만이라도 해 주십시오. 아버님, 선영이를 꼭 인문계에 보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무슨 생각에선지 모르지만 혼자서 배우기 시작한 주산도 자기 반에서 벌써 일 등으로 석 달 만에 단 증을 땄다고 합니다.”
그 말에 명희 아버지가 선영이를 쳐다보았다.
“참말이가, 선영아? 니 와 그 말 안 했노?”
명희 어머니가 선영이 손을 꼭 잡았다. 명희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최 선생이 식당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아, 아이고, 선생님. 와 이라능교?”
명희 아버지도 깜짝 놀라 최 선생을 따라 바닥에 내려앉았다. 명희 어머니와 선영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님.”,
“선생님, 예, 다 알겠으니 일어 나서, 예? 일어 나서.”
최 선생은 명희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말을 계속했다.
“아버님, 저 선영이의 담임이지만 오늘은 아버님의 막내 동생처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님, 저 역시 제가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어려워졌을 때, 그때 저희 담임 선생님이 꼭 오늘처럼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
명희 아버지는 최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최 선생의 눈이 붉어졌다.
“제 행동이 교사의 본분에, 그리고 다른 반 아이들과 견주어 편애라 생각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저에게 걸맞지 않은 것이라고 흉보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담임으로서 선영이의 꿈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제가 그것을 막고 있는 장벽을 없애주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저는 선영이 담임으로서, 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아버님, 만약에, 만약에 선영이가 지금 잠시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라면..."
"......"
"아버님은 그냥 허락만 해 주십시오. 선영이의 학비는..."
"......"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명희 어머니와 선영이가 놀란 눈으로 최 선생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선영이 사정을 들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그렇게 지시하신 겁니다. 최 선생, 너는 부모님 허락만 받아 와라, 나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겠다. 아버님, 만약에 저희 학교가 그 약속을 못 지킬 경우에는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각서라도, 확인서라도 쓰겠습니다. 아버님,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명희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고, 누가 후추 통을 쏟았나, 와 이리 맵노?”
명희 어머니가 코를 훔치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선영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눈을 감쌌다. 명희 아버지는 고개 숙인 최 선생의 어깨를, 마치 형이 동생 대하듯 그저 다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 Image by hartono subagio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