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쥐라.”
현광이가 재촉을 하자 아섭이는 혀를 낼름거리며 짐짓 늑장을 부렸다.
“쫌만 기다리라. 됐다. 자, 찍어라.”
아섭이가 내민 주먹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현광이가 엇갈린 두 손깍지를 밑으로 한 바퀴 감더니, 한쪽 눈을 감은 다음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아섭이가 재촉을 했다.
“하늘에 계신 너거 아버지는 이런 거는 절대 안 가르쳐 주신다. 찍어라, 빨리.”
골똘히 생각을 하던 현광이가 결심한 듯 말했다.
“음, 짝에 다섯 개.”
“홀이면 내가 묵는다.”
“그래, 빨리 까라.”
아섭이가 헛기침을 하면서 손바닥 위의 구슬을 세기 시작했다.
“홀, 짝, 홀, 짝, 홀, 짝, 홀, 아싸, 홀이다. 임마. 내놔라.”
“에이, 분명 짝이었는데.”
“짝은, 화영이가 니 짝이고.”
아섭이가 현광이의 구슬 다섯 개를 받아 챙기면서 놀렸다.
“머라꼬, 이 자식이...”
현광이가 주먹을 들어 아섭이를 때리려고 했다. 아섭이는 맞지도 않았는데 짐짓 아야, 소리를 했다.
“빨리 다시 쥐라, 임마.”
“어, 저기 찬우 온다.”
아섭이는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구슬을 재빨리 바지춤으로 밀어 넣었다. 그 바람에 주머니가 터질 만큼 불룩해졌다. 현광이는 또 아섭이에게 당했구나, 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찬우와 병철이를 쳐다보았다.
“누가 땄노?”
찬우가 스탠드 계단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아섭이가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찬우가 씩 웃었다.
“현광이 니는 맨날 아섭이한테 구슬을 잃노?”
“점마가 맨날 꼼수를 부려서 그렇다. 이 나쁜 놈. 근데 병철아. 니는 표정이 와 그렇노? 또 혼났나?”
현광이의 말에 병철이는 한숨을 후, 하고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근데 얼굴이 와 죽을상이고?”
풀이 죽은 병철이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이고……”
“갑갑해 죽겠네. 빨리 말해봐라.”
현광이가 손을 마이크처럼 병철이의 입에 갖다 대었다. 병철이가 현광이의 손을 밀치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어버이날 아이가.”
“응, 오 월 팔일. 어버이날. 한 달 남았는데, 근데?”
“너거는 어버이날, 머 할 낀데?”
“어버이날?”
아섭이와 현광이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머, 할 게 있나? 그냥 학교에서 카네이션 만들 거 아이가? 그거 달아 드리고, 아버지, 어머니, 낳아 주시고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 한 번 하면 그게 전부지.”
현광이의 말에 아섭이는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끄덕거렸다.
“그래, 나도 그렇게 하기는 하는데, 올해는 좀 그렇다 아이가.”
그 말에 찬우는 병철이의 ‘유니버스’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한테 선물을 하고 싶단 말이제? 근데 돈은 있나?”
“아니.”
병철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돈이 있나? 나는 이거밖에 없는데.”
아섭이가 구슬을 꺼내 보였다.
“우리가 다 그렇지 머. 용돈이라고 받아봤자 백 원 아이가. 그라고 그것도 어데, 제대로 받나? 아버지가 기분 좋으면 주시고, 재수 없으면 엄마한테 다 뺏기는데.”
“그래서 돈도 없는데 니는 우짤라꼬? 무슨 계획이라도 있나?”
찬우가 병철이를 보며 다시 물었다.
“나는 오늘, 선생님 수업할 때도 선생님 말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더라. 머를 하면 좋을까 생각한다꼬. 그래서 나는, 이번 달에 신문 배달 할란다.”
“뭐? 신문 배달?”
의외라는 듯 아이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병철이가 계속 말했다.
“어제 학교 마치고 내가 저 망미 시장 옆에 있는 부산 일보 보급소에 갔었거든.”
“뭐라 하더노?”
“한 달 동안 석간신문 돌리면 삼천 원 준다 하데. 하루에 적어도 백오십 부 돌리고.”
“와, 삼천 원씩이나?”
“삼천 원 가지고 병철이 니는 머 할라꼬?”
“응, 우리 아버지 운동화 하나 사 드릴라꼬.”
병철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운동화?”
“응, 얼마 전에 보니까 많이 낡았더라. 좋은 건 못 사도, 삼천 원이면 시장에서 하나 정도는 살 수 안 있겠나. 정류장 리어카에 가든가.”
“딱 됐네. 한 달 하고 삼천 원 받아서 삼천 원짜리 아버지 운동화 사 드리면.”
“근데 조건이……”
병철이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조건이 머라 하던데?”
찬우가 말을 재촉했다.
“혼자는 안 되고, 친구나 누구 다른 사람을 한 사람 더 델꼬 와야 한다 하더라.”
“그건 와 그렇노?”
찬우가 물었다.
“왜냐하면 혼자 시키면 신문 들고 달아 나는 놈이 있어서 증인이 있어야 하고.”
“신문 들고 달아나서 머 할라꼬?”
“부산 역이나 이런 데 가서 신문 팔아먹는다 하데. 싸게.”
“증인이 아니고 보증이겠지.”
아섭이가 아는 체를 했다.
“응, 하여튼 그런 보증을 서야 되고, 또 일이 있어서 펑크를 내면, 다른 사람이 그것까지 돌려야 한다 하더라.”
“펑크 안 내고 열심히 한다 하지 그랬나?”
“다들 말로는 처음에 그렇게 한다 하더라. 열심히 한다꼬. 그래서 배달할라 하믄 꼭 둘이 와야 된다 하더라.”
“……”
아섭이가 찬우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현광이가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다.
“그라모 내랑 하자.”
그 말을 듣고 병철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진짜가, 현광아?”
“응, 어쨌든 한 달 하믄 삼천 원 생긴다 아이가. 머 새벽 신문 돌리는 학생도 있다 하던데 저녁 신문이면 운동 삼아 괘않겠네. 하자.”
하며 현광이가 제자리 달리기를 했다.
“진짜가?”
“나중에 축구 선수되는데 체력 훈련했다, 생각하믄 되지, 머.”
“그라모 나도 할란다.”
이번에는 찬우가 거들었다.
“진짜가, 찬우야?”
“나도 병철이 덕분에 삼천 원 함 벌어 보지, 머. 어려울 거 머 있노. 아섭아 니는?”
“응, 나는 엄마한테 물어보고.”
“안 된다. 엄마한테 물어보고 결정할라믄, 그냥 하지 마라.”
병철이가 급히 아섭이의 말을 막았다.
“와?”
“이거는 어른들 몰래 해야 된다. 우리 엄마하고 아섭이 너그 엄마하고 맨날 시장에 같이 가는데, 너그 엄마가, 아이고, 병철이 신문 돌린다 하데요, 하면 나는 맞아 죽는다. 울 엄마한테.”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병철이가 신문 배달하는 것을 알게 되면, 더군다나 아버지의 운동화를 사기 위해 그러는 것을 알면, 호락호락 허락해 줄 병철이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안 하고 일부러 저 고갯길 너머 망미동에서 할라고 하는 거다.”
아이들은 병철이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끄덕거렸다.
“그라믄, 아섭아. 니는, 혹시나 우리가 신문 배달 한다꼬 교실 청소 못하게 되면 니가 대신해라. 그라고 나서 니가 청소한 날 만큼 나중에 돈으로 쳐 주께. 하루에 백 원. 됐나? 대신 비밀은 지키고.”
현광이가 그럴듯한 제안을 하자, 찬우과 병철이가 그거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라믄 되겠네. 내하고 병철이는 같은 분단이고, 현광이는 다른 분단이니까 그것만 니가 해도 되겠네.”
찬우는 이제 됐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눈알을 굴리며 손가락으로 셈을 하는 아섭이에게,
“계산은 지금 니 머리로 안 된다. 집에 가서 구슬 꺼내 놓고 해라, 임마.”
하며 현광이가 아섭이의 뒤통수를 쳤다.
“됐다. 그럼 바로 가 보자.”
현광이가 벌떡 일어섰다. 아이들은 가벼운 걸음으로 현광이를 따라 스탠드를 내려갔다. 아섭이는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며 그 뒤를 따랐다.
머리가 훌러덩 벗어진 보급소장은 두 명을 한꺼번에 데려 온 병철이를 대견해했다. 그렇잖아도 그전에 배달을 하던 아이들이 해가 바뀌어 중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일손이 달려 걱정을 하던 참이었는데, 병철이가 여러 명을 데려와서 한 방에 고민이 없어졌다며 껄껄 웃기까지 했다. 적잖이 긴장을 했던 병철이도 그런 소장의 칭찬에 비로소 기분이 좋아졌다.
소장은 아이들에게 당장 시작하라고 하며, 대신 첫날이니 며칠 동안은 형들을 따라 배달할 집과 배달하는 요령을 배우라고 했다. 찬우와 현광이, 병철이는 소장이 붙여 준 형들을 따라나섰다.
아이들이 신문을 넣어야 되는 집은 각각 백삼십 집이었는데, 한 번에 들고 다니기엔 신문 백삼십 부가 너무 무거워서 우선 반 정도를 배달한 다음, 다시 보급소로 돌아와 나머지를 받아 가는 식으로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길잡이가 되어 주는 형들을 따라다니다가, 일주일 뒤부터는 각자의 ‘구역’을 배정받아 신문을 돌리게 되었다.
현광이는 좋아하는 축구를 매일 할 수 없어서 조금 짜증이 났지만, 즐거워하는 병철이를 보면서 친구를 위해 정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뿌듯함에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현광이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현광이는 엄마 코가 이상한 거라며 도리어 면박을 주었다.
그것은 병철이네도 마찬가지였다.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저녁밥을 먹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병철이 어머니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한참 클 때는 다 저런 거라는 병철이 아버지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도 못하고 그냥 그런가,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찬우는 신문 배달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아무래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찬우 아버지는 병철이를 대견해했고, 또 모두 좋은 친구들이라며 찬우를 칭찬해 주었다. 찬우는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절대로 남에게 말해선 안 된다는 다짐을 아버지에게서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