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잘 준비되었지요? 모두 기도합시다.”
로사 수녀는 자애원의 제일 막내, 수정이의 잠옷 단추를 채워 준 뒤 다른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살핀 다음 두 손을 모았다.
“하느님,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루를 마칩니다. 오늘 하루, 건강하고 슬기롭게 보내도록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록 지금은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는 불쌍한 양들이지만, 하느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아 밝은 빛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자애원의 어린양들이 밝고 맑게 자랄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시고 새롭게 한 가족이 된 진경이와 범영이에게도 변함없는 은혜를 주십시오. 이 모든 말씀,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모아 아멘, 하고 따라 했다.
정미는 수정이가 기저귀를 찼는지 더듬어서 확인을 한 다음,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언니가 옆에 있으니까 수정아, 자다가 목마르면 언니를 깨워, 응?”
수정이는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던 중에 오줌을 자주 쌌기 때문에 수정이는 여섯 살임에도 여전히 기저귀를 차야 했다.
“정미야, 원장님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수정이를 재우려고 토닥거리는 정미에게 로사 수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미는 서둘러 슬리퍼를 신고 따라나섰다.
“정미야.”
로사 수녀가 원장실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마리아 수녀도 가까이 다가섰다.
“예, 원장님.”
“딴 게 아니라, 대식이한테 무슨 일 있었니?”
정미가 커진 눈으로 로사 수녀를 쳐다보았다.
“어제, 사감 수녀님께서 생활관 청소를 하셨는데, 대식이 사물함에서 이런 것들이 나왔어.”
로사 수녀는 책상 밑에서 무언가가 들어 있는 꾸러미를 올려놓았다. 그 안에는 실로폰과 크레파스, 필통이 들어 있었다.
“정미 너는 대식이를 데리고 다니니까 잘 알 것 같아서. 아는 게 있으면 원장님에게 말해 줄래?”
“……”
마리아 수녀가 말했다.
“정미야. 우리는 너와 대식이를 잘 알아. 너도 알겠지만 대식이는 이런 걸 훔칠 만한 애가 아냐. 그리고 이런 걸 훔치도록 내버려 둘 문방구 주인들은 더더욱 아니고.”
“……”
“아는 게 있으면 말해 줄래? 안 그러면 원장님이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이런 거 잃어버렸냐고 직접 확인해 볼까? 문방구가 여러 군데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미야, 네가 대식이를 챙겨 주는 마음은 잘 알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아녜요. 원장님. 그거 대식이가 훔친 거 아니에요.”
정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아니, 내 말은 꼭 훔쳤다는 게 아니라……”
“그리고 제가 훔치지도 않았어요.”
“그래, 알아. 누가 너한테 훔쳤다고 그랬니? 다만……”
정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원장님, 그건 택기 오빠가 준 돈으로, 우리가 돈 주고 산 거예요. 정말이에요.”
마리아 수녀가 로사 수녀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
“택기가? 택기가 무슨 돈으로?”
“모르겠어요. 그냥 택기 오빠가 얼마 전에 돈을 주면서 대식이한테 실로폰하고 필통 사 주라고 했어요.”
“정미야, 자애원에는 다 함께 쓰는 학급 준비물이 있잖니? 그리고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원장님이나 사감 수녀님한테 이야기를 하면 사 주시잖니?”
“택기 오빠가 대식이 혼자 쓰게 하라면서 돈을 줬어요.”
“택기가 어디서 그런 돈이 났을까? 이것들은 꽤나 비싼 것들인데.”
“대식이가 며칠 전에 준비물을 못 챙겨서 선생님께 혼난 적이 있대요. 택기 오빠가 그 말을 듣고 대식이한테 이것들 사 주고는 다른 애들더러는 절대로 손도 대지 못하게 하라면서……”
정미의 눈에서 끝내 눈물이 또로록 흘렀다.
정미가 방으로 돌아간 후 로사 수녀는 창 가에 섰다. 창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원장님,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요.”
마리아 수녀가 말했다.
“안 된다니, 무슨 말씀이에요?”
“이대로 두었다간 착한 애들도 다 물들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장님도 아시잖아요. 지금 육 학년 애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요. 걸핏하면 학교에서 싸우고, 애들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남의 물건에도...”
“마리아 수녀님!”
로사 수녀가 마리아 수녀를 향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원장님도 그런 일로 학교에 불려 가신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그렇잖아도 옆에 있는 오양 맨션 사람들이, 혐오 시설이다 뭐다 하면서 구청에 계속 민원을 넣고 있다는데, 거기에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 나중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럼 마리아 수녀님은 우리 아이들이 혐오스럽단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문젭니다. 아이들이 혐오스럽다니요? 모두가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랑을 줘야 할 어른들이 그 책임을 다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저 아이들이 원래부터 버림받았나요? 처음부터 길을 잃었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래서 자애원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좀 더 보살피고 좀 더 챙기면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올 겁니다. 그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 아닌가요?”
로사 수녀는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았다.
“원장님, 그건 저도 잘 압니다만 당장에 보세요. 교구와 상의해서 큰 애들만이라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머지 애들이 보고 배울까 겁이 납니다, 저는.”
“마리아 수녀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어요. 그래도 우리가 조금만 더 열심히 기도합시다.”
“원장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따르지 않고 어긋나는 애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도 택기는 안 들어왔어요. 이 늦은 시간에 비도 이렇게 오는데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그래요? 택기가요? 그럼 찾으러 나갑시다. 나쁜 사람들 꾐에 빠져 따라간 것은 아니겠지요? 어서요.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늦게 들어온 게 한두 번은 아니잖아요? 가시죠, 어서.”
마리아 수녀는 안타깝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먼저 원장실 문을 열고 나섰다.
화장실에서 대충 눈물을 닦은 정미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이미 등은 꺼져 있고, 아이들은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수정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자리에 누우려는데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복도의 불빛이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정미야.”
정미는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세요?”
“창수 오빠다. 조용히 하고 여기로 나와 봐.”
복도로 나가니 창수가 서 있었다. 머리와 소매 끝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오빠, 지금 들어온 거야?”
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이 내 안 찾더나?”
“몰라. 남자 방은 마리아 수녀님께서 마감 기도 하셨어. 아까 원장실에 갔더니 택기 오빠가 안 들어왔다고 하는 것 같던데?”
“원장실에? 머 하러?”
창수가 물었다.
“그, 그냥.”
“제길, 택기 녀석 때문에 내까지 혼나겠네.”
“오빠, 욕 하지 마.”
“그래, 미안타. 그라고 정미야.”
창수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움큼 꺼냈다. 정미는 얼른 손을 허리 뒤로 감추며,
“뭔데? 그게 뭔데? 뭔지 먼저 말해.”
하고 되물었다.
“빨리 받아라, 팔 아프다.”
창수는 정미의 팔을 억지로 끌어당겨 제 손에 쥔 것을 정미의 손바닥에 옮겨 놓았다. 그것은 꾸깃꾸깃 구겨진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이었다.
“오, 오빠. 이거 돈이잖아? 이거 무슨 돈이야?”
“이거 갖고, 묵고 싶은 거 사 묵어라. 수정이가 자꾸 울면 사탕도 사 주고.”
“싫어, 오빠. 이거, 이거 뺏은 거지? 이거 훔친 거지?”
훔쳤다는 정미의 말에 창수가 발끈했다.
“야, 죽고 싶나? 내가 돈이나 훔치는 도둑놈으로 보이나? 이 가시나가.”
창수의 정색에도 정미는 의심을 풀지 않고 다시 물었다.
“오빠, 그럼 이 돈 어디서 난 건데?”
“그냥 니는 그런 거 알 필요 없다. 빨리 받아라.”
“오빠, 사실 그대로 말해 주면 받을게. 응?”
“아이 참, 이 가시나가. 그래, 그래. 신문 배달해서 받았다. 월급이다.’
“신문 배달?”
“그래, 진짜다. 가서 물어봐라.”
“정……말이야? 원장님께 말해도 돼?”
원장이란 말에 창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 말이 거짓말이면 하늘에 있는 별 백 개, 따 오께.”
“진짜 받아도 되는 거지? 이거 나쁜 돈 아니지?”
“확, 도로 뺏어 가 뿐다?”
창수가 손을 뻗는 시늉을 했다.
“그럼 오빠, 나 그럼 이만큼만 줘. 신문 배달하면서 힘들 게 번 건데 나머지는 오빠가 써야지.”
정미는 동전 몇 개를 집고, 구겨진 천 원짜리들은 창수에게 돌려주었다.
“오빠, 나는 이거면 충분해. 그리고 이걸로 빨리 양말 사 신어.”
그 말을 듣고 창수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엄지발가락이 양말을 뚫고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양말……”
“오빠, 그런데 택기 오빠는 어디 있는 거야? 며칠 째 들어오지도 않고, 학교도 안 왔던데.”
“으, 으응. 어디 잘 있겠지. 똑똑한 놈이다 아이가.”
“오빠, 혹시 택기 오빠 보면 원장님이랑 사감님이 걱정 많이 한다고, 꼭 빨리 오라고 해 줘, 응?”
“그래, 알았다.”
창수는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빨리 가. 아까 원장님이랑 사감 수녀님, 택기 오빠 찾으러 간다고 나갔거든. 얼른 방으로 가서 자는 척 해. 알았지?”
“그래, 정미야. 그라고 누가 학교에서 니 괴롭히믄 오빠한테 바로 말해라, 알겠제? 내가 직이뿔 거니까.”
또 나쁜 소리를 하는 창수에게 정미는 인상을 찡그리며 어서 가라는 손짓을 했다. 창수는 두리번거리면서 복도를 따라 뛰어갔다.
정미는 창수가 사라진 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정미는 무릎을 꿇고 다시 두 손을 모았다. 창 밖이 갑자기 환해지더니 곧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는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