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월급

by 진우


“와, 진짜 보급소장 그 인간, 정말 나쁘네.”

현광이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며 씩씩거렸다.

“진짜다. 순 도둑놈 아이가.”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우리를 부려 묵은 거 아이가? 와, 진짜 열받네. 확 그냥 파출소에 고발해 뿌까?”

병철이도 화를 참을 수 없는지 시뻘게진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고마 됐다. 그래도 이거라도 받은 게 어데고?”

찬우가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화가 나기는 찬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할 때 신문 보급 소장이 말하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달을 하면 정확하게 한 달 되는 날에 월급 삼천 원을 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한 달을 정확하게 채운 바로 오늘, 갑자기 월급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꾼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하는 아이들에게 소장은, 첫 월급 삼천 원을 한꺼번에 다 줘 버리면 당장 내일부터 안 나올 것이 뻔하므로, 신문 배달을 계속해서 둘째 달이 되면 그때에 첫 달치 월급을 한꺼번에 주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애초부터 병철이와 아이들은 한 달 동안만 일을 해서 삼천 원을 벌 생각이었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장의 꼼수는 날벼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소장은,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 오면 두 달이 되기 전에라도 첫 달치를 챙겨 주겠다는 말도 했다.


난처해진 아이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순간에 현광이가 얼른 잔꾀를 부렸다. 병든 할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친구들과 같이 신문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약값이 만만찮고 앞으로도 계속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 둘 생각이 조금도 없다, 월급을 일부라도 주면 몸져누워 있는 할머니가 좋아할 것이다, 다음 날부터 우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머지 돈은 소장이 알아서 해도 좋다. 현광이는 마른 눈물을 짜내는 연극까지 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장은 마지못해 삼천 원이 아닌 이 천 원씩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천 원씩은 내가 보관해 뒀다가 다음 달에 줄 테니까, 내일 꼭 나와야 된다, 알겠제?"




“홧김에 한 달 더 해 뿌까?”

현광이가 병철이를 보면서 말했다.

“아이고, 나는 더 못 하겠다. 이제는 신문 기름 냄새가 지긋지긋하다.”

병철이가 손을 내저었다. 그것은 찬우도 마찬가지였다.

“헤헤, 어린이 여러분들. 수고하셨어요. 그나저나 이제 계산하셔야죠? 헤헤헤.”

옆에서 줄곧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아섭이가 그제야 본색을 드러냈다.

“무슨 계산? 임마.”

현광이가 발끈했다.

“헤헤, 너거가 신문 배달하는 동안, 대신해서 교실 청소한 값 주기로 했잖아요오. 병철이는 일주일 동안 칠백 원, 찬우, 현광이는 이틀씩 사백 원, 합계가 천백 원이네요, 네네.””

아섭이는 간신처럼 손을 비볐다.

“임마, 니는 이 대목에서 청소 값 달라는 소리가 나오나? 병철이는 저그 아버지 운동화 살 돈도 모자랄 판인데. 어이그.”

현광이가 버럭 짜증을 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병철이도 사실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정류장 리어카에서 산다 하더라도 적어도 삼천 원은 있어야 될 텐데 겨우 이천 원을 가지고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슬리퍼나 제대로 살려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임마,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지. 너거 대신 대청소도 두 번이나 했다 아이가.”

아섭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찬우가 그런 아섭이를 보면서 웃으면서,

“자, 아섭아. 내 꺼 받아라. 고생했다.”

하고 이백 원을 주었다. 아섭이가 좋아라 하며 돈을 냉큼 주머니에 넣었다. 찬우는 병철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병철아, 이거 천팔백 원, 아버지 선물 사는 데 보태라. 나는 우리 아버지 선물, 다른 거 있다.”

찬우가 남은 돈 전부를 병철이에게 내밀었다. 병철이가 놀란 눈으로 찬우를 올려다보았다. 그걸 본 현광이도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와, 찬우 저 녀석, 또 잘난 체하네. 에이, 할 수 없지. 머, 병철아. 내 것도 받아라. 천팔백 원이다. 내야 뭐 처음부터 돈 벌라고 한 것도 아인데 머. 너거 없으면 놀 사람도 없으니까 따라 간 거지. 그라고, 아섭이 이 똥 강아지야, 여기 이백 원 묵고 떨어지라.”

“찬우야, 현광아.”

병철이는 돈을 받아 들고서 어쩔 줄 몰라했다. 잠시 후 아섭이 역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나는 이래서 정말 너거가 싫다. 에이, 쪼잔한 놈들. 일만 실컷 부려 묵고는. 알았다. 병철아, 내한테 줄 거는, 그래, 그것도 너그 아버지 선물 사는데 보태라. 너그 아버지 선물에 내 돈 천백 원 들어갔데이, 맞제?”

하며 받았던 몇 백 원의 돈을 병철이에게 건넸다. 그러자 현광이가 아섭이의 목을 확 감았다.

“니, 진짜로 주고 싶은 거는 아니제? 마지못해 그런 거제?”

현광이가 팔에 힘을 주었다. 아섭이가 컥컥거리며,

“살려 주십쇼. 케, 켁켁. 천, 천백 원 드, 드리겠습니다. 살려 주십쇼. 켁켁, 진심입니다.”

하고 버둥거렸다.

“그라모 이제 병철아, 니는 칠천백 원 갖꼬 머 살 끼고?”

현광이의 팔에서 겨우 풀려난 아섭이가 궁금해서 물었다.

“임마, 세 사람이 받은 돈은 모두 육천 원이지, 또 우째 칠천백 원이고?”

현광이가 또 목을 감을 시늉을 했다. 아섭이가 슬쩍 피하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야이 바보야. 너거 신문 배달한 거, 이천 원씩 셋이니까 육천 원, 내가 천백 원 줐으니까 합이 칠천백 원 아이가? 누구를 더하기도 못하는 바보로 아나? 쯧.”

아섭이의 말에 현광이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아섭아, 웃길라고 하는 말이믄 웃어줄 텐데, 진심이라면, 그래 니 말이 맞다. 고마 해라.”

찬우가 웃었고 아섭이는 아직도 자기 말이 틀렸냐며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했다.

병철이는 돈을 받아 들고 서서 또 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임마들아……”

“야야, 병철이 또 울라한다. 보기 싫다. 가자. 오래간만에 공이나 차자. 됐나? ”

현광이가 재빨리 앞장섰다. 찬우도 아섭이를 잡아끌었다. 병철이는 소매로 눈을 한 번 쓰윽 닦고는 뒤를 따랐다.




현광이가 축구공을 가지러 집으로 간 사이, 아이들은 우물터 계단에 나란히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현광이 아버지가 그나마 빨리 퇴원해서 다행이다, 맞제?”

“현광이, 점마도 알고 보면 쫌 멋지데이."

“아섭이, 니도 현광이를 좀 본받아라. 구슬 딴 것도 좀 돌려주고.”

“싫다, 임마. 내가 그거 모을라꼬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고생은 무슨, 꼼수 부리느라 고생?”

그때 뒤에서부터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광이가 벌써 왔나 싶어 찬우는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현광이가 아니었다.

“어이, 어린이들.”

옆구리에 팔을 올린 채 껌을 딱딱 씹으며 서 있는 것은, 택기였다.

“왜, 왜 그러는데요?”

잔뜩 겁에 질린 아섭이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택기는 아섭이의 어깨를 다정한 척 감싸 안으며,

“잠깐 내랑 이야기 좀 하까? 너거 둘이도 같이.”

하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려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했다. 그리고 슬며시 고개를 숙여 아이들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거 오늘 월급 받았제? 그거 내놔라. 만일에 도망치면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버린다. 알겠나? 좋은 말 할 때, 따라 온나.”

찬우와 병철이는 팔을 붙잡혀 버린 아섭이 때문에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택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 Image by Jan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