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어긋난 길

by 진우


택기는 오양 맨션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중간 즈음의 어느 골목으로 아이들을 끌고 갔다. 그 안에는 이미 택기 또래 대여섯이 벽에 기대서서, 힘없이 끌려 오는 찬우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어린이 여러분, 반갑습니데이.”

얼핏 보기에도 고약하게 생긴,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택기의 무리 중 하나가 손을 비비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으웩, 소리를 내며 아섭이가 고꾸라졌다.

“왜 이러는데요? 형들.”

찬우가 바닥에 쓰러진 아섭이를 보면서 소리쳤다.

“형들? 누가 형인데, 누가 니 형인데, 이 자식아.”

광대뼈가 이번에는 찬우를 걷어찼다. 찬우도 마찬가지로 배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이, 어린이들.”

이번에는 택기가 찬우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행님들이 배가 좀 고픈데 돈 좀 보태주고 가라.”

“무, 무슨 돈요? 우리 돈 없어요.”

찬우가 벌게진 얼굴로 당차게 말했다. 광대뼈가 이죽거렸다.

“그래? 돈이 없나? 행님이 미처 잘 몰랐는 갑네.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우짜노? 또 한 대 때리야겠네.”

다시 한번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찬우가 결국엔 바닥에 드러누웠다. 택기는 병철이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어이, 존만아. 맞고 줄래, 그냥 줄래? 행님은 오늘 시간이 억수로 많은데.”

병철이는 덜덜덜 떨고 있었다.

“아이고, 잘 하믄 니는 오줌 싸겠네. 빤스 한 개 더 있나?”

“해, 행님. 자, 자애원 택기 행님 맞, 맞지예?”

병철이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택기를 올려다보았다. 자애원이란 말을 듣자 택기의 눈에 핏줄이 섰다.

“그, 그래. 니가 잘 아네. 이 자식이 오늘 죽을라꼬 애국가를 부르네. 좋다.”

택기가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닦는 시늉을 하고는 병철이를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그래, 이, 자, 식, 아. 내, 는, 자, 애, 원이다. 우짤 낀데? 죽을래? 돈 내놓을래?”

“그, 그만 하이소.”

찬우가 병철이를 감싸 안았다. 그러나 그 위로 다시 택기의 발길질이 계속 끊이지 않았다.

“그, 래, 니, 도, 한, 세, 트. 이 새끼가 헉헉, 어데서 자애원이니 헉헉, 함부로 지껄이노? 헉헉.”

아섭이는 이미 주머니가 까뒤집힌 채로 옆에서 엉엉, 울면서 코를 흘리고 있었다. 택기가 다시 찬우의 어깨를 젖히면서 말했다.

“너거, 오늘 신문 돌리고 월급 받았다매? 다 알고 있다. 그거 좀 나눠 쓰잔 말이다.”

택기가 다시 찬우를 팼다.

“야, 그만해라. 임마.”

“응?”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택기는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것은 아까부터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던 창수였다.

“창수야, 오늘 내 몸 좀 푸는데, 와 그라노?”

창수가 벌떡 일어서며 택기한테 소리쳤다.

“돈만 가져가면 되지, 애들을 왜 때리노?”

“그, 그래도 말로 하믄 야들이 돈을 주나?”

택기가 멋쩍게 웃었다. 창수가 다가와서 한쪽 무릎을 구부리며 병철이를 일으켰다.

“야. 니! 우리, 누군지 알제?”

병철이는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수는 병철이의 어깨를 잡으며,

“돈 있는 거 그냥 주고 가라. 더 맞기 전에.”

하고는 병철이의 코피를 스윽 문질렀다. 병철이의 코 아래로 붉은 줄이 주욱 그어졌다.

창수가 병철이를 잡고 노려보는 동안, 택기가 옆으로 다가와서 병철이의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곧 한 움큼의 천 원짜리가 잡혀 나왔다.

“와아, 이 자식 부자네. 이기 얼마고 대체?”

택기가 두 손으로 돈을 거머쥐며 말했다. 그러고는,

“니, 인자 우리하고 친하게 지내자. 알겠제?”

하며 다시 다리를 들어차려고 했다. 그때 창수가 발끈했다.

“고마 해라니까, 임마! 그만 가자.”

창수는 골목 밖으로 먼저 나가 버렸다. 멋쩍은 듯 택기는 다른 무리들과 함께 창수 뒤를 따라가면서,

“우리한테 돈 뺏겼다고 말하면, 우째 되는 줄 알제?”

하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병철아, 괘않나? 아섭아, 니는?”

찬우는 가방에서 꺼낸 공책을 북북 찢어 병철이와 아섭이의 코피부터 닦았다. 병철이는 눈이 제법 부었고 입술도 터진 것 같았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아섭이는 코가 범벅이 되어 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찬우는 소매로 자기 얼굴을 대충 닦고 나서 다시 병철이의 입술을 닦았다. 한참 만에 피가 멎었다.

“괘않나, 병철아.”

겨우 정신을 차린 병철이가 벽에 기대더니 크헉 크헉 울기 시작했다. 아섭이도 따라 울었다.

“아우아, 우이 우아오, 으어어어.”

“됐다. 우짜겠노? 이미 다 가 뿠는데.”

“나쁜 놈들, 내가 가서 신고해 뿔 끼다. 자애원에 가서 원장 수녀님한테 다 말해 뿔 끼다.”

아섭이가 뒤늦게 펄쩍 뛰었다.

“됐다. 그래 봤자 우리만 더 고생이다. 잊어 뿌자.”

찬우가 병철이를 부축해서 일어섰다. 병철이는 계속 울었다.

“됐다, 병철아. 그만 울어라.”


그때 현광이가 축구공을 들고 골목으로 뛰어 들어왔다.

“야, 찬우야. 아섭아. 이기 우째 된 일이고?”

현광이가 놀라서 병철이와 아섭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현광아, 우리 돈, 택기한테 다 뺏겼다.”

“택기? 자애원 택기?”

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쁜 놈. 너거가 안 보여서 한참 찾았더만. 아까 떼를 지어서 아랫동네로 가는 거 봤는데. 너거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가는 거였나. 이 나쁜 놈들.”

“됐다. 우짜겠노? 그보다 병철이하고 아섭이 좀 씻을 데가 없겠나?”

“학교로 가자, 그라모.”

“가만있어 봐라.”

현광이가 갑자기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아까 택기 녀석들 사이에 보선이도 있던데, 너거 보선이도 봤나?”

“보선이?”

찬우와 아섭이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3반 땅꼬마 보선이 말이가?”

“그래, 도랑 끝 집에 사는……. 보선이 글마가 우리 신문 배달하는 거 몇 번 봤는데, 그 자식이 일러 줐구나. 오늘 우리 월급 받는다고.”

“우리는 보선이 못 봤다. 설마, 보선이가 어떻게 알고.”

“아니다. 지난번에 내가 추가 신문 받으러 보급소 갔을 때 몇 번인가 보선이를 그 근처에서 봤거든. 글마는 여기서 안 놀고 윗동네 망미 중학교 깡패들하고 놀잖아. 택기도 글마들하고 어울리고. 틀림없다. 그 자식이 꼰지른 거 맞다.”

현광이가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알았다. 보선이는 보선이고, 야들 좀 먼저 어떻게 하자.”

“그, 그래, 알았다. 병철아 니 가방 내한테 도.”

찬우는 병철이를, 현광이는 아섭이를 부축해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어린이날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오후의 일이었다.


(계속)



* Image by � Mabel Amber, who will one day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