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보선이

by 진우


“자, 상태. 니는 주먹 썼으니까 오백 원 받고, 경모 니도 망봤으니까 오백 원. 나머지는 창수하고 내하고 알아서 할 거니까. 됐제? 불만 없제? 어이 꼬맹이들, 너거들은 나중에 좀 더 큰 거 하면 줄 테니까. 이 자식, 뭘 쳐다보노? 아이고, 그래 알았다. 너거 묵어라, 오백 원.”


아랫동네 후미진 골목 안에서 택기는 병철이에게서 빼앗은 돈을 나누고 있었다. 창수는 돌계단 위에 앉아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돈을 전부 나눠주고 돌아서던 택기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차차. 제일 큰 역할을 한 우리 보선이. 보선이 어데 있노?”

뒤에 서 있던 보선이가 앞으로 나왔다.

“보선아, 앞으로도 이런 좋은 정보, 많이 가지고 온나, 알겠제? 니는 이 형들이 책임져 줄 테니까. 헤헤헤.”

택기는 보선이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보선이는 그것을 말없이 받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택기가 창수를 보며 말했다.

“자, 인자 가자.”

“어데 갈 건데?”

창수가 택기의 어깨를 잡았다.

“어데라 하면 따로 어데가 있나? 철물점에 본드나 사러 가지 머.”

“야 임마, 본드는 하지 마라 안 했나?”

창수가 택기를 향해 주먹을 쳐들었다.

“헤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냥 오락실이나 가자.”

택기가 움찔하며 금방 꼬리를 내렸다.

“택기 니는 며칠 동안 어데서 묵고 잤노? 원에는 와 안 들어오노?”

창수가 택기를 여전히 노려 보았다.

“들어가고 말고는 내 맘이다. 와? 그기 어때서? 아무 데서나 비 피하고 자믄 되지. 누가 찾드나?”

“임마, 니 때문에 동생들이 힘드니까 그렇지.”

“동생들? 그것들이 내 친동생들이가? 그라고 좀 힘들면 어떻노, 제깟것들이. 좀 있으면 다 뿔뿔이 흩어질 낀데.”

“머라고? 흩어져? 누가 그라더노?”

창수가 재차 택기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아이들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임마들아, 돈 받았으면 다 꺼지라. 머 하노? 구경 났나?”

택기의 말에 놀란 애들이 서둘러 흩어졌다.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나서, 택기는 어깨에 올려진 창수의 손을 천천히 잡아 내렸다.

“원창수, 싸움은 니가 내보다 좀 잘한다만 정보는 내가 좀 더 빠르다. 창수야, 자애원을 두고 사람들이 머라 하는지 아나?”

“……”

“혐오 시설이라 한단다. 혐오 시설.”

“어떤 사람들이?”

창수가 발끈했다. 그것도 몰랐냐는 투로 택기가 이죽거렸다.

“이 동네 사는, 착하고 잘 사는 어른들이 그란다, 알겠나? 그러니까 니하고 내는 혐오 시설에 있는 쓰레기란 말이다, 쓰, 레, 기!”

“닥치라, 시끄럽다.”

“니는 모르제? 자애원에 철거 명령 떨어진 거. 자애원 밀어 버리고, 거기에 또 아파트 짓는다 하더라.”

“……?”

“어린이날이니 크리스마스가 되면 돈 많은 부자들, 일 년에 딱 두 번. 아, 그라고 국회의원인가 먼가 뽑을 때면 또 한 번 우르르 몰려 오제? 고급 차 타고 와서, 초코 파이 몇 개 나눠 주고, 사진 한 방 찍고 가면 그 사람들은 그만이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애원 바로 옆 오양 맨션 앞마당에 그 다음날 가서는 머라 하는지 아나? 바로 옆에 있는 자애원 없애겠다고, 자신 있다고 맡겨 달라며 소리 지른다. 아나? 그것도 모자라 구청에다, 시청에다 전화를 하고 편지를 쓰고 별의별 난리를 한다. 혐오 시설이라꼬. 니는 그거 아나?”

“……”

“저거들 살 집 필요하다고, 우리 사는 집 내놓으라 하는 기다. 우리 사는 집을 더럽다, 그 집에 사는 우리는 위험하다, 하믄서. 내가 보기엔 저거가 더 더럽고 위험하다.”

“……”

“그래서 나는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이 다 싫다. 돈 뺏고 물건 훔치는 거? 웃기지 마라. 그런 건 처음부터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다. 나는 그저 한 놈이라도 걸리면 뼈도 못 추릴 만큼 패 죽이고 싶다. 알겠나, 창수야? 내가 이 동네 떠날 때까지.”

택기가 분에 못 이겨 큰 소리를 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기 와 쓸데없는 소리고?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젠데! 겨우 열세 살이라고 우리를 애 취급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겨우 열세 살이 아니라, 이제는 열세 살이다. 우리도 알 거는 다 안다.”

“그건 됐고, 정미가 니 걱정 많이 하더라. 오늘은 자애원 들어가 봐라.”

“정미? 그 가시나가 왜? 그기 내 동생이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거지 같은 게, 같은 날 자애원 왔다고 진짜 형젠 줄 아나, 멍청이 같은 게.”

“이 자식이.”

택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창수의 주먹이 택기의 얼굴에 꽂혔다. 택기가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택기는 입을 스윽 닦으면서 말했다.

“원창수! 니도 이제 내한테 함부로 주먹질 하지 마레이. 나는 내일부터 서면으로 가서 일할 끼다. 니도 열다섯 살 되기 전에 좋은 자리 빨리 알아봐야 될 끼다. 멍하니 바보처럼 원장 수녀님만 보고 있다가,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우워, 하면서 더 큰 고아원에 끌려가지 말고.”

택기는 말을 던져 놓고 등을 돌려 가 버렸다. 창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보선이는 도저히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들려오는 소리로 봐서 집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 다시 둔탁한 소리가 났고, 또 접시가 깨졌다. 그리고 또다시 어머니의 악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선이는 맞은편 담벼락 뒤로 숨어 계속해서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몇몇이 집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출 때마다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 봐 보선이는 고개를 돌렸다.

한참 만에 문이 열렸다. 보선이는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얼굴이 시뻘건, 한눈에 보아도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윗옷을 벗어 젖힌 채로 어딘가로 허둥지둥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보선이는 터덜터덜 집 앞으로 갔다. 문이 열려 있었다.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난장판이 된 방 안에 어머니가 엎드려 있었다.

“어, 엄마……”

보선이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보선이는 급히 부엌으로 달려가서 수건에 물을 적신 다음,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깔고 앉아 있던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의 코피를 닦았다. 어머니는 꼼짝도 않고 보선이가 닦아주는 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엄마, 또 맞았어요?”

“……”

보선이는 어머니가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굳이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목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언젠가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목을 얻어맞아서 거의 일주일 동안 말을 못 하고 지낸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선이는 넋을 놓고 있는 어머니를 한쪽 편으로 겨우 밀어 앉힌 다음, 어지럽혀진 방을 쓸고 걸레로 닦았다.


한참 만에 보선이도 겨우 앉을자리가 생겼다.

어머니가 보선이의 손을 잡았다.

“보선아……”

“응, 엄마.”

어머니의 부은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보선이는 어머니의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엄마, 또 우나? 울지 마이소.”

“보선아.”

“응.”

“엄마는 인자 진짜로 죽을란다. 그냥 약 묵고 콱 죽어 뿔란다. 니도 엄마 따라가자. 우리 같이 죽어 뿌자.”

“엄마, 또 와 그라는데? 그라지 말고……”

“보선아, 엄마는 더 이상 살 의욕도 없다.”

“엄마.”

보선이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을 했다.

“엄마. 나랑 도망갑시다. 아버지가 못 찾는 데로 가서 둘이만 살면 안 됩니꺼?”

“보선아.”

“나도 학교 그만두고 어데서 일하면 그냥 우리 둘이는 묵고 살 수 있잖겠어예?”

“……”

“그라고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를 하입시더. 요새는 알코올 중독은 경찰에서 데려다가 치료를 해 준다 하데예.”

“그 치료를 벌써 두 번이나 받은 인간이다. 너그 아버지는 술도 술이지만 인자는 노름에 빠져서, 인생 포기해야 된다. 그 인간은 사람도 아이다. 경찰도 인자 포기했는지 신고를 해도 오지도 않는다.”

“엄마, 그래도 우리는, 우리마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보선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만졌다. 벗겨진 상처가 쓰라린지 어머니가 눈을 움찔했다. 보선이는 어머니를 꼬옥 끌어안았다.

보선이가 챙겨준 약을 먹고 어머니는 한참 만에 겨우 잠이 들었다.


(계속)



* Image by Beverly Buckley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