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불

by 진우


보선이는 옷장에서 깨끗한 이불을 꺼내어 엄마에게 덮어 주고, 한쪽으로 밀어 두었던 것은 조심스럽게 개켜 밖으로 들고 나왔다. 혹시나 이불깃 속에 유리 조각이 박혀있을지도 몰라서 그것을 털어 버리려는 생각이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키가 작은 보선이 혼자서 큰 이불을 털기란 쉽지 않았다. 잠시 궁리를 하다가 한쪽 끝을 담장에 먼저 걸쳐 두고 다른 쪽을 잡고 털기로 했다. 우선 이불을 담장 위로 던져 보았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작은 키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영차, 소리를 내면서 이불을 담장 위로 밀어 올려 주었다. 혹시 지나가는 아저씨가 도와주나 싶어서 보선이는 얼른 옆을 쳐다보았다. 인사를 할 요량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 현광이가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이가 보였다.

“니, 내 누군지 알겠나?”

보선이는 얼른 대답을 못 하고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빨리 이불이나 털자. 그쪽도 빨리 올리라.”

현광이가 시키는 대로 보선이는 말없이 이불 끝을 밀어 올렸다. 이불이 털썩 담장에 걸쳐졌다. 보선이가 한참만에 어렵게 물었다.

“머, 머 하러 왔노?”

“이불 털어 주러 왔다, 임마.”

보선이의 귀 밑으로 웽, 하는 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깜깜한 밤이어도 달빛을 받은 이불은 꽤나 하얗게 보였다. 손을 탁탁 털면서 현광이가 말했다.

“돈은 이미 창수하고 택기, 그 녀석들이 다 써 버렸을 끼고. 안 썼다 하더라도 니가 찾아올 수도 없는 기고.”

“미, 미안하다. 사실은……”

“됐다, 보선아. 미안하다는, 그런 말 들으러 온 거 아이다.”

보선이는 여전히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니도 병철이가 누군지 알제? 그래, 아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오늘 창수하고 택기가 한 방에 싹 뺏어가 버린 그 돈은, 우리가 병철이 아버지 생일 선물 살라꼬 한 달 동안 신문 배달 하믄서 모은 기다. 병철이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막일하는데, 신발이 다 떨어졌다 하데. 병철이가 새 운동화 사 드린다고 해서 우리도 힘을 보탠 거거든. 너거는 그 돈 가지고 어디다 쓸지는 몰라도, 우리한테는 큰돈이었다 아이가.”

“……”

“돈도 돈이지만, 창수나 택기 그 놈들은 내가 보기에는 사람 안 된다. 뻔하다. 저렇게 살다가 어데 가서 깡패 짓이나 하고, 술이나 묵고 나중에는 교도소나 이런 데 들락거릴 게 뻔하다. 안 그렇나?”

“……”

보선이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아버지가 떠올랐다.

“보선아.”

“와?”

“그래도 찬우나 병철이는 오늘 일이 니하고는 전혀 상관없다고 하더라. 내가 니를 분명히 봤다고 했는데도 갸들은 아니라고 하더라.”

“……”

“너거들, 2학년 때는 같은 반 했다매? 아섭이가 니를 잘 알데. 너거 집도 아섭이가 가르쳐 준 거다. 니, 그때는 엄청 착했다믄서. 그란데 우짜다가 창수나 택기 같은 녀석들을 따라 댕기게 됐노?”

“그, 그거는……”

“보선아, 니 정 그러면...”

현광이가 천천히 보선이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니, 친구 없으면 그냥 우리랑 놀자. 니도 찬우는 잘 안다 아이가.”

“……”

“창수랑 택기 따라 댕기 봤자 뭐하고 다닐지 니도 뻔히 잘 안다 아이가, 맞제?”

“혀, 현광아. 내, 내는……”

“됐다. 같이 놀 생각 있으면 내일 수업 마치고 우물 놀이터로 온나. 우리는 맨날 거기서 논다. 창수, 택기 눈치 보지 말고 온나. 골목으로만 안 끌려가면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나? 알겠제?”

“……”

“내는 인자 갈란다. 늦었다. 내일 보자, 보선아. 간다.”

현광이는 말을 마치고 일어섰다. 보선이는 그런 현광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너거끼리는 친하다고 안 그랬나?”

현광이 어머니가 상을 치우면서 말했다.

“와? 누구 말이고?”

현광이 아버지가 깁스한 다리를 이불 위로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그렇게 사이좋다 하더만, 찬우하고 병철이하고 아섭이하고 셋이서 오늘 싸움이 붙었다 하데요.”

“뭐, 셋이서?”

별 일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는 현광이를 쳐다보았다.

“근데 그 녀석들끼리 붙으면 무조건 찬우가 이기는 거 아이가?”

“그렇긴 해도 병철이가 아섭이하고 한 편을 먹었는지 오늘은 찬우도 작살이 났다 하네요. 입술이 터지고 난리도 아니라 하데요.”

“누가 그라더노?”

“아섭이 엄마랑 아까 저녁에 시장에 같이 갔다 아임미꺼? 아섭이 엄마가 그라데요.”

“그라모 현광아, 니는 와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노? 니는 심판 봤나?’

아버지가 벽에 기대면서 현광이에게 물었다. 현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기 아이고, 찬우 주먹 실력이 보통이 아니니까, 병철이랑 아섭이가 날 잡아서 한 번 엎었는갑더만요.”

현광이 어머니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찬우가 그렇게 당할 만큼 머 잘못한 기 있나? 그 착한 얼라가.”

“얼라들 일을 우리가 우째 알겠습니꺼? 저거도 저거 세상이 있고, 저거끼리도 갈등이 있겠지예. 그래도 아섭이 엄마는, 아섭이가 맨날 졸병처럼 보이다가 대장 같은 찬우를 한 번 두들겨 팼다 하니까 기분은 좋아 보입디더.”

“이 사람이, 지금 무신 소리 하노? 저거 자식이 남의 자식 때린 기, 말대로 그래 좋겠나? 별소리를 다 한데이. 갸들도 다 내 자식인기라. 이 마을에서 벌써 십 년 넘게 마주 보고 살았다 아이가. 어데서 그런 소리를 하노? 설사 얼라들, 저거끼리 싸웠다 해도 어른들이 그런 걸 보면 야단을 쳐야제, 잘했다고 좋아하기는.”

현광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면박에 어머니가 할 말을 잃었다.

“근데, 거 참 신기하네. 친형제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더만. 진짜 무신 일이 있었나? 현광아, 니는 그래도 모두하고 사이좋게 지내라이, 알겠제?”

“응, 아버지.”


그때 삐, 하고 초인종 소리가 났다.

“내가 나가 보께, 엄마.”

현광이가 대문으로 나갔다. 문을 열어 보니 아무도 없었다. 현광이 엄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고? 오늘은 늦었다, 내일 놀아라!”

“엄마, 아무도 없다. 동네 꼬맹이들이 장난쳤는갑다.”

“또 그 놈들이가?”

문을 닫고 돌아 서려는데 발끝에 비닐봉지 하나가 차였다. 뭔가 싶어 슬쩍 만져 보니 부스럭 소리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비닐봉지를 풀었다. 돌멩이 하나와 구겨진 천 원짜리 한 장, 그리고 조그만 종이가 들어 있었다. 천천히 종이 조각을 펼쳤다. 거기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미안하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현광이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천 원짜리와 종이를 비닐봉지에 도로 넣은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 병철이에게 전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오후, 아이들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보선이는 끝내 우물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보선이가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듣고서 현광이는 다시 보선이의 집을 찾아갔다. 며칠 전 보선이와 함께 널어놓은 하얀 이불이 여태 그대로 담장에 걸려 있었고, 집 안에서는 어떤 여자의 비명 소리와 함께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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