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월이 되자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정미는 수정이의 등에 좁쌀같이 퍼부은, 때 이른 땀띠가 걱정되었다. 헬렌 수녀님이 아침저녁으로 약을 발라주었지만 원래 아이들은 땀이 많아서 땀띠 분粉을 발라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던지 수정이는 자는 동안에 계속해서 등을 긁었다. 그것이 자꾸만 덧나고 결국엔 진물까지 묻어났다. 등을 긁지 못하도록 잠을 안 자고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미는 오늘 밤엔 자기 전에 수정이를 따로 목욕이라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대식이를 데리고 자애원 마당에 들어섰을 때 정미는 깜짝 놀랐다. 경광등이 번쩍거리는 경찰차 한 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경찰차가 신기한 듯 어린 원생 몇몇이 그 주위에 몰려 있었다.
“우어어어, 우어어.”
“응, 으응.”
소변이 마렵다는 대식이의 재촉에 정미는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황준호 형사는 헬렌 수녀가 건네 준 얼음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자리에 앉았다.
로사 수녀가 황 형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매번 그렇듯이 이번에도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부터 앞섰다. 황 형사는 땀을 닦으며 말을 꺼냈다.
“원장님.”
“네, 형사님.”
“원장님, 여기 원택기라는 아이가 있지예?”
“네? 태, 택기가 또 무슨?”
황 형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로사 수녀와 헬렌 수녀를 번갈아 쳐다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머, 다들 바쁘시니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 께예. 그 택기가 연산 로터리에 있는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오, 하느님.”
로사 수녀가 갑자기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헬렌 수녀가 급히 부축을 하려는데 로사 수녀는 손을 내밀어 괜찮다는 표시를 겨우 했다.
“형사님, 지금 택기는 어디 있습니까? 교도소에 있습니까?”
“현행범이라서 아직 조사 중이라 동래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습니더. 근데……”
“……?”
“이번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절도 신고가 몇 건 있었는데, 인상착의나 정황을 보니 아마도 모두 동일범, 그러니까 원택기의 짓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아녜요. 아녜요, 형사님. 그럴 리가 없을 거예요. 자세히 알아봐 주세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로사 수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황 형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원장님, 더 큰 문제는, 원택기가 이 범죄를 진술하는 과정에서, 자기는 시키는 대로만 했다꼬 자꾸 우기고 있는 기 문젭니더.”
“네? 시키다니요? 다른 사람이 택기한테 그런 나쁜 짓을 시켰다는 말씀이죠? 그러면 그렇지, 택기는 자기 뜻으로 그런 나쁜 짓을 할 애가 아닙니다. 절대로요.”
로사 수녀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잠시 뜸을 들인 황 형사는 수첩을 뒤적이더니,
“그런데, 그기 다른 사람이 아이고. 나 참 우째 말해야 되노? 원장님. 여기 자애원에 원창수라고 또 있지예?”
“아, 맙소사. 택기야……”
로사 수녀의 목소리가 다시 우는 소리로 바뀌었다.
“원장님, 그래도 아직 그것은 확인된 것은 아니고, 본인이 그렇다고 주장을 하는 거니까, 창수가 그런 건지 아닌지는 아직 모릅니더. 지가 아무리 그래 말해도 저희도 조사를 해 봐야 되는 기니까, 진정하이소.”
“형사님, 우리 택기가, 우리 창수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정말입니다. 다시 한번 정확하게……”
황 형사는 난처하다는 듯 모자챙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창수, 지금 있으면 좀 불러 주실랍니꺼?”
로사 수녀는 눈을 감은 채로 말이 없었다. 헬렌 수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원장실을 나갔다.
“원장님예.”
황 형사가 낮은 목소리로 로사 수녀를 불렀지만 로사 수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지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 아입니꺼? 다 마찬가집니더. 내 새끼가 어데서 잘한다 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고, 내 자식이 누구보다 못한다 소리 들으면 화도 나고. 원장님한테 창수나 택기는 전부 자식이나 다름 없으시겠지예. 예, 지도 잘 압니더."
"......"
"하지만 자식이 잘못을 하면 덮어줄 끼 아이라, 매도 들고 혼도 내고 하면서 바른 길로 이끌어 주야 안 되겠습니꺼? 좋게 생각하이소. 차라리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꼬, 머리가 더 커서 돌이킬 수 없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불거진 문제를 치료하고 갈 수 있는 좋은 때고, 이기, 갸들 인생에 있어서도 도움이 될 낍니더.”
“그, 그럼 형사님. 만일에, 만일에 우리 애들이 그 죄를 지었다고 확인이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로사 수녀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머, 아직은 열다섯 살이 안 되었으니까, 교도소로 가지는 않고 소년원이나 미성년자 교화 시설로 갈 낍니더. 그라고 거기서도 행형 성적이 좋으면 빨리 나오기도 하고, 거기서 또 직업 훈련을 받아 취직을 할 수도 있습니더. 본인이 원하면 공부도 더 할 수 있고요.”
“오, 하느님. 교화라니요. 저 착한 아이들이 무슨 교화를 받는단 말입니까?”
로사 수녀는 또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황 형사도 그런 로사 수녀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헬렌 수녀의 뒤를 따라 창수가 들어왔다.
“니가, 원창수?”
창수는 경찰 복을 입은 황 형사를 보자마자 겁부터 먹었다.
“그래, 긴장하지 말고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왔으니까네, 여기에 앉아 봐라.”
창수가 주춤거리며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다.
“원창수. 다 알고 왔다. 그냥 빨리 끝내자.”
웃는 표정이었지만 황 형사의 눈빛이 차갑게 번득였다. 사람 좋아 보이던 황 형사가 정색을 하며 차가운 모습을 보이자 창수는 물론, 헬렌 수녀와 로사 수녀도 덜컥 겁이 났다. 황 형사가 볼펜을 꺼냈다.
“원창수, 원택기하고 어떤 사이고?”
“같은 자애원 원생입니더.”
“친구가?”
“……”
“둘이 친구가?”
“형젭니더.”
“형제? 그래서 성이 둘 다 원 씨가?”
황 형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뇨. 부모의 존재나 호적이 파악되지 않은 경우에는 대개 위탁된 원장의 성을 많이 따르는데, 일반 보육원이 아닌 종교계 보육원은 저희들처럼 신앙인들이 맡아서 운영을 하다 보니, 별도의 성을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원생이라고 원 씨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헬렌 수녀가 대신 답을 했다.
“그럼 둘 다 친부모가 없단 말이제?”
“친부모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친부모가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이번엔 로사 수녀가 대답을 했다.
황 형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창수에게 물었다.
“학교는?”
“동명 국민학교 육 학년입니더.”
“육 학년이면 열세 살? 우리 아들내미도 동명 다니는데, 사 학년에 황택모라고 혹시 아나?”
“모르겠습니더.”
“그래, 험, 그러면 택기하고 니하고, 둘이 같은 반이가?”
“택기는 일 반이고 저는 오 반입니더.”
“그래, 그럼 됐고, 창수야. 원택기는 지금 동래 경찰서에 있다.”
창수는 의외로 그다지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 표정을 보니 니도 알고 있는갑네.”
“……”
황 형사는 수첩을 꺼내서 적어둔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원택기가 사흘 전, 유 월 육일, 현충일 날 저녁 여덟 시 삼십 분경, 연산 로터리 형제 슈퍼에서,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음료수 두 병과 새우깡, 죠리퐁 등의 과자를 훔치고 또.”
“또 돈도 훔쳤지예?”
창수가 말을 가로질렀다. 황 형사는 조금 놀랐지만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응. 그래. 현금 이 천사 백 원을 훔치다가 가게 주인한테 그 자리에서 잡혔다.”
“……”
“그런데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니가 시켰다고 택기가 그라던데, 맞나?”
로사 수녀가 창수의 옷깃을 잡았다.
“창수야, 아니지? 아니라고 말씀드려, 얼른.”
“창수야, 왜 그냥 있니? 너는 택기랑 다른 애잖아. 응, 창수야.”
헬렌 수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나 창수는,
“경찰 아저씨, 가시지예. 원장님과 사감님 계신 데 말고, 경찰서 가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택기랑 같이 말씀 드리겠습니더.”
황 형사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모자를 챙기며 일어났다.
“그래, 생각 잘했다. 조사해서 별일 없으면 바로 돌려보내 줄 끼다.”
황 형사는 창수의 팔을 잡아끌며 일어섰다.
“원장님, 그만 가 보겠습니더.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로사 수녀가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문을 나서던 창수를 잡고 로사 수녀가 말했다.
“창수야, 힘들면 기도를 해라. 하느님께서 도와 주실 거다.”
창수는 굳은 표정으로 황 형사와 함께 복도 끝 계단을 내려갔다.
“오빠.”
그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층 난간에서 웅성거리는 아이들 사이에 정미가 울고 서 있었다. 정미는 어깨를 들썩였다. 창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정미에게 말했다.
“정미야, 택기가 니 보고 싶다 하더라. 편지한다 하더라. 편지 오면 답장 꼭 써 주라, 알겠제?”
황 형사가 빨리 가자는 듯, 창수의 등을 밀었다. 정미는 그런 창수를 보면서 바닥에 엎드려 또 울었다.
창수를 태운 경찰차가 자애원 마당을 빠져나갔다.
원장실 창가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헬렌 수녀는 또다시 울먹였다.
“원장님,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철거 명령을 얼마간 유예해 달라는 공문을 아직 보내지도 못했는데……”
로사 수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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