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사춘기

by 진우


여름 방학이 끝났다. 개학 첫날의 교실은 어수선하기만 했다.

방학 숙제를 걷은 김 선생님은 반장에게 자습 감독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방학의 분위기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코흘리개들에게 '조용히 자습'이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앞뒤로 돌아앉아 무리 지어 재잘거렸고 또 몇몇은 몰래 숨겨온 만화책을 뒤적이거나 장난감 따위를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교탁 앞에 나선 현수조차 자습을 감독해야 하는 반장의 본분은 까맣게 잊은 채 앞줄에 앉은 여학생들과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우와아, 그래서 그 담엔 우째 됐는데?”

“이야, 호준아. 니는 진짜로 재미있었겠네?”

“에이씨, 나는 언제쯤 디즈니랜드라 카는 데에 가 보겠노?”

“니가 호준이한테 시집가면 된다 아이가? 히히.”

“뭐라고? 이 가시나가 죽고 싶나?”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아이들의 관심이 그지없이 즐거운 듯 호준이는 잔뜩 폼을 잡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이야기를 다시 이었다.

“우리 아빠가 차를 세우라고 하니까 운전사 아저씨가 재빨리 내리더니 밖에서 차문을 열어주더라고.”

“……”

“내가 차에서 내리려고 했거든? 그때 어디선가 마징가 제트 옷을 입은 아저씨가 달려와서는, 나를 번쩍 안아주면서 웰컴 투 디즈니랜드, 이러는 거야.”

“그기 무슨 뜻이고?”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의 복만이가 코를 벌름거렸다.

“이 바보야, 잘 왔다는 말도 니는 모르나? 웰, 컴 말이야, 웰, 컴.”

“시끄럽다, 임마. 호준아, 계속해 봐라.”

“야, 너희들. 내 말 끊지 마. 자꾸 그러면 이야기 안 한다? 험험, 여하튼 우리 아빠가 박수를 탁탁 치니까 이번엔 미키 마우스가 나한테로 다가와서는, 뭐 먹을 거냐고 영어로 물어보는 거야.”

“우와……”

“내가 환타를 먹겠다고 하니까 조금 있다가 도날드 닥이……”

“도날드 닥? 그 꽥꽥, 도날드 닥?"

아이들의 감탄은 열린 창을 넘어 운동장 한 편의 수양버들까지 퍼졌다. 매미들이 기를 쓰고 울어댔다.


호준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부잣집 아이였다.

폼나게 차려입은 옷도 그랬지만 호준이가 가지고 있는 필통과 연필, 지우개에는 우리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꼬부랑글씨가 잔뜩 적혀 있었다. 어떤 것은 영어, 또 어떤 것은 일본 글자라고 했다. 그런 호준이의 모습은 반 아이들에게 일종의 신비스러움과 함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는 호준이의 관심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여자 아이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단순히 옷과 소지품뿐만이 아니었다. 호준이는 외국의 유명한 곳을 직접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또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제주도는커녕 경주조차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디즈니랜드, 나이아가라 폭포, 파리의 에펠탑 등등은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

특히 여름 방학이 끝난 직후에 호준이가 척척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는 몇 단계를 거쳐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퍽이나 신기하고 그저 재미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디즈니랜드 이야기를 듣느라 선생님이 교실로 돌아온 것조차 몰랐다.


“찬우야, 니는 어디 가 봤노?”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병철이가 물었다.

“머 말이고?”

“외국 말이다. 미국이나 독일, 이런 거.”

“없다. 그러는 병철이 니는? 가 본 데 있나?”

“헤헤. 나도 없지.”

“나중에 어른 되어서 가믄 되지, 뭐.”

“어쨌거나 나는 호준이가 부럽다, 아버지가 돈도 많고 방학되면 외국에도 가고, 맞제?”


병철이가 또 친부모를 찾아갈 거라는 말을 꺼낼까 봐 찬우는 은근히 겁이 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근데 찬우야.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기 있다.”

“먼데?”

“호준이는 맨날 말만 하고 사진 같은 거는 절대 안 보여 주더라. 쫌 이상하지 않나?”

“……”

“내 같으면 그런 데서 찍은 사진 딱 보여주면 다들 한 방에 깨갱할 낀데.”

“......”

“그라고 찬우 니, 혹시 한 번이라도 호준이 집에 가 봤나? 내가 물어봤는데 우리 반에서 호준이 집에 놀러 가 본 애는 하나도 없더라. 그라고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도 없더라.”

듣고 보니 찬우도 그건 이상했다.

“그라고 글마는 부산말 안 하고 서울말 쓴다 아이가.”

“고향이 서울인갑지 머.”

“지 말로는 아침저녁으로 기사 아저씨가 학교까지 태워준다 카던데,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본 사람도 없다. 혹시 학교 옥상으로 다니나?”

뜬금없는 병철이의 말에 찬우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그라모 호준이가 헬리콥터를 타고 다닌다는 말이가?”

“머, 그건 아니겠제? 그렇다면 맨날 옥상에서 타타타타, 소리가 들릴 낀데.”

“……”

“하여튼 짜식이 뭔가 이상하긴 하다. 아이들이 뭐라도 훔쳐 갈까 싶어 집에 오지 말라는 건가? 우리가 잘 안 씻어서 더러워서 그런가?"

병철이는 연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편으로 찬우 역시 병철이의 의문에 공감이 갔다.

호준이는 언제나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런 것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진 따위는 단 한 번도 가져온 적이 없었다.


며칠 동안 질문을 달고 다니던 병철이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3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역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호준이에게 다가갔다.

“호준아, 니 말, 다 좋은데, 거기 가서 사진은 한 장도 안 찍었나? 집에 있으면 한 번 갖고 와봐라. 손 안 대고 눈으로만 보께. 사진이라도 한 번만 보여 주라.”

호준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우리 아빠가 사진 찢을까 봐 못 갖고 가게 해서 그래.”

“그러니까 손 안 대고 눈으로만 본다니까. 아니면 우리가 너그 집으로 놀러 가서 보믄 안 되나?”

“맞다. 사진 같은 거 있으면 함 갖고 와 봐라. 나도 디즈니랜드 한 번 보자.”

여태껏 호준이와의 경쟁에서 계속 밀린다 싶었던 현수가 병철이의 추궁에 힘을 얻었다. 현수는 애써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호준아. 마징가 제트는 일본 만환데 그게 머 할라꼬 미국 디즈니랜드에 가 있노?”

회심의 결정타였다. 그러자, 호준이는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좋은 질문이야. 그건 미국 사람들이 일본에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거지. 우리나라도 미국에서 장사하려고 영어 배우잖아? 너희들은 그런 것을 이해해야 돼. 단순히 좋은 물건을 갖고 있다고 미국이 무조건 일본에 팔 수 있는 건 아니거든. 현수 너는 책을 더 읽어야겠다. 전자 오락은 그만하고.”

그 소리에 애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졸지에 무식한 아이가 되어버린 현수는 벌게진 얼굴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사진이 있건 없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날의 일로 인해 호준이는 명실상부 우리 반에서 제일 유식한 부잣집 아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호준이의 위상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이었다.




조례를 마치고 일교시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문을 연 사람은 옷차림이 꽤나 남루해 보이는 어떤 할머니였다.

“누구시죠?”

김 선생님이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선생님. 수업하시는데 죄송합니더. 저는 호준이 어미됩니더.”

그 말에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호준이가 도시락을 안 가지고 가서……”

반에서 제일 부자인 호준이 엄마가 저런 차림의 할머니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

호준이 어머니는 들고 있던 도시락을 선생님에게 건네주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내밀었다.

“선생님요, 이거 아침에 팔다 남은 겁니더. 집에 가지고 가서 드이소. 내가 장사한다꼬 바빠서 그동안 학교를 한 번도 못 와서 죄송합니데이.”

그것은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생선 두 마리였다.

"어? 찬우야, 저거 고등어다."

명수가 찬우 어깨너머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이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호준이 어머니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문을 닫고 나가려다가 눈으로 서둘러 호준이를 찾았다.

“호준아, 친구들하고 공부 열심히 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엄마는 먼저 간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호준이를 돌아보았다. 호준이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 자식, 순 거짓말쟁이 아이가.”

땅바닥에 드러누운 호준이 위로 복만이가 올라탔다. 곁에 섰던 현수가 호준이를 걷어찼다.

“아냐. 그 아줌마는 우리 엄마가 아냐. 우리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머라꼬? 이 자식이 미친나. 순 공산당 아이가? 너그 집에서는, 일하는 가정부가 주인집 아들보고 엄마라 부르라 카나?”

바닥에 쓰러진 호준이는 복만이의 주먹세례를 그대로 받았다. 찬우도, 현광이도 어느 누구 하나 말릴 생각은 않고 호준이가 맞은 것을 보고만 있었다. 다만 아섭이 혼자 작은 소리로,

“복만이 점마는 거짓말 확인하는 데에 목숨 걸었나? 지난번에는 병철이를 못살게 굴더만 이번에 호준이한테 그러네?”

하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며칠 후였다. 아침 조례를 하러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이 말했다.

“자, 조용. 이미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우리와 정들었던 호준이가 이번에 전학을 가게 됐다. 다들 아쉽겠지만 나중에 또 만날 수도 있겠지. 자, 양호준, 앞으로 나와라.”

갑작스럽게 전학을 간다는 말에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호준이가 고개를 숙인 채로 교탁 앞으로 섰다.

“자. 호준이, 반 친구들한테 인사 해야지?”

호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선생님은,

“너희들하고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호준이가 말을 못하나 보다.”

하며 다시 호준이를 자리로 들여보내려는데 갑자기 복만이가 벌떡 일어섰다.

“디즈니랜드 가서 공부 잘해라, 임마.”

아이들 몇몇이 킥킥대며 웃음을 쏟았다. 호준이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복만이를 한 번 째려보고는 교실 밖으로 휙 뛰어 나갔다. 선생님이 호준이를 따라 급히 교실을 나갔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호준이가 전학을 간 것은, 완도에서 농사를 짓던 호준이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호준이가 전학을 간 이후에도 호준이에 대한 아이들의 성토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마징가 제트가 디즈니랜드에 있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느니, 그런 부잣집 애가 자기 집 구경은 한 번도 안 시켜주었다느니, 나중엔 호준이가 군복을 입은 사람과 같이 걸어가는 걸 봤다고까지 하는 애들도 있었다.

찬우와 친구들은 혹시나 호준이가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책을 참 많이 읽었는갑다.”

우물터에서 놀던 중에 뜬금없이 병철이가 말했다.

“누구 말이고?”

“호준이 말이다.”

“병철이 니는 아직도 호준이 생각하나? 디즈니랜드 갈 수 있었는데 못 가서 아쉽나?”

아섭이가 깐족거렸다.

병철이는 예상외로 조용히 말했다.

“너거, 호준이가 복만이한테 얻어맞던 날 기억나제?”

“응.”

현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하다못해 찬우라도 복만이를 말렸을 건데, 머 땜에 다들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노?”

찬우는 그날을 떠올렸다. 진짜 왜 그랬을까?

“너거는 호준이가 거짓말쟁이라고 들통나서 복만이한테 얻어터지니까 고소했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솔직히 나는 잘 이해가 안되더라.”

병철이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뭐가? 외국 가 봤다 하는 말들이 전부 거짓말이라서 안 그렇나.”

아섭이가 철봉에서 몸을 흔들다가 내려왔다. 병철이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준이가 거짓말을 한 게 그렇게 얻어맞을 짓이었나 그 말이다.”

다들 무슨 소린가 싶어 병철이를 쳐다보았다.

“병철아, 나는 니가 지금 먼 말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섭이가 눈을 찌푸렸다.

“거짓말을 한 거는 분명히 나쁜 일이지만, 그냥 호준이가 지어낸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주믄 되는 거 아이가? 사실 너거 호준이가 그런 말 했다고 해서 무슨 피해본 거 있나?”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시는 거랑 호준이가 지어낸 이야기랑 다를 게 머가 있노? 선생님도 미국 안 가봤을 걸?"

“……”

“우리도 마찬가지로 미국 안 가 봤잖아? 그런데 선생님 말에는 끄덕끄덕하고, 호준이는 거짓말쟁이라 하고. 진짜로 디즈니랜드가 그런지 안 그런지 우리 중엔 아무도 모르는 거 아이가?”

다들 병철이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라고 호준이가 그런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재미있어하더니, 막상 호준이가 전학 가고 나니까 욕하는 녀석들은 또 머꼬? 그냥 듣는 동안은 우쨌거나 다들 재미있었다 아이가? 찬우 니도 재밌었잖아?”

병철이의 말에 찬우와 현광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아섭이가 병철이의 말을 바로 받았다.

“그런데 호준이는 거짓말을 했다 아이가. 미국도 안 갔으면서 가 봤다꼬. 그건 나쁜 일 아이가.”

"그래서, 그래서 니가 피해본 거 있나? 호준이가 거짓말해서 니가 손해 본 거 있냐고?"


한참 동안 병철이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찬우가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내 생각에는, 병철아. 니가 사춘기가 오는갑다.”

“사춘기?”

“사춘기가 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하더라. 약도 없단다.”

현광이가 손을 탁탁 털었다. 먼지가 일었다.

“쩝, 고마 하자. 머리 아프다. 인자 집에 가자. 배 고프다.”

아섭이의 말에 다들 가방을 챙겨 메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아이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묵묵히 걷기만 했다.


(계속)



*Image by J.Rim Le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