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새장

by 진우


“머 하노?”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찬우의 등을 툭 치며 병철이가 물었다.

“응, 편지 본다.”

“편지? 무슨 편진데?”

“정미, 정미 편지다.”

“정미? 자애원 정미 말이가?”

앞에 앉은 아섭이가 고개를 홱 돌리며 끼어들었다. 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정미가 니한테 편지를 보냈나? 와아, 머 땜에 여자애들이 찬우 니만 이래 좋아하는지 나는 죽어도 모르겠다.”

아섭이는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쳤다.

“방학 동안 자애원이 없어졌다고 하더만 대구로 이사갔는갑네?”

병철이가 겉봉을 건네받아 앞뒤로 스윽 훑었다.

“대구는 억수로 덥다 하던데.”

“그럼 정미는 원다이비어랑 같이 갔나?”

“그래도 이젠 창수랑 택기가 없으니 아무리 덥다 해도 그럭저럭 지낼 만할 끼다.”

병철이가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다, 인자 잊어 뿌라.”

찬우가 병철이의 어깨를 툭 쳤다. 병철이도 살짝 웃었다.

그때 교실 문이 왈칵 열렸다.

“어이, 이 반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입 다물지 못해?”

교실 안으로 성큼 들어선 사람은 뜻밖에도 서무 과장이었다.




어느덧 창문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서무실 한쪽 구석에는 현광이와 아섭이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든 채로 무릎을 꿇었다.

“요 놈의 새끼들, 손 똑바로 안 들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서무 과장의 눈이 현광이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현광이는 애써 눈길을 피했다. 서무과장은 아이들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이 자식들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엉? 네 놈들은 말이야,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고, 도둑놈들 중에서도 최고 악질들이야, 알겠어?”

“갸들, 말로 해서는 안 됩니더. 육성회비 그것 몇 푼이나 한다꼬. 벌써 석 달이나 밀렸다 아입니꺼? 마감도 못하고 미치겠네예. 과장님, 혼 좀 내 주이소.”

서무실 누나가 잡지를 뒤적거리며 이죽거렸다. 그 말에 한층 더 기세가 등등해진 서무 과장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알았어, 미쓰 김. 어이, 너.”

지명을 받은 아섭이가 겨우 눈을 맞추었다.

“예, 예?”

“너, 내가 누구야?”

“서무 과장님이십니더.”

“임마, 나는 그냥 서무 과장이 아니라 이 학교의 주인이야, 주인.”

서무 과장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아섭이의 볼을 쥐고 흔들었다. 아섭이의 볼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것 같았다.

"넌 왜 육성회비 안 냈어?"

"아, 아버지가 내일 주신다고..."

서무 과장이 아섭이의 다른 볼을 고쳐 쥐었다. 여태 잡혀있던 볼은 금세 벌게졌다.

“네놈들은 말이야, 돈도 안 내고 공짜로 학교를 다니려는, 아주 나쁜 놈들이야. 알겠어? 장현광, 손아섭, 사 학년 중에는 너희 두 놈만 육성 회비를 아직 안 냈어, 그것도 삼 개월치나 말이야. 너희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내가 가르쳐 주지. 다들 따라 해라. 나는 거지다.”

“……”

“이놈들아, 뭐해? 따라 하라니까. 나는 거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따라 하지 않았다.

"이 자식들이? 뭐해, 따라 하지 않고. 나는, 거지다! 빨리 따라 해!"

참다못한 현광이가 버럭 했다.

“우린, 거지 아닙니더.”

“뭐, 뭐야? 너 뭐야?”

서무 과장이 현광이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현광이는 눈을 부릅뜨고 올려다보았다.

“너, 뭐라 그랬어? 그리고 너, 눈 안 깔어?”

“육성 회비는 못 냈지만, 거지는 아닙니더. 다음 달엔 꼭 낼 겁니더. 우린 거지, 아...”

철썩.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무 과장의 손이 날아왔다. 투박한 쇠가죽 같은 것이 뺨에 닿는다 싶었는데 눈앞이 하얘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현광이 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전보다 일이 많이 줄어든 눈치였다. 물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아버지로부터 과자를 받던 가게들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과 거래를 시작해 버린 이유가 제일 컸다. 현광이 어머니가 반찬 값이라도 보태려고 시작했던 스웨터 손질 부업마저도 날이 더워지니 눈에 띄게 일감이 줄었다.

동네 어른들 말로는 석유 파동 때문에 불경기가 온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석유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오토바이를 타는 현광이 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석유가 전혀 필요 없는 병철이와 아섭이 아버지의 일까지 한꺼번에 모두 빼앗아 가버린 걸까. 아이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든 일이 많이 생겼다. 특히 수업이 끝날 즈음에 서무 과장이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일이 늘어났다.


현광이는 가방을 메고도 집을 나서지 않고 대문간에서 서성거렸다.

“현광아, 왜 학교 안 가노?”

“엄마, 육성회비 갖고 가야 된다.”

“……”

“학교에서 오늘까지는 꼭 가져와야 된다 하던데……”

“얼, 얼만데?”

“석 달이 밀맀다꼬 천 삼백 오십 원이라 하더라.”

“내일 준다고 해라.”

“어제도 그렇게 말했다가 서무실에 불려 가서 벌섰다.”

“아니다. 진짜 내일은 꼭 준다고 해라. 현광아, 엄마 말을 믿어라. 알겠제?”


하지만 그 ‘내일’은 며칠째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오늘은 수업을 마치기 무섭게 교실로 들어선 서무 과장이 현광이와 아섭이 그리고 또래 몇을 굴비 꿰듯 서무실로 끌고 온 것이었다.


“요놈의 자식, 어른께서 말씀하시는데 말하는 것 좀 보게? 다시 말해 봐라. 뭐? 거지가 아니라구?”

현광이는 더 눈을 크게 뜨고 당당하게 말했다.

“예,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더. 도둑놈도 아닙니더.”

“이 자식이……”

서무 과장이 또 뺨을 때렸다. 철썩.

“왜 때립니까? 내가 머 잘못했습니꺼? 예? 내가……”

현광이는 얼굴을 가리며 애써 손을 피하려 했지만 몇 대를 더 얻어맞았다. 볼이 얼얼해졌다. 옆에 있던 아섭이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

서무 과장이 가쁜 숨을 식식거리며 벌게진 낯으로 침을 튀겼다.

“이 조그만 녀석이 보통 독종이 아니네? 너 어디서 그런 것 배웠냐, 이 나쁜 놈아. 너희 잘난 선생이 가르쳐 주더나?”

“우리 선생님 욕하지 마세요. 왜 우리 선생님 욕합니꺼? 그라고 우리 엄마가 내일은 꼭 준다 했습니더. 정말입니더. 그런데 왜, 왜 때립니꺼? 내가 맞을 짓이라도 했습니까?”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어른이 말하는데……”

서무 과장이 다시 손을 쳐들었다. 그때였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서무실이 떠나갈 듯한 큰 소리였다. 그 바람에 서무실 누나는 보고 있던 잡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부서질 듯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현광이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여태껏 애써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주르륵 쏟아졌다.

“서, 선생님. 으아앙.”

아섭이가 코를 흘리며 울었다.

“서무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예?”

김 선생님이 서무 과장 앞에 맞섰다.

“험. 보면 몰라요? 이 녀석들이 학교 규칙을 안 지켜서 벌을 주고 있는 거요.”

그제야 서무 과장은 슬그머니 현광이의 멱살을 풀고는 소매를 내렸다. 현광이는 바닥에 엎드려서 선생님이 보지 못하도록 몰래 코피를 훔쳤다.

“우리 애들이 무얼 잘못했길래 이렇게 손찌검을 하는 겁니까?”

선생님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손찌검이라니? 이건 사랑의 매요. 다들 내는 육성회비를 한 달도 아니고 석 달치나 안 냈어요, 석달치. 이런 놈들은 이렇게 따끔하게 혼을 내서 규칙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서무 과장은 당연하다는 듯, 그러나 선생님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건 담임인 제가 할 일입니다. 서무 선생님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애들에게 손을 대는 겁니까?”

“자격요? 자격이야 당연히 내가 서무 과장이고 이 학교의 주인이니까, 주인으로써 이 학교 운영에 필요한……”

“그 몇천 원이 없으면 학교가 당장 문을 닫습니까?”

선생님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번에는 서무 과장이 도리어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근데, 김 선생님.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요? 김 선생님이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 저 거지새끼들 감싸지 말아요. 육성 회비 떼먹고 졸업하는 놈들도 많아요. 그렇게 큰 놈들이 나중에 세금 안 내고 돈 떼먹고, 그렇게 된단 말입니다. 애초에 그럴 싹을 자르자는 것, 이게 바로 교육이라니까.”

“육성 회비 못 내는 아이들은 함부로 때려도 된다는 규정 있습니까? 서무 선생님, 이거 폭력입니다. 신고하면 잡혀갈 죄란 말입니다. 그것도 모르세요? 애들 앞에서 할 말 안 할 말 가려서 하세요. 다 듣고 배웁니다. 학교에서 감히 폭력이라니, 부끄러운 줄 아세요!”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에라이. 배울 테면 배우라 그래. 이 놈들은 벌써 싹수가 노란 것들이야.”

서무 과장은 어느새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서무 과장에게 바짝 다가섰다.

“똑똑히 두고 보세요. 오늘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뭐, 뭐? 그냥 넘어가지 않으면 어쩔 건데? 맘대로 해! 이것 봐, 김 선생. 내가 누군지 알아?”

선생님은 대답 대신 현광이를 일으켰다. 아섭이도 선생님의 소매 깃을 슬쩍 잡았다. 아이들이 따라 나온 것을 확인한 다음, 김 선생님은 서무실 문을 다시 한번 부서져라 닫았다. 쾅하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렸다. 서무 과장이 분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욕설도 문틈으로 새어 나와 복도에 흩어졌다.


“아섭이, 현광이. 너희 둘 다 저기 꿇어앉아.”

교실로 돌아왔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섭이와 현광이는 칠판 옆 시간표 아래로 조용히 벌터를 잡았다.

교실은 조용했다. 선생님의 한숨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선생님은 곧 무언가를 쓰는 것 같았다. 아섭이는 힐끗힐끗 선생님의 눈치를 보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코 끝에는 여전히 콧물이 번들거렸다.

“현광아, 니 진짜 대단하데이. 근데 니 코피 먼저 났으니까 니가 서무 과장한테 진 거다. 맞제?”

“시끄럽다, 임마.”


현광이는 생각했다. 왜 우리 집은 가난한 것일까? 왜 우리 부모님은 돈이 없는 것일까? 가난해서 돈이 없으면 남에게 손가락질받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어린데, 내가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돈을 많이 벌면 육성회비 일 년 치도 한 번에 전부 낼 수 있는데. 하지만 나는 아직 어린데.


"장현광, 손아섭."

다리가 제법 저려온다 싶을 때쯤 선생님이 불렀다. 아섭이와 현광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교탁 옆으로 다가갔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아까보다는 화가 덜 난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하얀 봉투 하나씩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아버지께 갖다 드려라. 잊어 먹지 말고.”

선생님은 현광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휴지를 꺼내 코피가 말라붙은 입 언저리를 닦아주었다. 선생님의 얼굴만 보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현광이는 행여 그것을 들킬까 봐 벌떡 일어나 고개가 무릎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께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이 창가에 서 있었다. 아섭이와 함께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했다. 선생님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둘은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푹 숙인 채 교문 밖으로 내달렸다.


그날 저녁, 아섭이는 선생님의 말대로 아버지에게 봉투를 전했다. 아버지가 봉투를 벌려 그 속에 들어있는 종이를 꺼내려는데 무언가가 먼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돈이었다. 아버지는 서둘러 종이를 펼쳤다. 아버지의 표정이 곧 굳어졌다. 놀란 어머니 역시 종이를 건네받아 찬찬히 읽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섭이의 추측으로는 그것은 아마도 선생님이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같았다. 하지만 굳이 내용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함께 들어있는 오천 원이 어떤 의미인지 대략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난 오후에 아섭이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왔다. 아섭이 아버지는 고운 미송 나무로 만든 새장을 가지고 왔는데, 이상한 것은 새장 안에 새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교실 청소를 마친 아섭이가 제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아버지는 간간이 아섭이를 쳐다 보고, 또 새장을 만지면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무슨 내용인지 아섭이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다음 날엔 현광이 아버지가 보낸 거라며 선생님은 엄청나게 많은 과자를 반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앞다투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현광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소라 과자 때문에 모두들 입천장이 헐어서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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