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매듭

by 진우


“찬우야.”

퇴근이 늦을 거라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한 시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아, 아버지.”

졸린 눈을 비비며 찬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지 마라. 계속 자라. 저녁밥은 묵었나?”

“예. 아까 병철이랑 현광이랑 라면 먹었습니더.”

“라면? 밥을 묵지 그랬나.”

“자기 엄마들은 라면 잘 끓여준다고 우리 집에서 그냥...”

“그렇나? 잘했다. 아이고, 피곤하네.”

옷을 갈아입으면서 곁눈질로 찬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찬우는 다시 이불을 덮고 몸을 돌렸다.


찬우 아버지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여전히 고민이었다. 수아 엄마에게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 두었지만 막상 찬우의 얼굴을 대하니 쉽사리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찬우야.”

“예, 아버지.”

돌아누운 채로 찬우가 답했다.

“내일 아침에 내랑 목욕 갈래? 아버지가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새벽에 같이 가자.”

“아버지. 내는 아까 라면 묵고 아이들하고 목욕탕 갔다 왔는데예.”

“아, 그렇나?”

찬우 아버지는 아쉽다는 표정이 되었다.

“알았다. 그라모 내 혼자 갈게. 아, 그리고 어쩌면 일이 많아서 내일은 집에 못 올지도 모르니까 저녁 먼저 묵고 자라.”

“예.”

찬우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다음 날 아침, 열 시가 넘어서야 찬우는 겨우 눈을 떴다. 밤새 뒤척인 탓에 늦잠을 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이불은 평소와 같이 방 한편에 잘 접혀 있었다.

찬우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안방으로 건너왔다. 천천히 옷장문을 열고는 아래에 놓인 하얀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찬우가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엄마. 오늘은 우리 둘이 여행 가자.”




이쯤인가 싶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찬우는 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안내양 누나, 여기가 대나무골 맞습니꺼?”

“맞다. 여기가 대나무골이다. 니는 도시에서 왔나? 피부가 참 뽀얗네? 얼른 내리라.”

찬우가 내리기 좋도록 안내양이 손을 잡아 주었다. 버스는 곧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 버렸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버지를 따라 여러 번 다녀간 고향 마을이지만 혼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풍으로 울긋불긋해진 산자락 끝에는 반짝이는 푸른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찬우는 보자기를 다른 손에 바꿔 들고 마을 입구를 향해 걸었다.


기계 소리가 요란한 방앗간을 지나자 빨간 양철 지붕의 외할머니 집이 보였다. 제대로 찾아왔다 싶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대문 옆에 붙어 섰다.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가 보였다. 외할머니가 마당 한가운데서 빨간 고추를 손질하고 있었다. 찬우는 대문을 밀고 성큼 들어섰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한번 더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아이고, 이기 누고? 우리 찬우 아이가? 아이고, 내 새끼. 우짠 일이고.”

손에 들고 있던 고추를 내팽개치고 할머니가 달려왔다. 찬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연신 찬우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었다. 할머니에게서 낯익은 시골 냄새가 났다.

“할머니.”

찬우는 치맛자락에 얼굴을 묻었다가 곧 머리를 들어 할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할머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고, 내 강아지. 너거 아버지는?”

“아버지는 회사 가시고 나 혼자 왔어예.”

“뭐라꼬? 그 먼 길을 우째 혼자 왔노? 아이고, 다 컸데이. 내 새끼.”

할머니는 다시 찬우의 얼굴을 감싸 쥐고 이마를 갖다 대었다. 찬우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거는 머꼬?”

여전히 찬우를 껴안은 할머니가 물었다. 찬우가 들고 있는 보자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찬우는 할머니를 툇마루에 앉힌 다음 보자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매듭을 풀었다. 보자기 속의 물건이 드러났다.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아이고, 미정아.”

할머니는 사진을 감싸듯 품에 안았다. 찬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찬우야, 그란데 니가 혼자서 우짠 일이고? 아버지는 아나?”

말없이 흐느끼던 할머니가 한참만에 소맷자락 끝으로 눈물을 찍으며 물었다.

“엄마 산소에 한 번 가 볼라꼬예.”

“너거 엄마 산소? 머 땜에?”

“그냥예.”

“죽은 엄마 산소에는 머 할라꼬? 됐다. 그냥 여기서 놀아라.”

할머니는 마음에도 없을 모진 소리를 했다.

“할머니도 참. 그래도 할머니 딸이고 내 엄마 아입니꺼? 나는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예. 좀 데리고 가 주이소, 예?”

찬우를 잠시 바라보던 할머니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라믄 그 사람들이랑 같이 오든가. 아까도 거기 가서 눈물 한 바가지 쏟고 왔는데, 또 가자꼬? 죽은 딸을 하루에 두 번이나 보러 가는 팔자인 걸 보니 나도 얼른 죽어야겠다. 근데 그라고보이, 갸들이 내려올 때가 됐는데 아직도 거게 있나? 머 볼 끼 있다꼬?”

찬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할머니가 했다. 찬우가 물었다.

“예? 할머니. 엄마 산소에 다른 사람이 갔습니꺼?”




상현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웬만해선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 법이 없는 찬우였는데, 어제저녁 찬우의 모습은 평소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녀석이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다.

상현은 곧장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한참 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친구들과 놀러 갔나?'

이번에는 수아네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마찬가지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상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임 차장에게 갔다.

“차장님, 저 잠시 집에 좀 갔다 와야 되겠습니더.”

“이 바쁜 시간에, 왜? 무슨 일이야?”

임 차장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갔다 와서 말씀드릴께예.”

상현은 서둘러 공장을 나갔다. 출구를 향해 잰걸음으로 달려 나가는 상현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임 차장은 다시 기계로 눈을 돌렸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열쇠로 문을 열려고 하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안녕하십니꺼?’

병철이었다.

“그래, 병철아. 공부 잘하고 있제?”

병철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근데, 병철아. 니, 우리 찬우 못 봤나?”

“찬우예? 어제 오후에 선생님 심부름 갔다 오다가 길에서 헤어지고는 못 봤는데예? 찬우, 지금 집에 없습니꺼?”

“어제 오후?”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찬우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니, 어제저녁에 우리 집에서 찬우하고 현광이하고 라면 안 끓여 묵었나? 동산탕에 목욕하러 같이 갔다 하던데?”

“어제 동산탕이라고예? 저는 지금 찬우랑 목욕 같이 가자 할라꼬 왔는데예.”

병철이가 목욕 가방을 번쩍 들어 보였다.

찬우 아버지는 급히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안방도 찬우의 방도 텅 비어 있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갔는지 보면 되겠다 싶어 서둘러 옷장문을 활짝 열었다. 옷걸이를 하나하나 뒤적이던 찬우 아버지가 깜짝 놀랐다. 으레 거기 있어야 할 보자기가 없었다.

'설마, 이 녀석이...'

이불 사이를 뒤져 보던 찬우 아버지는 급히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아, 아버님. 저, 강 서방입니더. 찬우, 혹시 거기 갔습니까? 예? 머라꼬예?”




“나는 그렇게 너희 아빠를 만났단다.”

수아 어머니는 찬우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푸른 바다는 여전히 넘실댔고 하늘에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뒷산 중턱에 있는 엄마의 산소 앞에 수아 어머니와 찬우가 나란히 앉았다. 조금 떨어진 밤나무 그늘 아래에선 수아가 외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처음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어, 나도.”

찬우는 조용히 수아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다.

“수아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수아 아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어. 그 뒤로 나는 평생 동안 수아와 둘이서만 살 거라고 다짐을 했었거든.”

수아 어머니는 밤나무 아래의 수아를 잠시 쳐다 보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찬우 아빠와 같이 일하는 수아 외삼촌, 그러니까 내 오빠가 병원에서 퇴원하던 그날, 처음으로 너희 아빠를 봤었지. 그때 물론 찬우도 봤고, 찬우 외할머니도 보았고. 그리고 내 옆엔 어린 수아도 있었어.”

“……”

“너희 아빠는 참 좋은 분이야. 수아랑 둘이서만 살 거라는 결심을 무너뜨린 것도 너희 아빠니까. 나에게 그리고 수아에게 참 잘해 주셨지. 결국 내가 먼저 오빠를 졸라서 너희 아빠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었어.”

“그건 수아랑 똑같네예.”

고개를 숙인 채 찬우는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수아 어머니가 다시 찬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른들의 결정이니까,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할 생각은 없어. 나도 찬우 아빠도, 수아와 찬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거든. 찬우가 이해를 못 하고 수아가 반대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찬우 아빠와 나는 너희들이 이해를 할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조용히 기다리기로 약속했어.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말이야.”

“아줌마.”

찬우는 수아 어머니를 불렀다. 수아 어머니가 찬우를 보았다.

“우리 아버지를 진짜로 좋아합니꺼? 그래서 결혼할라고 하는 겁니꺼?”

수아 어머니는 찬우를 잠시 보다가,

“글쎄.”

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다는 답을 예상했던 찬우에게는 의외의 말이었다. 수아 어머니는 산소 앞에 놓여 있던 찬우 엄마의 사진을 들어 올렸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더.”

“조금 어려운 이야기라서 네가 이해를 할지 모르겠다. 너희 아빠와 난 이미 한 번씩 아픈 경험을 한 사람들이야. 상처가 아물어도 그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거든. 그런데 그 아픔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한다, 사랑한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단다.”

찬우는 수아 어머니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잘 모르겠습니더. 이럴 때는 내가 우째 해야 되는지. 저는 우리 엄마를 본 적도, 말을 해 본 적도 없습니더. 저는 수아도 좋고, 아줌마도 좋습니더.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좋습니더. 수아도 나를 좋아하고, 아줌마도 나를 좋아하고, 또 우리 아버지도 나를 좋아해 주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산다고 하니까 기분이 억수로 좋아져야 되는데 이상하게 또 그건 안 그렇습니더. 이상하게 그냥 갑갑하고, 답답하고, 머리도 좀 아프고, 또 좀 어지럽고, 그리고 여기가 좀 짠하게 쿡쿡 쑤십니더. 먼가가 자꾸 여기를 쿡쿡 찌릅니더.”

하면서 찬우가 자기의 가슴을 가리켰다.

“내 혼자 생각에,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일을 잘 모르니까, 아직도 진짜 어른이 될라믄 한참 멀었는갑습니더. 우짜믄 좋을까예?”

찬우는 끝말을 입에 담은 채로 수아 어머니를 보았다.

수아 어머니가 찬우를 끌어당겨 꼬옥 안았다. 수아 어머니에게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꽃 냄새가 났다.

“찬우야, 네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지금 당장 말해. 그 대답이 무엇이든 간에. 그걸로 된 거야. 그걸 말하지 않으면 그렇게 가슴이 아프기 마련이란다. 나도, 수아도, 찬우 아빠도 그렇게 아픈 적이 많았어. 너도 마찬가지겠지. 이제 더 이상 아프기 싫으지 않으니까 나는 그 말을 찬우 아빠와 너에게 한 거란다. 정해진 답을 듣지 않아도 돼. 마음속 이야기를 모두 했으면, 그걸로 된 거야.”

수아 어머니는 찬우 엄마의 사진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찬우야. 넌 우리 엄마하고만 놀 거야?”

어느새 뒤로 다가온 수아가 갑자기 찬우의 등을 때렸다.

“으, 으응?”

“찬우야, 저 빨간 잠자리 좀 잡아 줘. 잡아 줄 거지? 잡아 주면 내가 또 뽀뽀해 줄게.”

가시나, 돌았나? 찬우는 금세 또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면서도 수아가 잡아 끄는 대로 엉거주춤 일어섰다.


저만치서 찬우 할머니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곁으로 다가온 할머니가 수아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가.”

“네, 어머니.”

“고맙데이, 참말 고맙데이. 찬우를 품어줘서 정말 고맙데이. 인자 너거는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너거가 잘 살믄 우리 미정이, 우리 미정이도 너거를 행복하게 지켜줄 꺼라.”

할머니는 찬우 엄마의 사진을 소매로 스윽 닦고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또 눈물을 찍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레이. 아가, 빨리 내려 가자. 작년에 니 왔을 때 묵었던 보리 비빔밥 해 줄라꼬 내가 부뚜막에 물 올려놨는데. 어서 가자, 시장하겠데이.”

수아 어머니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잠자리 날개를 건드려대며 깔깔거리는 수아의 웃음소리가 산에 메아리쳤다.


찬우 아버지는 찬우와 수아의 모습이 산 아래로 사라진 뒤에도 한참 동안 나무 뒤에서 그렇게 서 있었다. 땀인지 무엇인지 모를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계속)


* Image by Etienne GONTIER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