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동병상련

by 진우


추석이 지나고 십 일월이 되자 초저녁부터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현광이 아버지는 손을 호호 불면서 반장 집 대문을 밀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 복태 동생 왔나?’

인기척을 느낀 반장이 방문을 열고는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어서 들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방 안에는 이미 진복이 아버지와 택모 아버지가 와 있었고 작은 술상도 차려진 뒤였다. 서로 악수를 나눈 다음, 진복이 아버지는 현광이 아버지에게 앉을 자리를 권했다.

“봐라, 점숙아. 여기 술 한 병 더 갖꼬 온나.”

반장이 부엌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대답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반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택모 아버지도 오셨네예. 바쁘실 낀데.”

“아직까지는 괘않습니더. 다음 달부터는 연말연시 범죄 집중 단속 기간이라 조금 바빠지겠지예. 오늘은 괘않습니더. 오래간만에 얼굴도 보고 좋네예.”

현광이 아버지의 걱정 어린 인사에 택모 아버지가 웃으며 답했다.

“하기야 경찰이 바쁘면 우리야 편하제. 더구나 우리 동네에 황 형사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밤마다 발을 쭈욱 뻗고 편하게 잔다 아이가."

진복이 아버지가 택모 아버지를 치켜세웠다. 쑥스러운지 택모 아버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다들 바쁠 낀데 오늘 내가 보자고 한 거는 다름이 아니라, 명기하고 명수 이야기 좀 하자고 부른 기다.”

현광이 아버지가 점퍼를 벗고 자리를 고쳐 앉았다. 반장이 잠시 뜸을 들였다.

“음, 자네들도 명수랑 명기 사정 다 알제? 그 어린것들이 어떻게든 살아 볼라꼬 발버둥 치는 걸 이때까지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는데 이젠 안 되겠다 싶네. 부모 없이 사는 애들을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기라. 이 동네에 함께 살믄서 우리가 내 새끼, 니 새끼 하면서 선을 긋고 산 적도 없고.”

몇 가닥 없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반장이 말을 이었다.

“지난여름에도 명수 글마가 비만 오면 난리를 부려서 좀 시끄럽긴 했다마는, 그래도 여기 있는 자네들이나 또 동네 사람들이 잘 도와줘서 어찌어찌 고비는 넘겼다 아이가. 그런데 명수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그거 진정시키고 겨우 넘어가는 건 어린 명기한테 할 짓이 아니다, 이 말이다. 이제 좀 있으면 추운 겨울인데.”

“그래서 행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겠습니꺼?”

현광이 아버지가 물었다. 반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음, 병원에 좀 보내야겠다.”

"병원예? 명수를예?"

“그래."

"하지만 행님, 입원을 시킬라 해도 명수는 그 발병 사윤가 먼가 그거 때문에 입원 자체가 안 된다면서요? 또 보증도 필요하고.”

“그래, 복태 동생 니 말이 맞다."

"어데 가서 광주 사태의 광자도 꺼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다 하던데..."

"맞다. 그런데 여기 준호 동생, 그러니까 우리 황 형사가 이번에 힘을 좀 썼는 기라. 동생아, 정말 고생했다. 인자 니가 좀 설명해라.”

택모 아버지가 험험 헛기침을 했다.

“예, 행님. 머 자세한 거는 우리 경찰 내부의 행정 절차니까 설명을 생략하고, 경찰 병원에 있는 제 동기한테 부탁을 좀 했습니더. 이러이러한 젊은이가 우리 동네에 있는데 억수로 불쌍해서 좀 도와주고 싶다, 머 좋은 방법이 없겠나 했더니.”

“했더니?"

“그 친구가 나름 그 안에서는 힘이 좀 있는 갑데예. 명수 증세를 들어 보더니, 머라고 하더라?”

택모 아버지가 재빨리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뒤적이더니,

“음... 외상, 후스트, 레스 정후군이라는 병이라 합디다.”

하고는 옆에 놓였던 물을 한 잔 쭈욱 들이켰다.

“그기 먼데요?”

현광이 아버지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거는, 말하자면 그냥 세게 한 방 묵었는데 그 충격으로 뒤끝이 오래간다, 이런 말이제.”

반장이 대신 대답을 하자, 택모 아버지가 웃었다.

“맞습니더, 정확합니더, 행님. 이 병이 원래는 월남전에 갔던 군인들한테부터 있었던 병이라 하데예. 어쨌든 명수의 그런 병을 확인하고, 그 친구가 손을 써서 입원 치료를 시켜주기로 했습니다. 발병 이유는 머, 대충 지가 알아서 한다 하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다들 걱정하실 병원비나 치료비도 나라에서 대주니까 전부 공짜지예.”

설명을 듣고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리고 보증 역시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릴 필요 없이, 간단하게 경찰 공무원인 저하고, 여기 세탁소, 그거는 자영업이니까 진복이네 행님하고, 반장을 맡고 있는 철만이 행님이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근데 한 사람이 더 필요한데……”

“아이고 머, 그라모 당연히 그건 제가 해야지예. 재산 보증도 아인데.”

하며 현광이 아버지가 손을 번쩍 들더니 시원스럽게 말했다.

“역시 복태 동생, 멋지네.”

반장이 소주병을 들어 술을 권했다.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셔버린 현광이 아버지가 크으 소리를 냈다. 반장이 한마디를 더 얹었다.

"정신 나간 군인 놈들이 그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노? 저 어린것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우쨌든 황 형사님이 고생해 갖꼬 명수는 잘 된 것 같은데, 그라모 명기는 인자 누가 돌봅니꺼?’

걱정스러운 표정의 현광이 아버지가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반장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실은 형 명수보다 동생 명기가 더 문제라서 오늘 보자고 한 기다. 자애원이라도 있었으면 우선에 거기 넣어두고 우리가 살피면 되는데…”


지난여름, 자애원이 대구로 옮겨가 버린 것이 아쉽다며 진복이 아버지가 떫은 입맛을 다셨다.

“다들 형편이 빤한지라 아무한테나 덥석 좀 맡아라고 할 수도 없고,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지내도록 놔둘 수도 없고.”

“제일 가까운 고아원도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나 가야 되니. 요새는 그런 시설들을 전부 기피하는 바람에 점차로 도시 외곽으로 내보내는 추셉니더.”

하며 택모 아버지가 텅 빈 수첩을 넘겼다.

“거 참 난처하네예. 명수, 명기는 하늘 아래 피붙이라고는 저거 둘 밖에 없는 아이들인데, 고아원에도 못 보내는 상황이 되어 뿠으니.”

“문디 자슥들, 저거는 어데 하늘에서 뚝 떨어짔나? 부모 없는 기 무신 죄고? 영도 다리 밑에서 거지 생활하던 것들이 이제는 묵고 살만 하니까 불쌍한 어린것들을 걸레 보듯 한다 아이가. 특히 저 오양 맨션 사는 저것들, 돈 좀 있다꼬. 그래서 내가 미워서 예비군 통지서나 이런 것들도 일부러 늦게 갔다 준다 아이가.”

반장이 소매를 걷어올리며 씩씩거렸다.

“진짜로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꺼?”

“……”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근데 점숙이 이 가시나는 술 한 병 갖꼬 오란 게 언젠데 머 하노? 야, 점숙아. 점숙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반장이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찬 바람이 방 안으로 후욱 밀려 들어왔다. 그런데 마당 저 편에 누군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거기 누군교?”

반장의 말에 방문 옆에 앉았던 현광이 아버지 역시 머리를 내밀었다.

“어, 현수 아버지, 현수 아버지 아입니꺼?”

다들 놀란 눈으로, 들어오라는 말도 못 하고 현수 아버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예, 머라꼬예? 현수네에서 명기를 맡는다꼬예?”

택모 아버지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현수 아버지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도 어안이 벙벙해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진복이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닦아 건넨 소주잔을 현수 아버지가 선뜻 받아 들었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서기 쉽지가 않더라구요.”

“와요?”

“뭐, 아시다시피 집 사람과 현수는 부산 사람이지만, 저는 이 동네 토박이도 아니고, 또 여기 기준으로 보면 타지 사람이지요. 애들 말마따나 서울내기 다마네기 아닙니까, 하하하.”

“이 철부지 자슥들을 고마 콱!”

진복이 아버지가 애먼 성질을 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현수 엄마가 뜬금없이 그러더군요. 우리가 먹고사는 게 어찌 보면 모두 이 동네 이웃들 덕분인데, 다들 우리 목욕탕을 이용해 주시니까 그 도움으로 우리가 먹고사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이웃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더랍니다. 자기 자식인 현수도 여기 동명 국민학교에 다니지만 동네 애들을 심하게 대한 적도 많았다고 말입니다.”

“……”

“그러다가 집 사람이 어느 날 뜻밖에 명기네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명기, 우리가 잠시 맡으면 어떻겠느냐고요. 의외였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반대했어요. 어설픈 동정으로 사람을 대하면 언젠가는 후회한다. 그리고 하려면 끝까지 잘해야지, 만약 중간에 포기하면 동네 어른들을 무슨 낯으로 볼 거냐. 만약 우리가 명기를 맡았다가 나중에 어떻게라도 되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동네 사람들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그 말도 맞습니더.”

진복이 아버지가 어려운 맞장구를 쳤다.

“집 사람이 그날은 그러고 말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지난 추석에 저 몰래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명기네 집에 다녀왔나 보더라고요. 반찬거리와 옷가지를 조금 챙겨 갔던 모양인데, 그러고는 며칠을 울더군요. 명기가 불쌍하다고. 그러면서 저를 계속 설득하는 거예요. 명기를 우리가 맡겠다고 하면 명수는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든 알아서 할 거라고. 결국은 제가 승낙했죠, 뭐.”

“아, 명수는 우리 황 형사가 다 해결 방법을 찾아놨는데?”

“네, 아까 밖에서 다 들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리고 반장님."

"네, 말씀하이소."

"저도 오양 맨션 삽니다. 하하.”

난데없는 지적에 얼굴이 빨개진 반장이,

“아, 그기 아이고, 다 그렇다는 기 아이고, 거기 사는 일부 주민들이, 억수로 일부 주민들이……”

하며 얼버무렸다. 농담이라며 현수 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오래 서 있었습니꺼? 이 추운 날씨에?”

황 형사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현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오늘 반장님 댁에 모이신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어요. 그래서 되든 안되든 말이라도 한 번 꺼내 볼까 싶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기를 계속해서 저희가 키우는 것도 아니고, 명수 병이 다 나을 때까지만 맡는 거라서 부담도 없을 듯하네요. 그리고 나중에 명수가 돌아오면, 본인만 괜찮다 하면 저희 목욕탕 관리를 맡길 생각입니다. 그러면 그 형제가 자립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 여러 모로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반장이 손뼉을 쳤다.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일어설 기세였다.

“하이고, 이런 거를 구세주라 하는 기다, 맞제. 동생아.”

“구세주뿐만 아니라 산타 클로스 아입니꺼. 현수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더.”

현광이 아버지가 현수 아버지의 손을 잡고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때 택모 아버지가 확인하듯 물었다.

“하지만 같은 동네 아이긴 해도 그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부모 없는 남의 자식을 덜컥 맡을 수 있겠습니꺼? 다른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예?”

현수 아버지는 웃음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현수 엄마도... 고아거든요.”

"......"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고 싶었던지 반장이 벌떡 일어섰다.

“맞다, 맞다. 지 혼자 저절로 크는 나무 있다 카드나? 됐다, 다 잘 됐다. 내가 내일 준호 동생하고 명기, 명수 만나서 이야기 잘할 테니까, 우리는 이 좋은 날, 한 잔 합시다. 어때요, 현수 아버지? 황 형사, 니는 오늘 경찰차 운전할 생각 하지 마레이.”

"좋습니더, 행님. 오늘은 행님이 사는 거지예?"

"하모, 두 말하면 숨 가쁘제."

그 말을 듣고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우리 딸 점숙이는 도대체, 도대체 머 하노? 소주 한 병 가져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계속해서 점숙이를 찾던 반장이 다시 한번 문을 활짝 열고는 크게 소리를 쳤다.

“점숙아, 그라모 아버지가 술 받아 오께, 니가 마시라. 됐나?”


(계속)



* Image by manseok Kim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