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맞소. 그때 욱길네가 주선했던 데가 그 집이라 하네. 참말로 세상 좁제? 우짜꼬? 내도 가서 한복 한 벌 해달라 해야 되나. 하하하. 우리가 말하기 전에 저거끼리 이야기가 다 있었는갑더라. 맞다, 그래. 한복 한 벌이 훨훨 날아갔어도 참말로 잘 됐다 아이가. 서로 같은 팔자에 잘 만난 기지. 그래, 알았네. 다음 달 경로잔치 때 보세, 잉. 그래.”
할머니는 한참만에 전화를 끊었다.
“할매, 누군데?”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던 명희가 물었다.
“응, 저 옆동네 사는 욱길이 할매.”
“그런데 할매는 머가 그리 재밌노?”
“말해 주까, 궁금하제? 할매 말도 잘 안 듣는 나쁜 가시나야.”
할머니의 변죽이 명희의 궁금증을 더 키웠다.
“응, 할매, 내는 나쁜 가시나 맞는데 진짜로 무슨 일인데?”
할머니가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명희의 어깨를 툭 쳤다.
“명희야, 놀라지 말그라. 찬우 아버지, 장가가게 됐다.”
“머라꼬? 찬우 아버지가 장가?”
명희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명희는 할머니를 재촉했다.
“누구? 누구랑?”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쳤다. 여전히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맹희 니는 누가 니 시어머니 될지 궁금하나?”
“아이 참, 할매는... 그기 누군데?”
“진짜로 놀라지 말그라. 저 큰길 과일가게 옆에서 양장점 하는 수아 엄마랑 한단다.”
“머, 머라꼬?”
명희는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책이 저만치로 튕겨져 나갔다. 상관없었다.
“와? 서울 시어머니가 벌써부터 무섭나?”
하며 할머니가 키득거렸다.
“하, 할매. 지, 진짜가? 진짜로 찬우 아버지하고 수아 엄마하고 결혼하나?”
“그래. 아이고, 참말로 잘 됐제.”
“진짜가? 그라모 수아도 찬우하고 이제 한 가족이 되는 거가?”
“당연하지 가시나야. 엄마가 시집가는데 딸내미 놔두고 혼자 가겠나? 니는 그 머리로 공부하나? 너거 선생님도 참 욕본다.”
할머니가 명희에게 꿀밤을 먹였다. 평소 같았으면 난리를 쳤을 명희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할매. 내가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와?”
“김밥, 김밥 좀 싸 도.”
“머 할라꼬, 김밥은?”
“아이, 묻지 말고 그냥. 김밥 좀 빨리 싸 도.”
“됐다. 가시나야. 늙은 할매 좀 그만 부리 묵어라. 너그 엄마한테 싸 달라 캐라.”
“아, 맞다. 엄마가 있었지. 엄마, 엄마!”
명희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러자,
“와 부르노?”
하며 명희 어머니가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마산의 식당을 정리한 부모님이 부산으로 이사한 지 열흘이 지날 무렵이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한 게임이라도 더 하자는 현광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들은 일요일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오늘은 소라 과자 팀이 타이거 팀을 삼 대 영으로 이겼다.
“찬우야, 그라모 너거는 이제 어데서 살게 되노?”
현광이가 축구화의 끈을 풀며 물었다.
“어데 살기는. 그냥 우리 집에서 계속 살지.”
“그라모, 수아 엄마는? 수아 엄마는 어데 사노?”
“이 바보 같은 놈아. 이제 결혼하니까 같은 집에 살지.”
하며 병철이가 현광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라모, 수아는? 수아는 어데 살게 되노?”
“딸이니까 당연히 같이 살지. 아이고 이 답답아.”
병철이가 제 가슴을 쳤다.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옆에 있던 아섭이가 조용히 물었다.
“그라모 찬우야. 니 인자 수아랑 같이 목욕하나?”
"......"
현광이가 옷을 털었다. 먼지가 풀풀 일었다.
“어쨌든 잘 된 거 같다, 찬우야.”
“머가?”
“너거 아버지한테는 부인이, 수아 엄마한테는 남편이, 수아한테는 아빠가, 찬우 니한테는 엄마가 생긴 거 아이가? 그리고 너거한테는 서로 남매가 생긴 거니까.”
“……”
“근데 찬우야, 니는 아까부터 표정이 와 그렇노?”
병철이가 찬우의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
“내 표정이 어때서?”
“아버지가 결혼을 하는데 좋거나 싫거나 해야 되지 않나?”
잠시 머뭇거리던 찬우가 어렵사리 대답을 했다.
“음, 사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병철이가 웃었다.
“하기야 우리도 잘 모르겠다. 찬우 니랑 수아랑 한 가족이 되는 게 말이다. 딱히 나쁠 것도 없지만.”
“병철아, 나는 제일 큰 걱정이, 엄마 하는 소리가 쉽게 나올지 모르겠다.”
하고 찬우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네. 니는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제? 그라모 오늘부터 연습을 해라. 아이다. 그냥 나중에 편해지면 자연스럽게 해라. 머라고 부르든 간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너거는 인자, 가족이다. 가족.”
제법 어른스러운 현광이의 말에 찬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우물터 옆을 구급차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삐뽀삐뽀.
“아, 맞다. 오늘이 그날인갑네?”
구급차를 바라보며 병철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명수 형이 드디어 병원으로 가는구나.”
반장 집 앞 좁은 골목이 사람들로 붐볐다. 경찰복을 잘 차려입은 입은 택모 아버지와 간호원이 구급차 옆에 서 있고, 동네 조무래기들 몇은 차의 꽁무니를 만지고 있었다. 구급차 한쪽 면에 ‘부산 경찰 병원’이라고 적힌 글씨가 선명했다.
“아버지.”
동네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아버지를 발견한 현광이가 조용히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명수 형, 오늘 가는 겁니꺼?”
현광이 아버지가 그래 하며 손에 힘을 살짝 주었다.
현광이는 명기네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곧 명기의 손을 잡고 명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반장이 둘 앞에 섰다.
“명수야, 인사해라. 너거 형제를 한 가족처럼 챙겨 주신 분들이다.”
명수는 모인 사람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명기도 명수를 따라 꾸벅했다. 여기저기서 그래, 그래, 다행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수야, 아저씨가 말했듯이 명기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니는 치료에만 신경 써라. 택모 아버지 말 들어보니까 경찰 병원이 우리나라에서 시설이 제일 좋다 하더라.”
하며 진복이 아버지가 명수의 등을 두드렸다.
“아저씨, 고맙습니...”
명수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에헤이, 이 좋은 날에 또 와 저라노? 니가 울면 또 비 온데이.”
“머, 명수가 개구리 왕눈입니꺼, 울면 비가 오구로.”
반장과 진복이 아버지의 농담에 사람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명수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따라 웃었다.
“채 군, 명기는 걱정 말아요. 우리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
현수 아버지가 명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바로 옆에 선 현수 어머니도 웃으면서 명수의 손을 잡았다. 명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며 눈인사를 한 다음, 명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명기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명기야. 형, 갔다 올게.”
명수가 명기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형."
“자자, 조금 있다 또 볼 낀데, 어데 멀리 떨어진 군대라도 가나? 명수야, 인자 가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눈을 껌벅거리던 택모 아버지가 명수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간호원이 구급차의 문을 활짝 열었다. 차문을 잡고 오르려던 명수가 다시 명기를 쳐다보았다.
“형, 아무리 쳐다봐도 나는 안 울어. 기분 좋은데 왜 울어? 쥐어짜도 안 나올 걸?”
명기가 혀를 날름 했다.
“자식.”
명수가 다시 명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간호원이 문을 닫으려는데,
“아이고, 잠깐만. 잠깐만.”
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명희 할머니가 숨을 헐떡거리며 잰걸음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손주 가시나나 동네 사는 총각이나 이 할매를 숨차게 해서 직일라 하네. 봐라, 맹수야, 맹수야.”
“하, 할머니.”
명희 할머니를 알아본 명수가 다시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할머니와 명수를 빙 둘러 섰다.
“아이고, 숨차 죽겠네.”
“할머니,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라모 이 녀석아. 내가 이 동네에서 모리는 게 어데 있노?”
할머니가 명수의 손을 꼭 잡았다.
“맹수야, 니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 세상 사는 기 어렵고 힘들다 해도 니 만큼 어렵고 힘든 사람이 또 어데 있겠노? 니, 여기 있는 사람들 은혜는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알겠제?”
“네, 할머니.”
“아이구, 내 새끼.”
명희 할머니가 명수의 두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맹수야, 우리는 니를 한 번도 남이라꼬 생각해 본 적 읎다. 와서 도와주거나 거들어 주지는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니를 생각하고 살았다. 우짜든동 빨리 나아서 온나. 맹기는 우리가 보고 있을 테니까네, 니는 약 주면 약 묵고, 주사 주면 주사 맞고 해라. 이 불쌍한 것아. 세상 사람들이 머라 캐도 니는 우리 새끼다.”
“하, 할머니도 건강하세요.”
급기야 명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명희 할머니도 굽은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는 다른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라고 맹수야.”
명희 할머니는 치마를 올려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것을 명수의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맹수야, 이거 받아라.”
“이게 뭡니까, 할머니.”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이거 갖꼬 있다가 묵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묵어라. 이 할매가 니한테 줄 끼 이거밖에 없다. 꼭 아프지 말고 빨리 돌아 온나, 잉?”
명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명희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깨가 들썩였다.
“에헤이 참. 우리 어무이가 또 우리를 짠하게 만드네. 마, 더 기다리면 내일 날이 새도 못 가겠네. 그만 가자, 명수야.”
택모 아버지가 명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눈물을 닦으며 명수가 차에 오르자 간호원이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곧이어 부릉하고 구급차가 탁한 소리를 냈다.
창문에 바짝 붙어 앉은 명수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밖에선 전혀 들리지 않았다.
“명기야, 너거 형이 찾는다.”
현광이 아버지가 명기를 급히 불렀다. 명기가 앞으로 나왔다. 명기는 이를 악물고 형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웃어 주었다.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명수가 유리창에 더 달라붙었다.
“혀, 혀엉.”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명기는 여태 잡혔던 손을 갑자기 뿌리치고 차 옆에 달라 붙으려고 했다. 하지만 현수 어머니가 명기를 두 팔로 감쌌다. 명기가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차 안의 명수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돌아 앉아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는 없었다.
구급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도 동네 사람들은 손을 흔들었다. 어느 누구도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계속)
* Image by Olga Oginskay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