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뒷 이야기

by 진우


고향을 떠나 어렵사리 부산에 정착한 우리 가족은, 골 깊은 애증愛憎의 관계였던 큰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년 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불평 한마디 못하고 큰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르다 보니 어떤 해에는 일 년에 세 번씩이나 집을 옮긴 적도 있고, 누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의 전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단했던 유랑의 생활은 제가 아홉 살이던 1979년 말, 부모님께서 부산 연산동에 터를 잡으면서 비로소 끝나게 됩니다. 더 이상 그렇게는 살 수 없으니 차라리 형제의 정情을 끊자며 아버지가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라는 것은, 시간이 꽤 지난 뒷날에야 겨우 알게 된 사실입니다. 소설 영산홍 일기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정착하게 된 그 시절의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모두가 너나없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동네의 인심만큼은 여느 부자 마을 부럽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도 대문을 열어놓을 정도로 서로 간에 믿음이 깊었고, 자그마한 것이라도 생기면 이웃과 먼저 나눌 줄 알았습니다. 대소사가 생기면 너나없이 자기 일처럼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언제나 같이 웃고 함께 아파했습니다.


그런 부모님들 덕분에 열 살 남짓했던 우리들도 자연스럽게 서로의 정을 배우며, 서로와 정을 나누며 자랐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었고, 나는 또 다른 부모님의 자식이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다툼조차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그 시절. 그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보석입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찬우, 병철, 아섭, 현광, 수아, 호준, 현수, 명기, 명수, 화영, 보선, 창수, 택기, 명희, 선영, 그리고 김 선생님은 모두가 실존하는 인물들입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개명改名과 함께 사건 전개도 조작했고, 삼인칭 셰프 시점에서 스토리에다 양념도 많이 뿌렸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틀 속에는, 제가 경험한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그 시절, 우리 모두가 공유했던 일상의 단편들이 비교적 사실에 가깝도록 담겨 있습니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글을 썼다는 것은 당사자들 대부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위 사실 적시 및 명예 훼손 등을 이유로 하는 법적 소송은 아직 없는 것을 보면, 다들 어느 정도는 글의 진실성에 수긍하는 눈치입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이 글을 처음 쓴 것은 2000년이 시작되던 무렵이었습니다. 밀레니엄이라는 낯선 단어를 포함, 지나치게 들뜬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는, ‘순수’라는 것에 꽤나 많이 집착했던 듯합니다. 더 늦기 전에 순수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해두자는 뜻에서, 제가 당시 활동하던 모임의 자유게시판에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한편 두 편 올린 것이 영산홍 일기 연재의 시작이었습니다. 대략 3~40여 편의 단편들이 육 개월 여에 걸쳐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 글을 읽은 어떤 분께서 감사하게도 출판 제의를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꽤나 유명한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의 편집장이었습니다. 과분한 제의에, 책의 인세와 판매 수익금 전액을 결식아동 구호 단체에 기부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제가 썼던 영산홍 일기의 단편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초고가 완성되었을 즈음에 원고의 감수를 맡았던 제 친구가 그것을 친분이 있는 어느 영화사에다 전달했던 모양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에도 영화사에서 또 한 번의 제의를 받았습니다. 영산홍 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화사 역시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을 제작, 발표하고 있는 곳입니다. 논의 끝에 두 회사 간 출판 및 개봉의 일정을 조율하기로 하고 출판과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브런치에 공개한 영산홍 일기는 시나리오 버전을 위한 초고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 원고보다 대사와 대화가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둘 다 하나같이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시나리오 버전이 조금은 가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쉽게도 출판과 영화 모두 마지막 결실을 맺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와 사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에 담을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봄, 소중한 친구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컴퓨터 안에 보관되어 있던 원고를 다시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글을 쓸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영산홍 일기가 이렇게 엉터리 글이었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형식적인 면에서 차마 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뜻 없이 부랴부랴 고치기 시작했고, 그 수정본을, 부끄럽지만, 브런치에다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브런치의 특성상, 창작물, 단편이지만 길이가 긴 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연재물 등은 주목도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영산홍 일기 역시 챙겨읽기 힘든 성격의 글입니다. 하지만 브런치를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남들의 관심 여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꾸준히 쓰겠다는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분들이 졸작拙作 영산홍 일기를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또 의견 나눠 주셔서 그 또한 연재를 결정했을 때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값진 선물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열독熱讀에 감사드립니다. (연재 도중에 새로운 주제의 글을 쓰고 싶어도 연재의 긴장감이 떨어질까 봐 쉽사리 다른 글을 발행하지 못하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습니다. 물론 비겁한 변명입니다.)




추억 속의 친구들은 오늘도 열심히 그들의 하루를 부지런히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영산홍 일기 주인공들의 그 이후에 대해서도 기록해보고 싶습니다. 제목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벌써부터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행복한 추억이 있기에 오늘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는 동안,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과 함께 자리하셨을, 기억 속 모든 친구분들에게도 저의 진심을 담아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행복 또한 언제나 저의 기도 속에서 꼭 기억하겠습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저와 함께 영산홍 일기를 써주셔서 정말로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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