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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r 30. 2021

첫 키스의 추억

은밀하게 위대하게


희정이는 중학교 3학년 때 내 짝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당시 드물었던 남녀 공학共學에 진학했고 미션 스쿨이었던 중학교는 전통적으로 남녀평등에 대한 교육 이념이 강한 곳이었다. 남녀 각각 서른 명 정도가 심지어 같은 반이었다.


3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성적순에 따라 남학생과 여학생을 나란히 앉혔다. 그러니까 남학생 일등과 여학생 일등이 짝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 몇몇에게 창피를 줘서 성적을 올리겠다는 뜻이었겠지만, 그것에 자극을 받아 성적이 오르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거나 그 해 일 년 동안 나는 희정이와 계속 짝이었다. 우리 둘은 일등 할 성적은 아니었으나 줄곧 앞줄에 앉았던 것을 보면 공부 실력도 서로 엇비슷했던 것 같다.


월례 고사를 치르고 성적이 발표되면 당연히 짝이 바뀌었는데 딱 한번, 오월 시험에서 희정이가 여학생 중에서 일등을 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희정이가 교무실에 다녀오더니 짝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내 옆자리에 앉기로 했던 것이 기억난다. 맨 앞자리가 불편하다는 이유였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희정이는 다부진 눈매에 앙다문 입술, 찰랑거리는 단발이 인상적이었다. 이해를 돕자면 진추하와 이선희가 적당하게 섞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오뚝한 콧날 위로 살짝 얹힌 동그란 안경이 희정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나와 희정이는 친하게 지냈다. 담임 선생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너거는 꼭 신혼부부 같노 이런 농담을 했고, 친구들의 놀림도 적잖이 있었지만 나도 희정이도 그 말에 딱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나는 희정이어서 잘해 준 것이 아니라 내 짝이라서 그랬을 뿐이었다. 희정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연히 고등학교는 남고와 여고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서로의 학교가 훤히 보이는 가까운 곳으로 배정받은 탓에 버스 정류장에서 하얀 교복을 입은 희정이를 마주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반가운 체를 하며 인사를 하거나, 별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서로의 속내를 대신했을 뿐이다.




90년 1월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난 며칠 뒤였다.


시험 몸살로 며칠 드러누웠다가 겨우 기운을 차렸을 때였다. 집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어머니가 전화기를 건네주시며 여자다 이러시는 거였다. 전화를 받았다. 희정이였다. 반가웠다. 시간 되면 만나자는 말에 주저할 이유가 따로 없었다.


변함없는 동그란 안경에 제법 숙녀 티가 나는 옷차림의 이선희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웃어 주었다. 신혼부부냐는 놀림을 듣던 중학생 때로부터 삼 년이 지나 갓 스무 살이 된 겨울의 가운데에서 진추하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 날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교 때의 이야기, 고등학교 때의 희한한 선생님들, 그리고 이유 없이 소환된 부모님 험담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이후로 희정이를 두어 번 더 만났다. 교대 앞 경양식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희정이가 그랬다.


조금 걸을래?


우리는 교대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희정이가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나는 굳이 팔을 빼지는 않았다. 희정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희정이가 즐거워하니 나도 기분은 좋았다. 그러다 운동장 한 켠의 계단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학교 건물 위로 어스름 저녁달이 비쳤다. 제법 긴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희정이가 날 불렀다.


제이야.

응?


고개를 돌리는데 뭔가가 내 얼굴 앞에 후욱 다가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가 내 입술을 스쳤다. 날카로운 종이가 살을 베고 지나가는 그런 감촉이었다. 슬며시 눈을 떴다. 희정이는 다시 저녁놀을 보고 있었다. 또 어색해졌다. 나도 희정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저무는 해를, 떠오르는 저녁달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1990년 2월, 대학 입학을 일주일 가량 앞둔 토요일의 일이었다.


바쁘고 정신없는 그러나 실속 역시 없는 대학 신입생의 날들이 이어졌다.


희정이는 당시의 유행처럼 가끔 자기 학교의 학보學報를 보내거나 종종 내게 편지를 썼다. 나도 잊지 않고 답장을 해 주었고, 때때로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어쩌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남들 보기엔 데이트였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을 가장한 입 닿음이나 입술 스침조차 우리에겐 전혀 없었다. 그저 보폭을 맞추려고 팔을 빌려주거나 높은 계단을 이끌 때 손을 내민 것이 전부였다. 희정이는 내게 친구, 그냥 친구일 뿐이었다.




92년 2월, 입대 영장이 나온 뒤로 매일 계속되던 환송회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쓰린 속을 괴로워하던 아침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제이니, 나야, 희정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대문께로 나갔더니, 희정이가 빨간 르망 옆에 서 있었다. 운전을 배웠고 차를 장만한 모양이었다. 내가 물었다. 어디 갈 건데? 희정이가 말했다. 아무 데나.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았다. 그제야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소식 들었어, 군대 간다며?

응, 남들 다 가는 거니까 나도 빨리 다녀와야지.


희정이가 또 말이 없었다. 파도가 철썩이는 창 밖만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희정이가 툭 던지듯 내게 말했다.


기다릴까?


희정이를 만나던 순간들은 지금도 생생한데, 헤어지는 장면은 어찌 된 일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도 마찬가지다. 희정이가 혼자 차를 몰고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혼자 커피숍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희정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다.




그렇게 삼십 년이 지났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는데 편지 한 통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오래된, 그러나 익숙한 글씨체였다. 다름 아닌 희정이가 내게 학교로 보낸 편지였다. 그 편지가 끼어있던 책이, 하필이면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이었다. 내가 부산 집에 보관하던 편지들은 결혼 직전에 어머니가 모두 태워버린 걸로 알았는데, 용케도 그 편지만은 ‘인연’ 안에서 살아남은 것 같았다.



편지를 펼쳐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희정이가 생각났다.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내는지 사실 궁금하기도 하다.


희정이를 찾자면 그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희정이는 내 누나의 학교 동문이고 자형의 학과 직속 후배이며, 심지어 희정이의 남동생은 나의 고교 후배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묻는다면, 굳이 찾는다면 연락처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희정이는 당연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찾거나 만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내 궁금증 따위를 해소하려고 추억을 핑계 삼아 굳이 현실로 불러낸 다음, 행여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아사코로 만들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그녀는 그저 어디에서든 변함없이 잘 살고 있으면 된다.


그러다 내리는 첫눈과 함께 나의 추억 속에서 가끔 고개 돌려 웃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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