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하순의 순간) - 안녕. 축구화. 안녕 시간들.
축구화가 떨어졌다, 는 것을 핑계로 쓴 글
축구화 밑창이 떨어졌다. 지난주엔 농구화가 망가지고, 이번엔 축구화다. 두 주 사이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망가지는 운동화들. 농구화 때는 그냥 사진만 찍어 두었는데, 축구화까지 그래 되고 보니 할 얘기가 좀 있다. 내 운동의 시간들을 모두 받아낸 운동화들과의 이별이니.
내 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10대 때는 농구를 많이 한 시기인 것 같다. 축구도 하긴 했지만 축구는 잘하는 애들이 워낙 많았고, 다만 나는 좀 키가 큰 편이어서 10대 중반까지도 농구가 좀 통했다. 그러다가 10대 후반부터 축구의 맛을 알아서 2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30대에 접어들고도 여전히 축구를 했지만, 오른쪽 발목 인대가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한 이후로 2~3년을 쉬었다. 발목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서도 무서워서 축구화를 신지 못하고 대신 일터에서 접한 배드민턴을 몇 년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터를 옮기면서, 그리고 조금씩 밀려 나오는 뱃살에 유산소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다시 축구화를 꺼내게 된 요즘이다.
아마 20대 초반 축구를 열심히 하게 될 즈음인 듯한데, 학창 시절 때 쓰던 뽕 크고 만화에나 나오는 전형적인 모습의 축구화 말고, 오래오래 쓰면서 나를 안정적으로 지탱해 줄 수 있는 그런 풋살화를 찾았던 거 같다. 그때 샀던 게 드디어 떨어져 망가진 이 아디다스 풋살화다. 운동장에 이슬이 좀 맺혀 가지고 촉촉한 인조잔디가 미끄럽다는 느낌이 새삼 있었는데 운동 끝나고 들춰 보니 이게 오래돼서 뽕은 많이 닳았고 무엇보다도 밑창이 떨어졌다. 밑창 떨어진 축구화를 신고는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으니까 이 축구화도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대략 계산해 보니 20년이다. 이 축구화를 신고 온 물리적 시간이.
농구화가 떨어졌을 때만 해도 그렇게 유별난 느낌은 없었는데, 축구화까지 떨어지는 걸 보니 또 한 세대가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서늘해진다. 단지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왠지 더 높아 보이는 하늘, 그 아래 물들어가는 나뭇잎들과 벌써 하나둘 떨어진 낙엽들이 지나가며 사라지는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을 떠올리게 해서만도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운동화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갈 만큼 흘러간, 그만큼의 시간의 상실이 실감되는 그런 것이다.
나는 축구를 대단히 잘하는 편이 아니다. 당연히 무슨 이름이 있거나 열심히 뛰는 조기 축구회나 축구 클럽에 가입돼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알음알음 30대부터 60대까지 걸쳐 있는 넓은 연령대 사람들이 한 열댓 명 뛰는 그런 작은 축구 모임에서 오랫동안 축구를 했다. 꾸준히 매주 할 때도 있었지만 몇 년을 쉬기도 했었다. 그래서 축구 철학이라든가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는 않다. 다만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스타일 혹은 어떤 포지션의 유명 선수를 이미지로 가지고 운동을 하지 않을까 한다. 농구를 할 때는 나는 키가 큰 편이어서 어렸을 때 주로 센터 쪽을 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은 그 센터 쪽이라는 게 정말 괴물 같은 친구들이 많은 곳이라 농구를 하면서도 높은 곳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주로 예리한 패스를 하는, 말하자면 포인트 가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내 포지션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뛰었다. 득점보다는 패스에 관심이 더 많은 약간은 이상한 쪽이랄까.
내가 패스에 대해 갖는 관심은 축구와도 당연히 연관이 있다. 나는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본질적인 기술이 패스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다양한 기술들이 종합되는 스포츠이긴 하지만 구기종목들 특히 팀플레이로 하는 구기 종목에서는 패스 플레이가 너무나 중요하지 않나. 패스는 아마 직선이 아닌 형태로 볼을 이동시키는 기술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패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신체 능력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결과다. 선수로 치면 안정환 같은 테크니션이나 호나우두 같은 득점력도 있고 기술도 좋고 그런 폭발력이 있는 선수들 또 멋있지만은, 나는 결정력이 부족하고 편이고 드리블을 잘 치는 민첩한 쪽도 아니다. 포지션으로 치면 가장 무난한(?) 미드필더 쪽을 선호를 하는데 그렇다고 지단같이 공 소유를 잘하거나 탈 압박을 잘한다거나 또 그러지는 못한다. 내 관심사는 중원에서 한 번의 패스로 상대방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그런 패스 플레이였다. 굳이 유명 선수를 고르자면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 패스마스터라는 별명을 가진 그런 선수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래서 느낄 수 없는,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패스길을 알아차리고 정확하게 공을 이동시켜서 상대방의 수비를 무너뜨리면서 우리 공격수가 완벽한 찬스를 얻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플레이. 그게 나의 축구의 이상이다. 그래서 나는 윤정환이라든가 윤빛가림이라든가 이런 지나간 이름들이, 어쩌면 축구 선수로서 많이 대단한 빛을 봤다고 하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물론 그들도 국가대표도 하고 훌륭한 선수들이고 뭐 내가 평가하기 어렵지만) 나는 이제 그런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속으로 응원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간다. 낙엽처럼, 내 운동화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뛰던 축구선수들처럼, 그러고 나의 몸처럼. 이제 꺾여가는 신체 건강지수를 보며 몸이 얼마까지 버텨질지 모르겠지만은 이미 내 발목은 양쪽 다 인대가 상해 있는 상태고 발목에 인대가 상해 있으니까 무릎도 상할 거고 요즘은 허리 쪽도 근육이 많이 빠졌는지 허리도 아프고 그래서 웨이트를 조금 하면서 몸을 유지하면서 심폐지구력도 단련해야 한다. 축구가 격해지지만 않으면 또 유산소 운동도 많이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스포츠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축구를 찾을 것 같다. 다만, 그 여정을 같이 해오던 아디다스 풋살화는 이제 같이 하게 될 수가 없게 되었다. 새 축구화를 신고 이후에 운동을 이어가겠지. 안녕 농구화. 안녕 축구화. 안녕 지난 20년. 그리고 다시 안녕 새 축구화. 안녕 앞으로의 운동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