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with a smile>을 들으며...

그 누구의 노래라도 Listen with a smile...

by 제II제이

릴스를 보다가

팝가수 브루노 마스가 기타를 매고,

피아노를 치는 다른 여성 싱어와

듀엣으로 열창하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어떤 알고리즘에 밀려

거기까지 닿았는지는 불확실했지만,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알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한두소절 만으로

나는 반해버렸으니까.




그 짧은 릴스를 반복해서 듣고 나서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본격적으로 찾아보니

브루노 마스와 레이디 가가가 함께 부른

신곡 <die with a smile>이었다…라고

생각했지만 이 노래는

브루노 마스와 로제가 함께한 <APT>보다

더 먼저 발매된 곡이었다.


말하자면 기성가요인 것인가.

음. 그러니 이 곡은

팝가요계를 자주 찾지 않고

아는 노래만 듣는 나를 안타까워한

알고리즘이 던져준 선물 같은 곡인가.




If the world was ending,
I'd wanna be next to you
If the party was over and
our time on Earth was through
I'd wanna hold you just for a while
and die with a smile
If the world was ending,
I'd wanna be next to you

<Die with a smile 가사 중에서>


‘die with a smile’

제목이자 핵심 가사인

이 말을 똑 떼서 보면

좀 끔찍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뒤 가사의 맥락을 보면,

결국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만약 ‘너’가 함께 한다면

행여 세상 끝날일지라도

나는 웃을 수 있다는 그런 의미다.


브루노 마스의 전작들을 두루 섭렵…

하진 못한 나지만 그의 곡

<When i was your man>을 좋아한다.

차를 타고 다니다가 가끔 따라 부르는

만행을 저지르기조차 쉽지 않은 그런 가창력을

브루노 마스가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가사가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


Should have gave you all my hours
When I had the chance

<When I was your man 가사 중에서>




그런데,

문제는 <Die with a smile>을 함께 부른 가수가

레이디 가가였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부터 생겼다.

내가 레이디 가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딱 짚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가 한 말과 행동들에 대한 나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매스컴을 통해 전달되는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에게

부정적 인식과 감정을 형성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아니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다니!”와

“그런데 알고보니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중 한명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의 충돌이다.


“그런데도 노래가 너무 좋잖아!”와

“그런 사람이 부른 노래를 좋아하다니

뭔가 이상한거 아니야?!”의 충돌이다.


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노래라니…

그럼 이제부터 이 노래는 내가 싫어해야겠군…

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이런 관점을 가진 행동을

‘캔슬컬처’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컬처’를 내가 ‘캔슬’할 수는 있어도,

사람 자체를 캔슬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고 받아들였던 어떤 것이 가진,

이전에 몰랐던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 대상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상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으니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캔슬컬쳐’를 좋게 본다면

이런 관점에서 설명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좀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가 진행되며

때로 좋아했던 사람의 못난 면을 발견하고

정이 떨어질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관계를 단절하기도 하고,

마음을 주지 않았던 대상에게

마음을 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하는 것은

두 가지다.

관계의 정도 측면에서

어느정도까지 마음을 줄지 혹은

마음의 문을 닫을지를 잘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과 더불어

한 인간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확신하는 것이

어쩌면 좀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무조건 관대하게 봐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캔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레이디 가가가 노래했다고 해서

어떤 노래에 담긴 좋은 가사가

싫은 말이 되는건 아니지 않은가.


문학계에서는 ‘의도의 오류’라는 개념이 있다.

‘의도의 오류’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 할 때 생기는 잘못이다.

작품은 작품 자체가 가진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 100%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이 곧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한 말이

무조건 맞는 말은 아닌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무조건 틀린말이 되는 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 주장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설교하는 사람 등등등

말하는 사람 자체가 말하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때가 많다.


말하는 이가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이가 그 말에 힘을 실을 수도 있고

오히려 말이 가진 힘을 빼기도 하기 때문이다.

흘러나온 말에 대한

우리 생각과 느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말하는 이에게는

말하지 않는 동안의 삶의 모습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말하는 이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말 자체를

덮어놓고 무시할 수 있는가.

또 그럴 수는 없지 싶은 것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레이디 가가에 대한 나의 감정과는 별개로

브루노 마스라는 가수이자 한 인간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근거도

사실은 매우 우연적이고 얕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을 놓고 생각하면

어쩌면 레이디 가가가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반성이…




그리하여 다행이 나는

레이디 가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호불호의 감정을 뛰어 넘어(?!),

브루노 마스에 대한 불확실한 인식과 감정을 뛰어 넘어,

<Die with a smile>이라는 노래 자체가 가진

매력을 붙잡고

그 노래를 여전히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Cause you already know
what you mean to me
and our love’s the only one
worth fighting for


이 가사에서 ‘you’와 ‘our love’는

레이디 가가의 것도,

브루노 마스의 것도 아닌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의 것이 될 수 있기에.


‘listen with a smile’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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