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다듬어져 갈 우리를 상상합니다.
가심―끌 【명사】
⦗건⦘ 나무에 뚫은 구멍을 다듬는 데 쓰는 끌.
이번 단어는 ‘가심끌’입니다.
건축 분야에서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그러니 이 단어는
그 분야의 전문용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목공에서 활용되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끌’은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겉면을 깎고 다듬는 데 쓰는 도구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심끌’은
그 뜻을 살펴보면
‘구멍’을 다듬는데 쓰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도구는 ‘구멍’을 뚫는 작업을
전제로 하는 도구이겠지요.
‘구멍 뚫기’의 이미지와 연결 지어
기억할 수 있는 단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심끌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듣다보니
이미지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목공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목공 작업 중 어떤 구멍을 뚫는 일을 하기 위해서
가심끌을 쓴다기보다는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한 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며
반듯하게 구멍이 뚫렸나 안 뚫렸나를
확인하는 용도로 이 가심끌을 쓴다고 합니다.
가심끌을 넣어보면 비틀어졌는지 아닌지가
확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에 가심끌을 끝까지 잘 넣을 수 있다면,
구멍이 잘 뚫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멍을 뚫기 위해서 쓰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뚫어놓은 구멍을 확인하고 다듬는데 쓰는
그런 도구라는 말입니다.
이 부분이 ‘가심끌’이라는 단어가 갖는
매력인 것 같습니다.
목공을 할 때 구멍을 뚫는 이유는
그 구멍을 통해 무엇을 통과시키기 위해서이겠지요.
구멍이 반듯하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한 단계를 마무리할 때
쓰이는 도구라는 점이
이 단어의 말맛과 뜻을 곱씹게 합니다.
생각해보고 있자니
이런 용도로 쓰이는 끌을
왜 ‘가심’끌이라고 했을지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가심’이라는 말은 언뜻 낯설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흔히 식사를 마치고
물이나 차를 마시면서
입 안의 남은 음식을 정리하곤 하시지요?
이쯤 되면 눈치를 채실 것 같은데,
우리가 그걸 ‘입가심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쓰인 ‘가심’이 바로
‘가심끌’에 쓰인 ‘가심’과 같은 말입니다.
가심 【명사】【~하다 → 타동사】
깨끗이 씻는 일.
그러니까 가심끌은
뚫어놓은 구멍을 마치 깨끗이 씻는 것처럼
정리하는 용도로 쓰이는 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가심’은 ‘가시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겠습니다.
‘가시다’는 깨끗이 씻다 혹은
‘부시다’의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부시다’는 또 물을 사용해서
씻는다는 이미지가 있는 말이니
약간씩 뉘앙스가 다르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깔끔히 씻어내는 일이라는 느낌을 가진 단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공 작업을 하면서 구멍을 뚫든,
식사를 하며 음식을 먹든지 간에
마무리 단계에서
하던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단계는
중요하겠지요.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일들을 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지요.
눈으로, 손으로, 발로,
또 귀와 입으로 계속 무언가를 받고
또 전달하며 지냅니다.
그러다 보면 마치
어떤 도구를 사용할수록
날이 무뎌지거나 때가 묻고 비틀어지는 것처럼
무언가 우리를 지치게 하거나
속상하게 하는 어떤 것들이 쌓이게 됩니다.
설령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눈을, 손을, 발을, 또 귀와 입을 통해 들어와
우리 마음속에 남게 되지요.
목공 작업에만 가심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도 때때로 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우선 ‘손가심’들부터 하시지요?
손가심뿐만 아니라
눈가심, 귀가심, 그리고 마음가심까지
때때로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 몸과 마음을 씻으며
사용할 수 있는 가심끌은
저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가심끌을 찾는 것이 어려우시다면
이런 방법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심끌은 딱 넣어보면
바로 구멍이 비틀렸는지가 확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떤 것을 보거나 들었을 때,
뭔가 비틀린 느낌이 딱 드시는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짜증이 나거나 슬프거나
혹은 화가 나는 바로 그 순간에는
그것을 깨닫기 어렵겠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은
마지막으로 짜증을 낸 때가 언제이신가요?
그때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했을까요?
그 지점이 바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내 마음속 구멍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구멍을 따라
무언가가 원활하게 소통이 안되고 있는
그런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며
마음의 정리되지 않거나
비틀려있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그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되고,
또 조금씩 더 알게 되어 가면서
적절히 나만의 가심끌을 활용하여
마음가심을 시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때때로,
나의 그런 부분을 깨닫게 해주는
의도하지 않은 주변의 ‘가심끌’들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
혹은 그렇게까지 정돈되지 않은 채
나에게 날아오는 어떤 투박한 반응들이
그런 역할을 해 줄 수도 있겠지요.
앞으로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마치 내 안으로 ‘가심끌’이 들어오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는 겁니다.
어쩌면 기분이 살짝 나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가심끌’이 되어
나를 더 깨끗하게 부셔(?!) 주겠거니 받아들이며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사용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다듬어질 우리를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