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바뀌는 '만' 나이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빠른 사람, 빠르지 않은 사람 그리고 빠른 것은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
그중에 나는 빠른 사람이다. 빠른 사람은 빠른 사람을 알아보는 법. 우리 부모님도 다 빠르다! 친구들 중 빠른 친구들이 많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이야기냐고? 나이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없어진 지 오래된 '빠른 년생'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대학 시절 겨울 방학 때 중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갔던 적이 있다. 한 달 정도 현지 대학교에서 중국어 수업을 받았는데, 나이 국적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이 얘기가 나왔었다. 당시 1월 1일이 지나서 나는 한국 나이로 한 살을 더 먹은 상태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25살이라고 이야기했다가 아차 싶었다. 여긴 중국이고, 상대방은 호주 사람이라 만 나이로 얘기해야 하는데!
당시 나는 연도 기준으로 한국 나이를 따지면 24살, 한국 친구들 나이(학번)로는 25살, 연 나이는 23살이었다. 그리고 만 나이는 22살이었다(!)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호주 친구에게 22살로 정정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한국 나이에 대해 설명까지 했다.
내가 빠른년생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사실 맞을 수도 있다. 족보를 깬 적이 없는데 평생 족보 브레이커 소리를 듣게 되는 건 꽤 고역이다), 1월 1일에 다 같이 나이 먹는 문화는 이상한 게 맞다. 1월 1일생과 12월 31일생이 같은 나이라니, 그냥 봐도 잘못됐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
이상한 건 바로 잡아야지. 6월 28일부터 만 나이로 바뀐다고 한다. 나이를 세는 나이(한국식 나이)와 연 나이가 아니라 만 나이로 통일한다는 건데, 그럼 나는 친구들보다 어려진다. 한 살이라도 많아지고 싶었던 10대와 달리 지금은 한 살 어려진다고 하니 기분이 썩 괜찮다.
내가 만 나이를 환영하는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식 나이 서열 문화가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다.
모두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XX년생끼리 나이가 같아 한 살 차이라도 깍듯한 서열이 존재한다. 친해지면 좀 다르겠지만 일단 처음 만나는 사람과 호칭 정리부터 한다. 근데 만 나이를 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같은 년도라도 생일에 따라 나이가 다르고, 1년 차이는 나이가 같을 수도 있다. 년도를 기준으로 서열을 나누기 애매해진다.
그럼 사회 전반적으로 경직도가 낮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나라는 한 살이라도 많으면 깍듯이 모시고 윗사람의 의견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년도에 태어나 항상 같은 서열이었던 이들이 서로 다른 나이를 가진다면 그룹화하기 조금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럼 결국 한두 살 차이는 친구처럼 지내게 되지 않을까.
물론 단기간에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오래 걸린다. 너무 오랜 기간 한국식 나이로 산 사람들이 6월 28일부터 만 나이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은 나이 두 개로 살 것 같은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XX년생입니다. 만 나이 OO살이에요"라고 할 것만 같다.
아마 변화는 이제 태어나는 아가들('나이 = 만 나이'로 인식하는 어린 한국 사람)이 사회 주도층이 됐을 때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섣불리 한 내 예측대로 긍정적으로 바뀐다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만 나이는 '사람마다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공통의 시간대(1월 1일에 온 국민이 한 살 먹는 한국 나이)를 살아왔다. 이제는 개인의 시간대(생일 기준으로 나이를 먹는 만 나이)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공통의 시간대를 살 때는 그룹이 중요했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 친구였다. 하지만 개인의 시간대에서는 모두 다른 시간을 살기 때문에 친구의 조건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