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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7. 2023

혼자 떠난 17000km 미대륙 횡단 #1-생각은 그만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 나 미대륙 횡단 여행 해 볼까 하는데.”     

"…… 뭐?"  뜬금없이 던져진 나의 말에 기가 막힌 듯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린다. 마치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진담이야?"라고 묻기라도 한다면,  내가 툭하고 던져 본 말이 왠지 현실로 구체화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일 거다. 남편의 이런 반응은 예상한 일이다.


판데믹 내내 갇혀 지내다 보니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TV를 모두 대형 스크린으로 바꾸었다. 빼어난 경치를 담은 비디오들을 TV 스크린으로라도 마음껏 보기 위해서였다. 세계 여러 곳의 절경을 담은 비디오들은 가리지 않고 보지만 아무래도 미국에 있으니 미국의 자연을 담은 비디오를 관심 있게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국립공원들을 촬영한 비디오들을  즐겨 보곤 했다. 언젠가 저기를 다 가보리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쉽게도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공원들은 모두 미국 서부에 있다. 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 동부에 있으니 그 국립공원들을 둘러보려면 그야말로 미대륙을 횡단해야 한다. 그래서 언뜻 든 생각이 언젠가 자동차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면서 미국의 유명한 국립공원들을 다 둘러보면 좋을 텐데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뜻 결정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대륙 횡단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와 압박감이 상당했다.   

와이오밍, 그랜드 티턴을 떠나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으로

판데믹 이전부터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었다. 그 이유는 중국의 황산을 꼭 자유여행으로 가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판데믹이 왔다. 문제는 판데믹이 시작되고 길어지면서 중국의 폐쇄가 언제 풀릴지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중국어 공부에 대한 의욕도 시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화면에 펼쳐지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의 절경에 감탄하다가, 문득 중국 황산은 갈 수 없지만 미국의 국립공원들은 지금이라도 갈 수 있잖아? 뭘 기다리고 있던 거야? 기다린다고 기회가 날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기회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마음속 저변에서 희미하게 부유하던 대륙 횡단에 대한 생각들이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내킬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이라면 생각만 하고 미적대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여행은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서쪽 끝까지는 거의 일직선으로 간다고 해도 4000킬로가 넘는다. 대륙 횡단을 목적으로 서쪽 끝을 찍기만 하고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8000킬로가 넘는 대장정이다. 더군다나 난 대륙 횡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유명한 국립공원들을 가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대장정을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만약 간다면 버킷리스트에 있는 공원들을 한꺼번에 다 둘러보고 싶다. 그럼 최소 두 달은 필요한데 자동차로 여행하는 두 달 동안 어떤 돌발 사항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여정이다. 게다가 여자 혼자 떠난다. 그것도 체력의 정점이 한참 지난 나이에!


겨울에는 갈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다. 여름은? 성수기인 여름에 북적이는 관광지들을 두 달간 쉴 새 없이 이동하며 수십 개의 숙소를 날짜에 맞게 예약하기는 매우 힘들다.  공원 근처에 숙소를 못 구하면 40-60킬로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고 매일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치이며 여행하고 싶지 않다. 남은 선택은 봄이나 가을인데, 아이들 생일이 전부 가을이니까 가을엔 두 달 동안 집을 비우기가 어렵다. 결국 3월에서 5월밖에 없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건 모든 국립공원들은 높은 산악 지대에 있으니 5월까지도 눈이 내린다는 것이다. 도로가 아예 폐쇄된 곳도 있고 눈이나 얼음으로 덮인 도로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차에 대한 지식이 있어 운전 시 생길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국립공원들은 전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지역이 많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는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이건 내가 당연히 가져야 할 합리적인 두려움이지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애써 없애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어리석은 거겠지.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여행은 나에게 도전이다.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두렵지만 이 여행을 하고 싶다. 이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서 두 달간 혼자의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먼지가 쌓인 내 마음을 씻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도전을 한다면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판데믹 때문에 사람들도 훨씬 적을 테니 이런 때에 가는 게 숙소 예약하기도 더 쉽겠지. 그래 가자!


Going to the Sun road , St. Mary 글레이셔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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