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 수집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을 임신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양육하느라 학업이 계속 지체되었던 탓에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논문 자격 심사와 논문 프로포절이 통과되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논문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 학기를 쉬게 된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7개월 무렵이 되어 혼자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미루었던 논문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원래 4년 만에 끝날 학위가 6년이 지나서 이제 겨우 논문을 위한 자료 분석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첫째와 둘째는 낮 동안 Day Care에 보내고 셋째를 집에서 돌보며 논문 작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아이가 이층 침실에서 낮잠을 자게 되면 그 시간 동안은 온전히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보통 낮잠 자기 시작한 지 3시간 전후가 되면 아이가 깨서 울거나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이층으로 가서 아이를 데려오곤 했다.
하루는 3시간을 넘어 3시간 반이 돼 가는데도 이층에서 아들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길게 자는구나 싶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자투리 시간들을 이용해야 하니 시간이 날 때 최대한 진도를 나가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4시간이 넘게 지났는데도 이층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오래 자는 걸까 생각하며 이층으로 조용히 올라가 방안을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잠에서 깬 아이가 장난감을 쌓아 놓은 곳으로 기어가서 거기서 혼자 놀고 있는 것이다! 그 광경에 얼마나 놀랐던지. 얼굴을 보아하니 잠에서 깬 지 꽤 되는 것 같았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그제야 혼자 있던 것이 서러웠던 양 울음을 터트린다. 얼른 가서 아이를 끌어안고 볼을 마구 비비며 격하게 뽀뽀를 퍼부었다. 우리 아기 이제 다 컸구나! 잠 깨서 엄마가 없는데도 안 울고 혼자 놀고 있었어? 어쩌면 이렇게 의젓하니? 엄마 일하라고 기특하게 혼자 놀고 있었구나? 잠이 깨면 엄마를 찾아야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엄마에게 안긴 채 눈을 둥그렇게 하고 쳐다본다. 아기가 깨어서 반 시간이 넘게 울지 않고 혼자 놀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기특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진작에 올라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아이를 혼자 있게 했던 것이 많이 미안하고 자책도 들고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 일이 있은 후, 3시간이 지나도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올라가서 확인을 하곤 했다.
첫째와 둘째는 아기 때 밤에도 3시간 이상을 연달아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낮 잠을 자도 한 번에 길게 자면 두 시간이었다. 그때 소원은 두 시간만 방해받지 않고 푹 잤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셋째는 신기하게도 밤에는 7-8시간을 깨지 않고 자니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두 시간을 연속으로 자 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거의 신세계라 할 수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게 황송한 마음이 드는 거였다. 깨어있을 때도 칭얼대는 일이 별로 없었다. 내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일하는 엄마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곧잘 놀곤 했다. 논문을 빨리 끝내라고 아들이 전폭적인 서포트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아들이 기특하고 무척이나 고마웠다.
사람들이 가끔 어린아이들 셋을 데리고 어떻게 공부를 했냐고 물을 때, 셋째 덕분에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말해 주었다. 엄마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네 덕분이다. 네가 엄마를 취직시켜 준 거라고 말해 주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니 나도 안다며 입꼬리를 올렸던 고마운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