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혼자 사는 노인들이 창가에 서서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종종 묘사되곤 한다. 그 장면은 혼자 사는 노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미국에서 주택가를 천천히 운전하고 지나갈 때면 가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거리를 내다보거나 혹은 집 앞의 현관에 혼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응시하는 노인들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 집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사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의 집은 도로변에 있었는데 이른 아침이나 밤을 제외하면 그 집을 지날 때마다 현관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볼 수 있었다. 노인은 항상 혼자 앉아 있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멜빵바지를 입고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서 말이다. 가끔씩 그 노인의 의자 옆에는 트럼펫이 놓여 있었는데 아쉽게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노인은 그 거리에 있는 나무나 집들처럼 어느덧 그 거리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어쩌다 노인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왜 오늘은 안 보이시지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길을 지날 때 노인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안 보이는 기간이 길어졌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집을 지날 때 집 앞에 세워진 ‘For Sale’ 사인을 보게 되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 번도 말을 나눈 적도 없고 차 안에서 지나가면서 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 집을 지날 때마다 텅 빈 현관 앞이 눈에 들어오고 혼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의 모습이 떠 오르며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슬펐다. 이제 이 거리의 풍경은 예전과 같지 않다.
Danang, Vietnam
내가 사는 마을의 다운타운에는 도로가에 있는 오래된 주택들을 개조하여 상가로 쓰고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잘 아는 한국 분도 그 도로가에 있는 주택에서 가게를 하셨다. 그분의 옆집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살고 계셨는데 하루 종일 집 앞 현관에 앉아 길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그 할아버지의 커다란
낙이셨단다. 그런데 아들이 그 집을 식당 사업자에게 팔고 난 후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시골로 이사를 하시고 거기서 혼자 사시게 되었다.
6 개월 정도가 지난 후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옆집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의 갑자기 변한 모습에 너무도 충격을 받으셨단다. 정정하셨던 할아버지가 6 개월 만에 10년은 더 늙어 보이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변하실 수 있는지 너무 충격이었다며 거듭 말씀하셨다. 시골로 이사 간 집에 혼자 사시는데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구경을 하지 못하셨단다. 다운타운에 사실 때는 주위에 가게가 많으니 차들도 많이 통행하고 거리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시골집으로 이사 가신 후에는 사람 구경도 사람의 목소리도 들을 일이 별로 없었던 거다. 밖에 나가 앉아 계셔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가끔씩 한두 대 지나가는 차가 다였을 테니 많이 적적하시고 외로우셨을 것이다.
그때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는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다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또 그들의 삶의 한 단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단절감과 외로움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와 대화하는 것을 들으면서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거리의 한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그 생기 있는 거리의 일부분이 되었고, 거리에 있는 가게들과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삶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 한적한 곳에 혼자 살게 된 할아버지의 삶에는 이 커다란 자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혼자가 돼 버린 것이다. 이 상실감과 단절감이 할아버지를 외롭게 하고 이에 동반된 우울함이 할아버지를 급격히 늙게 만들어 버렸으리라.
뉴욕이 혼자 사는 노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흔히 말하기를,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 생활을 하고 싶다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건 삶의 동반자가 있을 때의 이야기인 것 같다(물론 개인의 성향 차이는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나는 뉴욕이 혼자 사는 노인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뉴욕 어디를 가도 수많은 가게들과 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또 대중교통이 발달하여 어디나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하도 쇼핑센터 분수대나 만남의 광장 등에 혼자 앉아 물끄러미 사람들을 보고 있는 노인들을 많이 보았다. 노인들이 목적지 없이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루 종일 지하철에서 배회하는 경우도 같은 맥락에서 일정 부분은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노인이 시골 거주 노인에 비해 오래 산다고 한다. 도시의 높은 소득 수준이나 의료 시설 등만이 그 이유는 아닐 것이다.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와 시설이 도처에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간접적인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타인과의 관계와 교류가 삶의 더 중요한 부분이 되어간다.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최선이겠지만 그런 네트워크가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의 경우, 타인들이 교류하고 상호 작용하는 그 현장에만 있어도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나 외로움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