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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02. 2023

새 집 이사 후 한 달 만에 토네이도를 두 번 만나다

미국에서 이사 후 이주만에 찾아온 첫 번째 토네이도

남편이 갑자기 떠나게 되었다.  다른 주에 있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바로 다음날,  아직도 풀지 못한  30여 개의 박스들과 여기저기 정리하다 만 짐들 그리고 어린 네 아이들을 남겨두고서.   


이사하던 날 밤에 한국에 계신 어머님이 위독하시다고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고 그다음 날 바로 한국으로 떠난 것이다. 큰 아이가 9살이 채 안되고 막내가  두 돌 전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방학이었고 Day Care에 다니던 셋째와 넷째는 아직 새로운 Day Care를 구하지 못했으니 네 아이들이 다 집에 있었다.


남편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아이들과 집에 돌아와 산더미 같이 쌓인 박스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한채  한동안 서 있었다.  며칠 만에 급하게 짐을 싸고 이사하느라 벌써 기운이 다 빠져있었고 회사에 이사한다고 일주일 휴가를 냈으니 이제 남은 3일 동안 짐을 다 풀고 정리하고 월요일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아직 집 청소도 제대로 안 했는데 이 모든 걸 애들 데리고 나 혼자 다 해야 하는구나. 다른 주에 살다와서 누구 하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밤이 되어 아이들을 씻기고 재운 후 혼자 아래층에서 짐을 챙기는데  집안이 조용해지니 갑자기 예전 살던 조그만 집보다 2배는 더 큰  이 집이 무섭게 느껴졌다. 이 집이 좋았던 이유는 우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큰 나무들이 집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어 말 그대로 '숲 속의 집'이었고 이웃집 사이의 간격도  많이 떨어져 있어 애들이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녀도 이웃들 신경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앞으로 아이들이 대학 갈 때까지 살아도 공간이 충분할 만큼 넓었기에 선택한 집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니 사방이 나무밖에 없고 이웃집도 저만큼 뚝뚝 떨어져 있으니 왠지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내다보면 옆 집 불 빛이 아니라 나무만 보였다.  창문이 보통의 집들보다 많아 실내에서도 바깥이 훤히 보이는 그 개방된 느낌을 좋아했었는데 밤에 혼자 있으니 창문이 너무 많다는 게 불안했다.   일일이 창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고 다니는데  짐이고 뭐고 무서워서 빨리 아이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남편이 있었던 첫날은 전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내가 이 새로운 집,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혼자 아이들과 남겨진 것이다.


남편이 꼭 필요한 것만 먼저 꺼내고 자신이 올 때까지 박스를 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기다릴 수도 없고 몇 개의 박스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당장 필요한 것 들이었다. 통제가 안 되는 셋째와 넷째와 전쟁을 하며 3일을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마지막 박스까지 풀고 나니 일요일 밤이 되었다.   이제 내일부터 회사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의 새 직장이 정해진 후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   남편의 직장을 따라 다른 주로 이사 가야 한다고 했더니 재택근무를 허락해 주었다. 집에서 일을 하니 당장 아이들을 맡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어린 네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전화로 미팅을 할 때도 옆에 와서 자꾸 소리를 내니 어떻게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있겠는가. 원래 계획은 남편이 여름동안 애들을 돌보면서  셋째와 넷째가 다닐 Day Care를 천천히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


며칠 해보니 네 아이들을 데리고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근처 몇 군데 Day Care를 가 봤더니 마음에 드는 곳은 자리가 없어 몇 달 기다려야 하고  자리가 있는 곳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이비시터라도 구해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베이비시터를  갑자기 어디서 구할까.  그러다 남편이 떠나기 전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마을의 시내에 가게를 하시는 한국분이 있다고 거기를 한번 찾아 가보라고 한 것이다. 용기를 내어 무턱대고 그분을 찾아갔다. 내 상황이 딱했던지 그분이 잘 아는 손님 중에 딸이 베이비시터를 가끔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한 번 물어 봐 주겠다고 하셨다.  결국 그분의 소개로 베이비시터를 구했고  내가 일하는 시간인 9시부터 5시까지 집으로 와서 아이들을 돌봐 주기로 했다. 그녀는 아래층에서 아이들을 보고 난 위층에서 일을 하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사한 지 이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아이들이 지루해하니까 베이비시터가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네 명을 감당하겠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내고 모처럼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며칠 전 신청한 케이블 연결을 위해 기술자가 방문했다. 나는 아래층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 기술자는 위층에 있는 침실들의 케이블을 연결하고 있었다.  한 30 분 정도가 지났을 째 갑자기 바람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키가 40미터가 훌쩍 넘는 그 많은 나무들이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리는데 그러다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쓰러질 것 같았다.  바람 소리와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며 시각과 청각적인 공포가 동시에 엄습했다. 난 그때까지 바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소리가 그렇게 공포스러운지 몰랐다.  


더 이상 아래층에 나 혼자 있을 수가 없어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는 아이들 방에서 일하고 있다가 잔뜩 긴장된 얼굴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내가 이게 무슨 일이냐 이런 거 처음 본다고 했더니 토내이도인 거 같다고 자신도 처음이라며 무섭단다. 순간 바깥이 정말 칠흑같이 캄캄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 와중에 공포스러운 바람 소리와 나무 흔들리는 소리만 귀를 때렸다. 심장이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만약 이 케이블 기술자가 오지 않아서 나 혼자 있었으면 어땠을까. 공포로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그때였다.  쿵하고 마치 땅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그 사람도 나도 똑 같이 비명을 질렀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잠시 후 그가 아마 집 주위에 있는 나무가 쓰러 진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바람소리가 잦아졌다. 바람소리가 잦아지면서 칠흑 같은 어둠도 서서히 걷혔다.  토네이도가 지나간 것이다. 이제 또 다른 지역을 통과하고 있을 것이었다.  둘 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에게 오늘 네가 오지 않고 나 혼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기도 이런 걸 혼자 겪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바람이 더 잦아지자  둘이 같이 뒷마당으로 나가 봤더니 집 옆에 서 있던  30미터 넘는 큰 나무가 집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집 위쪽의 사이딩을 스치고 다행히도 집 쪽이 아니라 땅으로 쓰러졌기에 사이딩에 좀 피해가 가긴 했지만 집에 큰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베이비 시터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신들은 건물 안에 있었고 아이들도 다 괜찮단다. 박물관은 집에서 20여 킬로미터 거리에 있어 토네이도 진행 방향에서 비켜 나 있었다. 그제야 그때까지의 긴장이 풀리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들이 나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아이들이 집에 있었더라면 나의 공포는 몇 배나 더했을 것이다.  또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운 경험을 했겠는가.  비행기 추락이라든지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특히 그곳에 아이와 함께 있었던 부모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뉴스에서 보니 강도 3의 토네이도였다고 한다.  내가 살던 곳은 토네이도 진로의 주변에 있었고 여기서 30분 떨어진 옆마을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100여 채의 집이 피해를 당하고 그중  32집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4채의 집은 토대만 남고 지상에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가는 강도 4의 피해를 봤다. 어떤 아빠는 3살짜리 딸을 안고 집안에서 밖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피해 사진을 보면 마치 예전에 보았던 영화 트위스터에 나오는 장면 같다. 성냥갑처럼 집들이 무너져있다. 여기가 텍사스나 미시시피도 아니고 새 집에 이사 오고 2주 만에 토네이도가 덮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중에 피해자들이 인터뷰를 했다. 모두 말하기를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살아있는 게 감사하다고.  오전까지도 멀쩡했던 그들의 집이 몇 시간 만에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모든 것을 잃었으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진이나 토네이도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지대가 없는 것 같다. 미 동북부에서 토네이도로 집이 날라 가리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지진으로부터 안전 지역이라고 여겨지던 지역에서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가.


일이 끝날즈음 베이비시터와 아이들이 집에 돌아왔다. 엄마가 오늘 집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고 오자마자 배고프다고 저녁을 달란다. 아이들이 얼마나 반가왔는지. 다시 돌아온 일상에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그러나 또한 그렇지 못한 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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