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도착 후 처음으로 맞닥뜨린 낯선 미국의 문화, 그리고 나를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퍼스널 스페이스 (Personal Space)란 개념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대학원 기숙사에 짐을 풀고 지인과 함께 맥도널드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백인 아주머니 한 명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 뒤에 줄을 서 있다가 메뉴를 보기 위해 앞으로 다가서다 보니 그 아주머니가 서 있는 뒤로 50cm 정도 가깝게 다가간 것 같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뒤를 휙 돌아보며 뭔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뭔가 불만인 듯했다. 왜 그러지? 분명 옆에 있는 사람이라곤 나 밖에 없으니 내가 뭔가를 불편하게 했다는 건데, 뭐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내 쪽으로 걸어오던 지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너무 가깝게 다가가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불쾌해진 거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자기도 미국 와서 알았지만 미국인에게는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개념이 있는데 타인이 자기에게 너무 가까운 범위 내로 들어온 경우 그 상황을 매우 불쾌하게(Offensive)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정도의 거리는 당시 한국이라면 같은 성의 경우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리였다.
그 말을 들으니 한국에서 영어 독해 공부를 할 때 Personal Space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 이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줄을 설 때나 공공장소를 이용할 때 적어도 1미터 이상의 넉넉한 간격을 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을 했다.
미국에 한 6-7년 정도를 있다가 어느 해 잠시 한국을 갔다. 도착 후 공항에서 뭘 하느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내 뒤에 줄을 서면서 내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서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고 순간적으로 불쾌해져서 거리를 벌려 더 앞으로 갔다. 그때 느꼈다. 미국에서 퍼스널 스페이스라는 에티켓에 맞추어 살면서 나에게도 그 개념이 자연스럽게 내재화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지키려 했었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편하게 돼 버린 것이다. 다시 생각을 해 봐도 6-7년 전이었다면 그 정도로 강하게 불쾌하게 느끼진 않았을 것 같다.
퍼스널 스페이스란 용어는 Robert Sommer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1959년에 처음 도입 되었는데 개인이 자신과 타인을 구분 짓는 거리 즉,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 타인과 자신의 물리적인 거리가 불편하거나 불쾌하게 느끼지 않을 최소의 거리를 말한다. 여기서 타인이란 처음 보는 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또는 개인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을 모두 포함한다.
Edward T. Hall이라는 인류 학자는 서구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4가지 영역(Zone)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친밀한 관계 (Intimate Relationship)로 이 경우 범위는 자신으로부터 18인치(45.7cm) 까지로 배우자나 가족 그리고 친한 친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즉 배우자나 가족들은 이 거리 안에 들어와도 일반적으로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일반적인 이야기고 예외는 항상 있다.
두 번째는 퍼스널 스페이스로 18-48인치(45cm-1.2m)의 공간이다. 가족이나 배우자가 아니라도 잘 알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은 이 공간 안으로 들어와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셋째로 소셜 스페이스(Social Space)는 사회작용(Social Interaction)이 일어나는 영역을 말하는 것으로 4- 12 피트(1.2- 3.7m)의 범위를 말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서 관계나 상호 작용을 시작하는 경우나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등이 이 영역에 속한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미팅 또는 모르는 타인에게 길을 묻는다고 가정할 때 이 범위 안으로 들어와야 상호 작용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개인 적인 교류가 없는 같은 회사의 동료등도 이 범주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공적 영역 (Public Space)은 12-25피트(3.7- 7.6m), 혹은 그 이상의 거리로 전혀 모르는 타인들이 관련 없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상호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일반적인 것으로 각 영역의 범위는 성, 문화, 성격, 연령등의 사회 문화적인 요건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사회의 인구 밀도에 따라 이 거리가 차이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메타에서 VR의 아바타들에게도 4ft(1.2m)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만들어 아바타들이 그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필요성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는 것은 서로 다른 성일 경우에 그 문제가 다소 심각해질 수도 있다. 미국을 여행하는 남성들이 특히 여성들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할 개념이다. 염두에 두지 않고 행동할 경우 본인도 모르게 실수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므로 여행 시 주위를 둘러보고 누군가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말로 직접 불만을 표시하지 않아도 표정이라든지 바디 제스처로 불편함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람들의 표정이나 바디 랭귀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이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옳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