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항상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얼마 전 온라인 은행 계좌를 이용해 금융 상품을 구입했다. 과거에도 은행에서 구입한 적이 있었고 구입할 때마다 은행 직원들에게 물었던 질문은 '만약 만기 이전에 해약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 원금이 손실될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처음 가입할 때 이미 했던 질문이지만 새로 가입할 때마다 확인차 항상 이 질문을 담당 직원에게 다시 하곤 했다. 그때마다 일관되게 그들에게 들은 대답은 '아니다'였다. 즉 해약 당시까지 생긴 이자는 전부 손실할 수 있어도 원금 손상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확답 받고 이 상품을 구입했었다.
온라인으로 구입 한 직후 그래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기 해약 위약금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나의 시선을 끄는 한 구절이 있었다. '... 이 경우는 위약금으로 6 달의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한 구절, 'whether earned or not'이었다. 이 문장은 내가 알던 '원금 상실 불가'와는 일치하지 않는 규정이었다. 이 문장 자체는 6개월만큼의 이자 소득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해진 6개월의 이자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말은 최대한의 위약금을 문다고 해도 그때까지 발생한 이자 소득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지 위약금이 총 이자 수익을 초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규정이 내가 예상했던 '해약 시점까지 발생한 이자 소득과 6개월 이자 소득 중 더 적은 금액'을 위약금으로 지불한다'면 원금 손실은 어떤 경우에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6개월의 규정 어디에도 예외는 발견되지 않았다.
곧바로 은행에 전화를 했다. 먼저 과거 은행에서 직원들로부터 들은 해약 위약금 규정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온라인에서 찾은 서류를 읽어주며 이 온라인 서류에 있는 'whether earned or not'이라는 말에 의하면 원금 손실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응대하던 직원도 정확히 그 구절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게 하고 다른 직원들과 상관들에게 물어보더니 결국 내가 하는 말이 맞는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왜 지금까지 이 가입 과정을 처리한 담당 직원들은 하나같이 해약 시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없다고 했느냐라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그 온라인 서류를 읽어 봤어야 했었단다. 그 말에 심기가 불편해져서 말했다. '내가 그 상품을 판매하는 세 명의 직원에게 확인을 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몇 년 동안 세 명의 직원이 똑같이 틀리게 답을 했는데 지금 그 책임을 다 나에게 돌리는 것이냐', '이런 중요한 문제는 가입자가 묻기 전에 상담 시 가입자에게 알려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고객이 그에 대해 먼저 질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틀린 정보를 주지 않았느냐' 등의 항의를 했다. 그리고 사실 최근의 경우는 종이 서류에 사인하는 것도 아니고 직원이 창구에서( 하다못해 스크린으로 서류를 보여주는 것도 없이) 사인 패드를 주며 사인하라고 해서 사인만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면 오늘 온라인으로 내가 직접 가입한 금융 상품은 취소를 해야겠다. 설마 몇 십분 전에 온라인으로 가입한 상품을 6개월의 이자를 물고 해약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겠지'라고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그럴 거란다. 검색을 했더니 연방법에 따르면 이 금융상품의 경우 가입 후 6일 이내 취소할 경우는 '최소' 7일간의 이자를 물고 해약할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불행히도 최대 위약금에 대한 제재는 없었다, 무슨 이런 은행만 좋은 법이! 그럼 최대 위약금은 은행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최소가 아니라 최대 위약금을 정해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응대하던 직원이 다시 나를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더니 불행히도 이 은행은 몇 시간 후 취소를 해도 6개월 이자를 지불해야 한단다. '수년 동안 직원들이 잘못된 정보를 일관되게 이야기했는데, 내가 직원들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 지금 말한 내용을 서류로 보게 해 달라고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 때문에 100% 나의 잘못이라고 하는 거냐, 내가 몇 달 전 은행에 직접 가서 가입하고 직원한테 받은 서류에는 해약 위약금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시 한동안 상관과 이야기한 후 이번 한 번은 그냥 해약을 해 주겠다고 했다.
긴 통화가 끝나고 커피를 한잔 마시며 머리를 식힌 후 다시 생각해 봤다. 마침 검색을 해서 이 규정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채, 나중에 취소하는 상황이 생겼더라면 6 개월 이자의 위약금을 원금에서 물어야 했을 수도 있었다. 몇 년 동안 세 명의 직원 모두가 틀린 정보를 준 것이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은행 직원이 자신이 판매하는 금융상품의 해약 조건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러나 한편으론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그 들이 하는 말만 듣고 내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까? 처음 가입할 때는 해약할 경우 위약금이 얼마냐고 했을 때 상황에 따라 달라서 얼마라고 말할 수 없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해약할 가능성이 없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 은행 직원이 해약 시 원금 손실은 없다고 했을 때, 내 상식에 비추어 뭔가 석연치가 않았던 걸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건 가입자에게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가. 그러나 판매하는 직원이 그렇다고 하고, 또 해약할 일도 거의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사실 두 번째는 내가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은행 직원이 원금 상실 가능성은 없다고 했을 때, '그게 사실이면 원금 손실이 없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서류를 내가 직접 볼 수 있냐'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직원은 그 당시 어떤 개인적인 힘들고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중이었던지 겨우겨우 그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 사실 나로서는 그 요청을 하기 전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내가 그 직원을 귀찮게 한다는 느낌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제발 아무 말도 시키지 마세요 하는 얼굴 말이다). 나의 예상처럼 그 직원은 명백히 귀찮아하는 동시에 다소 언짢은 눈치를 보였다. 다른 할 일이 많아서 나와 빨리 끝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가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못해 구태여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언짢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예전에 첫 번째 직원이 했던 말, 즉 위약금을 책정하는 기준은 상황마다 틀리기 때문에 복잡하다는 말을 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지금 생각하면 복잡할 게 전혀 없었다. 만약 고객이 한 상품을 특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상품의 해약 조건을 다 설명해야 했다면 상품에 따라 해약 조건이 다르니 설명이 길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미 상품을 선택하고 구입하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복잡할 게 전혀 없었다. 온라인 자료를 보고 알았지만, 단순하고 일관되게 내가 선택한 이 특정 상품의 해약 위약금은 언제나 6개월의 이자였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복잡한가? 서류 찾는 걸 싫어하는 것이 역력한 그 상황에서 그래도 봐야 하겠으니 문서를 찾아 달라고 끝까지 주장해서 피차 불편한 상황을 연출하기가 싫어 그냥 지나갔다. 이것이 내가 후회하는 부분이다.
가장 최근의 경우는 이전처럼 사무실에 따로 자리를 잡고 서류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은행 창구에 선채로 진행을 했는데 일반 업무 고객들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지금까지 이용한 은행들은 한국처럼 기다리는 좌석이 있거나 번호표를 뽑는 시스템이 없고 그냥 줄을 선다. 업무를 보는 고객도 서 있어야 한다) 상품 구입 전, 직원에게 습관처럼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역시 이전 직원과 같은 대답을 했다. 원금 손실은 없고 특정한 양의 정해진 이자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서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전에 이미 두 번이나 경험했던 것처럼 쉽게 원금 손실에 대한 서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더구나 창구에 앉아 일반 예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 말이다. 이 창구의 직원이 첫마디에 아니라고 했으니 알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창구에 사람들이 내 뒤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이미 다른 고객보다 시간을 오래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도 그냥 넘어갔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나로 인해 뒤에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해도 그건 은행에서 신경 써야 할 일이지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니다. 원래 이 업무는 창구가 아니라 예전처럼 사무실에서 처리되었어야 할 업무이다. 내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내 경험상 미국 사람들은 이런 걸 상대적으로 잘한다. 자신으로 인해 마냥 지체되어도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천진하게 싱긋 웃어주기도 한다. 압박을 전혀 받지 않는 듯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나는 그 은행의 상품을 구입하는 고객으로 당연히 그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직원은 당연히 합당한 고객의 요구에 응대할 의무가 있었다. 그 직원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생각을 하던 나는 그 직원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고 귀찮은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원론적으로는 나의 요구가 타당하다 할지라도 만약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데 나만 그렇지 않다면 난 까다로운 사람, 엑스트라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 그 직원에게 어떤 일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직원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안 좋아 보였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 저변에는 아마 다른 사람들을 언짢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괴로운 사람을 더 괴롭히고 싶지 않은 마음, 또는 별 상관이 없는 공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에게 안 좋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성향은 나를 피곤하게 하거나 결과적으로 나에게 문제를 초래한다. 더 확실하고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다. 대학교 다닐 때 하숙을 했었다. 하숙집 아주머니들이 어머니 연령대 분들이라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괜찮다 괜찮다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양보와 배려가 고맙게 여겨지기보다는 당연시되었다. 나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이럴 거면 내가 왜 하숙을 하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숙집 주인들이 까다롭게 구는 다른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신경을 쓰고 챙기는 걸 보고 씁쓸했었다.
그래서 나의 자녀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것은 허영이고 욕심일 수 있다. 공적인 비즈니스에서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해야 할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간과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면 상황이나 주위의 이목에 압박되지 않고 기꺼이 까다롭고 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일은 상대방이 누구이든 간에 말만 듣고 결정하지 말고 언제나 문서를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내 기준에서 납득하기가 힘들거나 의구심이 생긴다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원래 나의 권리라면 불편함과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권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타고나지 않으면 연습하면 된다고 말이다.
물론 모든 룰에 예외는 있다.
그리고 그 예외는 본인이 결정하고 감수하면 된다.
note** 이 해약 위약금에 대한 규정을 바로 찾기 힘들었던 이유는 특이하게도 이 규정이 당연히 있어야 할 해당 금융 상품 설명 페이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일반적인 Service charge 페이지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 곳에 다 같이 post 할 수도 있는데 구태여... 의도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