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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7. 2023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커미트먼트(Commitment)

My 2 Cents on Life

내가 20대 중반 일 때다. 혼자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로 넘어오는 아침 기차에서 제프를 만났다. 6인용 Compartment에 혼자 있었는데 그가 큰 배낭을 메고 들어왔다. 그때 난 넓은 6인용  객실을 혼자 사용하는 여유를 마음껏 누리며 여행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4-5시간은 같이 가야 했기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는 미국에서 온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학회를 참석하기 위해  왔는데 온 김에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같이 대화하기에 매우 유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비엔나 시내를 여행하고 밤차로 다른 도시로 갈 예정이었고, 난 시내 호텔에 이틀을 예약해 놓은 터라 그날 같이 시내를 관광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연히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다. 그 드라마의 내용은 이렇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50대의 부부가 있었다. 두 부부는 모두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과거 오래전에 있었던 남편의 불륜을 아내가 알게 된다. 남편의 외도는 과거의 일이었고 남편은 후회한다며 용서를 빈다.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드라마의 결말에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다. 남편은 계속 아내를 설득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이혼을 원한다.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분노를 느낀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후회하며 용서를 구했는데도 꼭 이혼까지 해야겠냐고 소리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용서한다. 그러나 당신은 더 이상 내가 알고 내가 신뢰하던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신뢰는 무너졌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이제 옛날과 같을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지는 몰라도 당신과 부부로서 더 이상 살아갈 수는 없다.  


나는 당시 드라마 속 아내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다. 그런데 제프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Marriage is a COMMITMENT!, the greatest commitment in your life! You have to try all your best to stick to it.” 난 그날 제프에게 커미트먼트란 말을  수십 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그의 말은, 결혼은 커미트먼트를 토대로 비로소 성립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서로 돕고 아끼며 결혼을 유지하겠노라고  커미트먼트 했기 때문에 난관과 위기가 와도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녁이 되어 그는 기차를 타러 가고 나는 호텔에 돌아왔다. 나는 그가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커미트먼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캘리포니아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가끔 그가 한 말을 떠 올리곤 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한 커미트먼트가 무얼 의미했는지 그 무게가 주는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게 되었다. 몇십 년이 지나 그의 얼굴은 희미하지만 결혼은 커미트먼트라고 열변을 토하던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으로 연애를 한다(사랑의 원론적인 정의는 이 글의 주제를 넘어서기에 일상에서 통용되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연애 과정에서는  좋아하는 감정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결혼 생활에선 감정 이외에도 신뢰, 존중, 의무, 책임, 구속, 인내, 동반자 의식 등의 복합적인  필요조건들이 존재한다. 연애 과정을 통해 이 사람이 일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고, 이제부터는 일생 동안 어떤 난관이 와도 함께 노력하고 아끼며 살겠다고 굳게 결정을 하고 비로소 결혼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한편이 돼서 싸워나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혼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바로 커미트먼트의 시작점이고 이 시작을 많은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공포하는 것이 결혼식이며, 법적인 신고를 함으로써  사회의 공증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결혼에 대한 이해 없이 즉 커미트먼트와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없이 연애 감정의 깊이에 따라  결혼의 여부를 결정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 경우  감정이 결혼 생활의 토대가 된다. 이는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도 비슷하다.  감정은 불안정하고 쉽게 변한다. 

연애는 절대 조건이었던 감정이 사라지면 끝날 수 있지만 결혼은 다르다. 사랑의 감정이 결혼의 절대 조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랑의 감정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결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과 연애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으로 입문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 할까?  결혼 생활을 하며 이 커미트먼트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허물을 보고도 감싸 안아야 하고 못마땅한 모습도 받아들여야 하고, 또 서로에게 받은 상처와 슬픔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다.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한 커미트먼트를 지키려고 안감힘을 써야 한다. 그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내와 배려, 그리고 이해하는 것을 배운다. 원래의 모습이 깨어지고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누구도 이 과정이 익숙하지도 쉽지도 않다. 서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이다.  성격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이는 조금 더 쉽게, 어떤 이는 더 고군분투하며 걸어간다.  

 

물론 이 커미트먼트를 깰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개인의 의지나 노력 보다 상황적인 요소가 압도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결혼 전에 굳은 마음으로 커미트먼트를 시작했다고 해서 이를 다 유지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약하고 인간은 변한다.  결혼과 이혼은 결국 개인적인 결정이다. 커미트먼트를 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는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자신이 만든 커미트먼트에 입각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의 결정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일률적으로 다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이론과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결혼과 커미트먼트에 대한 선행 지식이  자신의 결정을 심사숙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커미트먼트도 없이 혹은 결혼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결혼으로 입문한다면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그러한 일생의 커미트먼트를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그리고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Marriage is not for everybody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고 인생관의 문제이다. 시작점에서 확신이 있어도 걸어야 할 여정이 힘든데  시작부터 헤맨다면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부터 결혼학과 부모학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 잘 모르고 어떻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결혼을 위한 커미트먼트를 생각할 때, 이 사람이 내가 정말 결혼하기를 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결혼의 커미트먼트를 기꺼이  승인하고 감당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확신이다.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감당하기를 원하는가가 더 정확하고 현실적인 질문이다.

 

(이 글이 공적인 공간에 존재하기에 명확히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글에서 쓰인 결혼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범주의 결혼 생활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난 결혼 생활, 예를 들어 배우자의 가정 폭력이나 고질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일탈 행위들이 존재하는 결혼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kalaloch 비치, 올림픽 국립공원,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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