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이은 Mar 31. 2024

기업문화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이중몰입 #멀티태스킹의 오해 #선택과 집중

회사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산수유꽃, 매화꽃, 벚꽃이 예쁘게 피는 공원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봄꽃 축제도 열립니다. 올해는 3월 꽃샘추위와 잦은 비로 인한 일조량 부족으로 봄꽃이 없는 봄꽃축제가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가지 사이로 보이는 새싹들과 벚꽃봉오리에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특히, 겨우내 가지치기 작업을 해 앙상한 뼈만 남은 듯한 나무에서 잎이 돋고, 새로운 줄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지만 참 신기합니다.


가지치기는 나뭇가지의 일부를 자르고 다듬는 일로 가지, 눈, 뿌리와 같은 나무의 일부를 선별하여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은 나무의 생장이 멈추는 11월부터 2월 사이에 많이 합니다. 가지치기를 하는 이유는 잔가지로 가는 영양분과 수분의 낭비를 막아 나무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나무들 간 적절한 거리를 유지시켜 햇빛과 바람이 잘 들게 하여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나무가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지치기할 가지를 남기지 않고 자르는 것입니다. 나무도 하나의 유기체이기에 완벽하게 잘라내지 않으면 그곳을 치유하는데 영양분을 사용해 처음 의도한 대로 나무가 자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직이나 기업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 시작과 함께 '창의적 문화를 만든다', '수평적이고 애자일한 조직으로 변화한다', '소통과 참여 중심의 조직을 만든다', 'ESG를 기업문화화 한다' 등 한 해 동안 기업문화를 어떻게 관리하고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이러한 목표를 위해 무엇인가를 더하겠다는 실행 안만 있다면 그것은 반쪽짜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인가를 더하겠다'는 실행 계획 맞은편에는 '무엇인가를 빼겠다', '무엇인가를 그만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가지치기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조직에서도 뺄 것을 완벽하게 빼지 않으면 '이중몰입(dual commitment)'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중몰입이란 다중몰입의 한 종류로 '상반되는 두 가지를 모두 지키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중몰입은 '조직몰입-노조몰입'이나 조직인으로서 내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과 개인으로서의 내 모습에서 갈등하는 '조직몰입-경력몰입' 등입니다. 물론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며 적절한 갈등 관리를 통해 구성원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가 현재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실증연구에서 이중몰입은 조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조직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며, 직무 만족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을 중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MZ세대들이 조직의 주축이 되면서 이중몰입은 조직갈등의 원인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죠.


흔히 '극강의 난이도를 지닌 K-직장생활'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모던하면서 클래식하게', '천천히 속도감 있게', '자유롭게 하면서 규율을 지켜라' 등이 난무하는 조직 생활에 지쳐가는 구성원들은 '이중몰입'의 부정적 효과에 훨씬 빠르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멀티태스킹은 IQ 점수를 15점 하락시킨다'는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진의 연구결과와 비슷하게 문화의 변화 과정에서 이중적 가치가 상존하게 되면 조직문화에 대한 신뢰도와 만족도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작 없애야 할 것을 없애지 못한 채 새로운 것을 더하기만 하는 조직에 대해 직원들은 실망하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1분기를 마감하고 2분기를 시작하는 4월 많은 기업들이 1분기 성과를 점검하고 상반기 성공적 마무리를 위한 미세조정을 진행할 것입니다. 이때 내가 키우고자 했던 가지가 잘 자라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가지치기를 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혹은 내가 키우려고 했던 가지가 싫은 썩은 가지여서 지금이라도 잘라내야 하는 것인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이미 시작했으나 좌고우면 하지 않고 앞으로 달리겠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올해 하고자 했던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고 아닌 것은 과감하게 버리거나 없애야 합니다.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검증하거나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진화는 결국 검증과 질문의 과정이었음을 설파합니다. 검증과 질문이라는 '선별(filtering)' 과정을 통해 '집중할 것(focus)'과 '버리고 잊을 것(forget)'을 찾아낸 것이죠. 진짜 강한 문화를 가진 조직은 'filtering - focus - forget'의 사이클이 잘 돌아가는 조직이며, 특히 잘라내야 할 것을 잘 잘라내는 조직입니다.



[참고자료]

Recovering from information overload. Derek Dean. 2011

이중몰입의 구조방정식모형에 관한 연구. 이병훈/유제민. 2002

COVID-19로 인한 재택근무가 MZ세대 조직 구성원의 침묵에 미치는 영향: 외로움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하순복. 2023




작가의 이전글 문화기동장치도 혁신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