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투런 #변화관리 #호흡법 #엔트로피
서울을 기준으로 118년 만에 최장 열대야가 지속되고, 역대급이었다는 1994년과 2018년의 폭염을 가뿐히 뛰어넘은 2024년의 여름도 어느덧 끝나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지겹도록 입던 반팔 티셔츠를 긴팔로 바꿔 입은 지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저는 밖으로 나가 달립니다. 피트니스센터의 트레이드밀에서 달리는 것과는 느낌 자체가 다릅니다. 트레이드밀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지만 밖으로 나가 한강변이나 주변 공원을 달릴 때면 왠지 모를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달려야 하는 거리도, 속도도, 방향도, 그리고 어디서 잠시 숨을 고를지도 내가 선택합니다. 이런 자유로움은 직장인에게는 묘한 쾌감을 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것 같습니다.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쯤 크리스토퍼 맥두걸(Christopher McDougall)이 쓴 <본투런(Born to Run)>을 우연히 읽은 후였습니다. 물론 그전에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마라톤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특별한 이벤트로 참여했던 것이고 지금처럼 제 삶에 들어온 것은 10년 정도 된 것이죠.
맥두걸은
"인류는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살아남아 번성하고 이 행성 전체에 퍼졌다. 먹기 위해 달리고 먹히지 않기 위해 달렸다. 짝을 찾기 위해 달리고 이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달렸다. 그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달렸다. 사람들이 ‘열정’과 ‘욕망’이라는 감상적인 이름을 붙인 다른 모든 것처럼 달리기는 우리에게 필수적이었다.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다. 달리기 때문에 태어났다. 우리는 모두 달리는 사람들이었다."라고 주장하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병리적 현상들이 달리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5년 정도 HRD, 기업문화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정체기와 혼란을 겪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래 나도 한 번 달려보자" 생각한 거죠. 그렇게 달린 것이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달렸습니다. 빨리 달리는 것이 목표였죠. 5km를 40분에 달렸으면 다음에는 2분을 줄이고, 그다음에는 또 2분을 줄이는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탈이 났습니다. 무릎과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긴 거죠. 그래서 한 동안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Born to Run>을 읽었습니다. 한 문장에 눈에 들어오더군요.
"달리기에서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스피드는 상관없다... 달리기를 할 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달리기를 마치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선수로 불리는 에밀 자토팩(Emil Zatopek)도 "이기고 싶으면 100m 달기를 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으면 마라톤을 하라. 머리에 꿈을 새기고, 가슴에 희망을 품고 달리면 된다.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경계선에서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될 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계속 달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달리기 잘 마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고 또 찾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호흡법'이었습니다. 자유롭게 달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호흡법을 익히는 것이었죠. 우리 흔히 알고 있는 "씁씁 후후"입니다. 코로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뱉는 호흡이죠. 특히 중요한 것이 내뱉기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보다 몸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잘 배출해야만 과호흡 증후군에 빠지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이죠. 고개를 들고, 턱을 당긴 후 팔은 90도로 굽힌 상태로 앞뒤로만 가볍게 흔들어야 하는 이유도 이산화탄소를 잘 배출하기 위한 동작인 것이죠. 힘들다고 숨을 들이마시기만 해서는 안 되며, 편안하고 길고 내뱉는 훈련을 해야 계속 달릴 수 있습니다. 이 호흡법을 익히기 위해 천천히 호흡을 마치며 달렸습니다. 그 후로는 달리기가 편안해졌습니다. 내뱉는 훈련을 한 후 훨씬 여유롭게 달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고통과 괴로움의 경계선에서 어른으로서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업문화 관련 업무를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왜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루틴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상정한 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변화관리를 추진합니다. 해빙(unfreezing) 과정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통해 빠른 인식의 전환과 직원 참여를 유도하지면 결국은 3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변화를 추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바로 들이마시는 전략과 내뱉는 전략의 균형입니다. 보통은 무엇을 자꾸 더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하기만 하고 빼지 않으면 조직에 과호흡 증후군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내뱉는 훈련이 안 되면 호흡곤란, 구토, 어지럼증이 나타나 결국 달릴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조직도 장기적인 변화관리를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게리 헤멀(Gary Hamel) 교수는 지금 조직에서 필요한 것에 대해 "엔트로피의 적이 돼라(Become an enemy of entropy)”라고 했습니다. 조직에 쌓여 있는 엔트로피를 빼내는 작업을 지속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를 보기 전에 버릴 것은 무엇인지, 우리 조직은 내뱉기가 가능한 조직인지, 내뱉기를 하기 위해 리더그룹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마라톤처럼 진행되는 기업문화 변화관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Born to Run. 크리스토퍼 맥두걸. 2009
What Matters Now. 게리 헤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