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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Aug 22. 2022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매일의기록

어렸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송이나 뮤직비디오 등을 비디오테잎에 녹화해두곤 했다.


비디오테잎의 갯수는 늘 한계가 있었으므로, 90분 짜리 5개 있었다고 보면, 그 다섯 개가 꽉 찬 후 덜 중요한 테잎은 다시 새로운 걸로 덧대어지곤 했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농구 중계, 뮤직비디오, 음악 방송, 가끔은 드라마 마지막회 같은 것들을 비디오 테잎에 녹화해두고 보고 싶을 때 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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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 원할 때 그것을 다시 꺼내어 보기 위해 나만 아는 방식으로 지금이 아니면 지나갈 순간을 기록해두기 시작했던 것이.


그것은 때로 내겐 비디오테이프에(기록되고 덮어씌워졌던 수많은 흔적들), 어떤 경우엔 수첩 속에(관심 있는 강의를 들을 때면 나중에 잘 보지 않을 필기를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했고), 어떤 경우엔 전시회 안내책자나 리플렛 수집으로 보여졌다(대부분 다시 보지 않게 되는 전시 안내 리플렛이 내방엔 그렇게도 많았다).


하여간 효율성이 결여된채로 뭔가를 집요하게 모으는 습성이 내겐 쭉 있어왔다.




합정역에서부터 망원한강공원까지 - 하늘과 빛, 구름과 노을을 바라보는 것에 관심을 가진 뒤로 어쩌면 걸으며 눈에 느낀 것을 눈과 마음에 담는 것보다 사진으로 그 장면을 남기는 게 내겐 더 우선이 되어온 것 같다.


그것을 사진으로 더 잘 담아봐야 하겠다는 기술적인 노력보다는 그 장면들을 포착하는데 좀 더 시간을 들여 순간에 가졌던 느낌과 감정 그리고 내게 큰 감흥을 준 모습에 집중하려는 마음 가짐은 가졌지만.


사진으로 기록되는 그 시각적 정보에 당시 내 감정이나 감상이 포함되지는 않잖아. 그걸 눈에 잘 담아두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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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친구들이 친히 동네로 방문했다. 하려했던 이야기들의 뚜껑을 열어보니 우울한 결과만이 느껴졌던 시간이었지만,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눈 시간 후에 우리는, 한강을 향했다. 대부분 한강에서의 시간은 혼자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한강이라면? 조금 다르고 재미있을 것 같았어.


친구 차로 망원나들목으로 진입, 수없이도 가본 한강공원이지만 차를 타고 들어가보긴 또 처음이었네.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우리 셋은 걷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걷던 우리 모두에게 공통의 이야기가 찾아왔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만고의 불변 같은 그 가사가 우리에게 탁 박혔다.


20여 년 전, 내가 재수하고 친구들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그해 겨울 밤낮 없이 참 많이도 만나고 시간을 보내던 일. 간이역, 러브앤러브(당시 전주 기독병원 근처 술집, 계란말이가 지존이었던 곳) 등 생각나는 저렴한 술집들.


세이클럽에서 만나 밤을 새며 관심사가 같은 친구들을 만나 채팅하고, 이야기 나누고, 오프 번개를 하기도 하고, 전북대 축제 때 모두 같이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했던 날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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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재미있었던 시절이 별로 없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 여 한강을 산책하며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니, 내게 정말 재미있던 날들이 많았네?


역시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ㅎㅎ 20년 전 이야기를 그렇게 추억하며 해야 하는 것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ㅎㅎ


망원나들목에서 시작해 성산대교를 지나 월드컵대교 앞 거울분수 쪽까지 함께 산책하고 오는 길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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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오늘 산책에서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어, 사진을 찍어야 하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시간.


일상이 늘 평평하고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에 매일을 기록하고 일기를 쓴다는 문보영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역시 정말 좋았던 순간에는 뭔가를 기록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봐. 오늘 정말 그랬다.


근데 사진이 하나도 남지 않아 예전 사진들로 글을 올려야 한다는 건 조금 아쉽다. 한 두 장 정도는 남기는 게 가장 좋겠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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