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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5. 2020

옥탑, 보고서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옥탑, 보고서


   보증금을 돌려주러 온 집주인은 집을 한 번 둘러봤다. 사촌 조카가 살 예정이라는데, 확장공사와 리모델링을 한단다. ‘여기서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태도로 집을 둘러보는 모양새란(당신, 이 건물 주인이잖아?).

   

   그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썩 언짢았다. 가족이나 친척이 살 집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나보지? 우리에게는 버젓이 월세를 받았으면서.


   어쨌든 끝이다. 옥탑을 떠나는 마당에, 내가 깨달았던 옥탑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보자면-


   첫 번째, 옥탑의 더위와 추위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경써서 최근에 지어진 옥탑방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대부분 심각한 더위와 추위를 동반한다.

   천장을 포함한 다섯 개 면이 땡볕과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인데, 한쪽 면이 옥상까지 올라와있는 계단통로로 되어있다든지, 천장이 약간 띄워져 있고 더위와 추위를 방지할 수 았는 소재가 포함되어 있다든지, 스티로폼 외벽이 건물을 보호하고 있다든지 등등. 이런 옥탑방들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더위와 추위가 훨씬 덜하다. 건물주가 옥탑거주자의 생활을 배려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두 번째 옥탑집이 그러했다. 오래된 건물이더라도 그런 곳은 살만 하다.


   두 번째, 예전에 지어진 옥탑방의 경우에는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무허가 건물이 많다(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전세자금대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세입자 권리보호도 어렵다. 옥탑의 낭만을 느껴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인 당신, 등기부등본을 잘 확인할 것.


   세 번째, 무조건 내 공간을 통해서만 옥탑으로 향할 수 있는 곳을 골라야 한다. 즉 건물에 거주하는 다른 세대들은 내 허락이 있어야만 옥상으로 올라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옥상을 단독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옥탑방의 모든 단점들을 겨우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큰 장점인데, 포기할 순 없겠지? 옥상에 누군가 불쑥 올라온다는 건 공포 그 자체.. (다른 세대 입장에서 옥상은 공동소유니까)


   네 번째,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수, 겨울에는 뽁뽁이와 문풍지가 필수다. 환기가 잘 안 되면 결로가 생길 수 있고, 결로가 생기기 시작하면 곰팡이도 핀다. 문 밖 공간들, 잘 안 보이는 곳들을 잘 살펴 결로와 곰팡이 여부를 잘 체크해야 한다. 겨울에도 환기를 잘 하자.



   옥탑엔 이렇게도 많은 단점이 있지만,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이 오래가는 사람, 찰나의 아름다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결코 적지 않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1. 옥상에 빨래 말리기 – 옥탑방 최고의 장점. 마당 있는 집과 다를 바 없지.
2. 비오는 날 분위기 – 옥상에 떨어지는 빗소리, 방문을 열고 비스듬히 누워 옥상에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자. 분위기 최고.
3. 사람들 초대해서 파티는 꼭 – 뒷정리는 정말 귀찮고 다른 세대들에 피해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간소하게라도 옥상에서 사람들과 도란도란 파티는 꼭 해봐. 얼마나 행복한 경험인지, 해본 사람만 안다.
4. 옥상에서 운동을 – 간소하게 아령, 역기 정도 준비하면 헬스장과 다를바 없다. 부지런하면 줄넘기도 열심히.
5. 간소한 텃밭도 – 신경 안 써도 잘 자란다는 상추라도 심어보자. 내 손으로 가꾼 것들을 수확해서 먹는 기쁨, 느껴봐.


   단점과 주의할 점을 늘어놓자면 저것 말고도 많겠지. 하지만 봄과 가을의 좋은 날씨 속 아름다운 풍경과 공기들이 주는 좋은 느낌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나는 옥탑방에 살면서 나름대로 좋았다. 어려움도 실수도 많았던 첫 서울집에 대한 기억, 이젠 다시 느낄 수 없는 애틋함과 좋은 느낌으로.


   2010년 2월부터 8월까지, 망원동 옥탑방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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