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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1. 2020

도와줘요, 피터팬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도와줘요, 피터팬


   한여름을 지나고 있던 어느 날 불현듯 집을 계약했던 1월의 일이 떠올랐다. 500/30이라고 적혀있던 임대료는 ‘혼자 살 때 해당하는 금액’이었고, 둘이 살 예정이라면 500/35라고 했다. 집주인의 말에 우린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500/35로 계약서를 썼다.


   지금이라면 ‘애초에 그런 설명은 없었으니 재고해달라’라거나, ‘다른 집을 알아보겠다’고 했겠지만 임대차계약을 처음 해봤던 우리는 다른 선택 없이 그냥 받아들였었다. 이후 집주인은 우리가 이사할 때까지 한 번도 건물에 오지 않았다. 우린 ‘그냥 혼자 산다고 할 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한여름 옥탑의 찌는 더위와 좁은 방의 답답함은 룸메의 여자친구가 살짝 언급했던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카페를 떠올리게 했다. 룸메는 ‘그냥 살자’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고작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사를 생각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늘을 날며,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 장난꾸러기 소년 피터팬이 안내하는 세계는 신비로웠고, 나로 하여금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나은 집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가장 활성화되어있는 부동산 직거래 카페였던 그곳(나는 여전히 이곳에서만 집을 알아본다)은 글을 올린 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올릴 수 있게 되어있었다.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도 집 정보를 볼 수 있고, 직접 가보지 않아도 이렇게 사진으로 볼 수 있구나!’


   자신의 집을 어서 다음 세입자에게 넘겨야 하는 임차인과 세입자를 들이지 못해 애먹고 있는 임대인들의 미사여구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 3대 거짓말 -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1층 같은 반지하, 집주인 정말 좋으시고 - 을 잘 걸러들어야 한다는 점, 직거래인 듯 하지만 중개업체와 연결된 매물들이 많다는 점 등 후에 알게 된 유의점들이 많이 있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다양한 매물들을 볼 수 있고 복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었다.


   - 옥탑은 절대불가(겨울과 여름을 지내보니)

   - 가급적 방 2개인 집으로

   - 임대료 상한은 500/35

   - 위치는 홍대입구에서 지하철역 3~4개 이하의 거리로


   룸메에게는 알리지 않고 나는 혼자서 괜찮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옥탑에 6개월 거주한 경험에서 오는 다음 사항들을 전제로 두고.


   마포구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과 가격, 형태의 집들이 있었다. 아마도 혼자 혹은 우리처럼 둘이서 사는 사회초년생 격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 한 시간씩 투자하면서 며칠을 보낸 끝에, 두 눈을 의심하게 하는 집이 나타났다. 컴퓨터 모니터에 한줄기 섬광이 비추는 듯, 위에 열거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집!


   ‘이대역 도보 5분 1층 투룸, 300/30’


   씨없는 수박 김대중님의 노래 ‘300/30’을 떠올리며 -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은 신월동 옥탑도 아니고,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은 녹번동의 지하방도 아닌데 - 며칠을 투자한 보람을 만끽하려면 어떻게든 가장 먼저 보러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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