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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6. 2020

반지하 같은 1층

이사일기(2010-2020) - 2. 염리동 (2010.08)

대발견,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지만 피터팬 카페의 3대 거짓말 중에 ‘1층 같은 반지하’가 있다. 1층 같은지, 그냥 그대로 반지하인지 잠깐 보고 어떻게 알겠는가. 반지하집을 소개하는 상투적인 수식어가 되었다. 그런데 그 가격에 무려 1층이라니! 1층 같은 반지하도 아니고 1층이라니!


   지금은 자취를 감춘 L뮤직 레이블 사장님께서, 차로 이삿짐을 날라주셨다(두 번이나 왕복하여). 우리를 서울로 올라오게 한 가장 큰 장본인이셨으니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지셨을 법도 하다. 우리의 첫 번째 집 옥탑방, 그리고 이사할 두 번째 집(서울사람이 보기엔 두 곳 다 집 같지도 않은)을 보고 사장님은 어떤 느낌이셨을까?


   각설하고, 옥탑생활을 졸업하고 지상에 입성한 우리는 기념으로 맥주 한 캔씩 했다. 지독한 추위와 더위, 그리고 비좁은 방을 이젠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지대가 높은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이사한 날이 토요일이었기에 여유롭게 다음날 이것저것 정리할 수 있었다. 짐도 다 풀어서 정리하고(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대역 다이소에 가서 필요한 것들도 이것저것 사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들 보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깨달았는데, 옥탑방에 살면서는 지겹도록 맞이했던 햇빛을 아침부터 그때까지 집안에서 한 줄기도 보지 못했다는 것. 아침 일찍,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점심 먹고 일을 보고 밖에 나갔다 왔을 때도 집 안에는 잠시도 밝은 기운이 내려앉지 않았다.


   “오늘이 좀 이상한 날인가? 날씨는 괜찮은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그날 밤부터 리얼 월드가 펼쳐졌다. 역시 옥탑방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모습. 부엌장이나 신발장, 방 구석 곳곳에 이전 세입자가 놓아두었던 바퀴벌레약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하루만에 이사 후의 설렘과 기대감이 무너졌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 한 달 동안 경험한 하드코어한 밤, 시커먼 무리들과의 사투는 생략하기로 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 분들을 위해 너무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는 자제하려 한다. 되살리고 싶은 기억도 아니고.



반지하 같은 1층


   1층인 이 집이 지하방 같았던 이유는 건물들의 형태 때문이었다. 정오에 아주 잠깐, 말 그대로 정말 한 줄기의 햇볕만이 들어왔던 이유는 서너 개의 건물이 우리가 살던 집이 있는 건물을 완벽하게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에는 되도록 집을 보러 다니지 말고, 불가피하다면 정말 세세하게 많은 것을 체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여긴 뭐 1층 같은 반지하가 아니라, 반지하 같은 1층이구만.”

   “그러네, 쩝..”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우린 하드코어한 싸움을 지속해가며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해먹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날들을 이어나갔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9월 중순 쯤 되었을 시점, 이윽고 여름이 지나면서 하드코어한 그림자들도 재빨리 걷히기 시작했다. 마치 집을 뒤엎고 있던 거대한 검은 무리들이 단체로 우리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듯. 눈에 띄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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