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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7. 2020

평양냉면 입문

이사일기(2010-2020) - 2. 염리동 (2010.08)

우리집은 을밀대 근처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새로 알게 되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다. 그동안에는 내가 하지 않아도 되었던 집구하기, 독립된 생활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직업 구하기, 전주에는 없던 지하철, 버스중앙차선,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안에서의 생활방식 등.


   서울생활 초기에 그런 방식들을 가장 많이 접하게 된 통로는 공연을 하며 알게 된 음악동료들/예술가들/기획자들이었다. 그들과 클럽이나 두리반 같은 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주로 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고), 각자의 트위터에서 취향이나 생활방식들을 알게 되기도 하고(음악가들은 저마다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트위터를 이용했는데, 트위터는 공식적인 소식만을 올리는 곳은 아니었기에 각자의 취향과 생활방식 등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특이한 음식 중에 평양냉면이라는 것이 있었다. 평양냉면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있었으니 우린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빠져들면 중독된다’, ‘진정한 맛의 세계’라 주장하는 평양냉면 러버들과 ‘걸레 빤 물 맛이다’, ‘맛도 없는 걸 7~8천원씩(당시 가격) 돈내고 먹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는 평양냉면 무관심자 혹은 헤이터의 의견들만 알고 있었는데.


   이대역 – 대흥역 근처로 이사했다고 하니 몇몇 이들은 이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아, 을밀대 근처구나~”     

   

   을밀대. 나도 들어본 적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평양냉면집. 그게 우리집 근처에 있다고? 장소에 대해 말하는데 냉면집을 먼저 언급할 정도로 그렇게 유명한 곳인가? 이사한 집에서 쭉 내리막길 도보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굉장히 맛있는 음식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었고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는데, 음악하는 동료 몇몇과 식사할 일이 있었다. 일행 중 회기동ㄷㅍㅅ이 있었는데, 그가 우리를 을밀대로 초대하였다. 마침 집 근처이기도 하고 우리도 평양냉면이라는 것을 한 번 먹어보자는 기대감을 갖고 회동에 참가하였다.


   몇 번 가본 후 냉면값이 9,000원으로 오른다고 분노했던 기억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당시 을밀대 냉면이 8,000원, 녹두전이 6,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나 맛이 있으려나? 저렴하지는 않군’


   ㄷㅍㅅ과 나, 동거인, 그리고 다른 이 몇몇은 그날 회동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평양냉면과 녹두전을 먹었다. 무리 중에는 왜 여기서 만나느냐며 불만을 가진 이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ㄷㅍㅅ은 내게 평양냉면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이며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라고 어필하였다.


   나와 동거인도 냉면을 먹어보았다.     

   ‘음, 이게 무슨 맛일까? 그냥 맹물인 것 같은데, 미식가들이 인정하는 맛의 세계가 이런 것일까? 나도 맛있다고 해야하는 걸까? 서울사람들의 세련됨에 편승하려면 나도 그냥 맛있다고 해야겠다.’


   이런 음식을 소개해준 ㄷㅍㅅ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듯한 제스처와 눈짓을 보내며 “음, 맛있네~” 라고 몇 차례 반응했다.     


   “먹을만 했어?”

   “잘 모르겠더라고.”

   나의 동거인과 나는 같은 의견을 보이며 돈이 아깝다는 표정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염리동집에 사는 동안 나는 을밀대를 예닐곱 번은 더 간 것 같다. 순수한 자의에 의해서. 심지어 집을 구경하러 오신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도 했다. 몇 번 먹으면 중독되버릴 거라는 ㄷㅍㅅ의 말은 사실이었고, 평양냉면은 내가 서울 와서 알게된 새로운 음식 중 가장 자주, 꾸준히 찾는 음식이 되었다. 생활하는 루트에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최근에는 1~2년간 못 먹은 것 같은데, 조만간 다시 갈 날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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