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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8. 2020

카페 OOO

이사일기(2010-2020) - 2. 염리동 (2010.08)

서울의 장소와 공간들


   서울의 장소들, 공간들. 2010년에 우리가 기억과 추억을 남겼던 곳들 중에 지금은 사라졌거나, 바뀐 곳들이 참 많다. 특히 우리의 주 활동 장소가 서울의 다른 곳보다도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홍대-합정-망원이었으니 말 다했지.


   2020년인 지금 홍대-합정-망원 일대에서 10년 전에도 있던 장소/공간이 지금도 계속 유지되는 것을 보면 참 반갑다. 자본논리가 1순위로 작동하는 이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의 추억을 보존해주는 곳들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


   추억이 깃든 공간 중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에 카페 OOO라는 곳이 있다. 2010년 가을 ‘날밤까는 카페’라는 행사에 섭외되어 L모 밴드와 함께 공연하고, 사람들과 뒷풀이대화 자리도 가졌던 곳(카페 OOO는 지금도 있다!).



   고정적으로 하던 클럽공연 말고 따로 갖는 기획공연은 특별하다. 우리가 직접 주제도 정하고, 컨셉도 정하고, 공연장도 섭외하고, 홍보포스터도 만들고, 함께 할 다른 팀들도 섭외하고, 예매도 받고, 예매자들 연락도 돌리고..


   즐겁지만 신경써야 할 일도 많고 힘이 몇 배로 드는 일인데, 이날 공연은 기획사가 그들이 정한 주제에 맟춰 우리를 섭외한 자리였다. 그간 기획부터 공연까지 다 신경써야 했던 입장에서 새로운 경험이고, 약간 기분이 우쭐해지기도 했던.



카페 OOO


   ‘날밤까는 카페’ 공연은 시작시각이 12시였다. 공연 후 이야기콘서트 시간이 있었고, 이후에는 계속되는 수다시간.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처럼 우리도 6시까지는 일을 하고 공연을 하는 입장이었으니 시간 여유가 있는 것이 좋았다.


   공연의 주제와 팀을 보고 찾아온 관객들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행사 기획과 진행은 따로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공연만 하면 되니 참 좋구나.’ 어쩌면 당연한 과정을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우리는 ‘열심히 해서 이렇게 대우(?)받을 수 있는 위치의 음악가가 되자’ 하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은 즐겁게 흘렀고, 이야기콘서트 역시 재치 있는 사회자 덕분에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윽고 찾아온 ‘계속되는 수다’시간. 공연한 밴드 멤버들과 관객들이 자유롭게 카페에 남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공연과 이야기콘서트 진행 중 이따금씩 내 시선이 머물렀던 여성 관객분께서 나와 대각선이 되는 자리에 앉았다.



   공연을 할 때 느낀 것 하나가 있는데, 공연을 하면 그 사람의 매력이 훨씬 배가되어 보이는 것 같다(공연을 하는 뮤지션 그 자체가 이유인가?).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볼품없는 사람이지만, 공연장이나 행사 중 공연을 하거나 뒤풀이를 할 때 간혹 그런 것들을 느낄 때가 있었다.


   수다 시간 중에 나와 대각선에 앉아있던 그분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대화를 많이 나눴던 건 아니지만 무리 속에서 내가 하는 말들에 유난히 긍정적으로 반응해주고, 시선을 보내고,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이제 가야될 것 같은데, 너무 늦어서. 5시가 다 됐네”

   “아, 그러네. 음... 가야지.”


   멤버들이 이제 그만 갈 것을 내게 종용했다. 무슨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난 조금 더 있다 갈게’ 라고 왜 말을 못했을까? 매력적인 분과 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날의 기억을 적어놓은 일기에 이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그날을 유난히 아쉬워 했었나보다. 하긴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그 사람을 어디 가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살짝 생각이 나려고도 하고. ㅎㅎㅎ



# 사진 출처 : https://yuspace.tistory.com (농약삼킨 유기농여자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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