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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20. 2020

모여서 함께 공부하는 곳?

이사일기(2010-2020) - 2. 염리동 (2010.08)

고민하던 일 해결


   염리동 살 때는 유난히 음악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음반발매는 우리가 서울에 올라온 이유이자 염원이었고, 디지털 싱글의 형태였지만 유일한 앨범을 발매한 것이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다. 노래와 악기연주 외 음원작업은 앞서 말한 H형이 거의 도맡아서 해주었고,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었다.


   그 중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비용을 지불하고 해결해야 할 작업이 있었다. 우리 중에는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음악도 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 작업도 하는 그녀를 알게 된 건 아마도 어떤 공연에서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클럽이나 다양한 자리에서 함께 공연했던 이들과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꽤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는데, 우리에게도 그런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녀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이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우리는 가을쯤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계획이었고, ‘그 작업’은 누구에게 맡길까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녀를 포함한 무리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언급했었나보다. 그녀는 우리에게 흔쾌히 ‘내가 해주겠노라’고 말했다. 자신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므로 작업비는 받지 않겠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하나의 일이 해결된 듯하여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우리는 그녀와 연락하며 앨범의 컨셉과 우리의 의도 등을 설명했고, 며칠 걸리지 않아 그녀는 작업물을 보내왔다. 앨범 컨셉과는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우린 매우 만족했고, 좋아했다. 그녀에게 큰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앨범이 완성된 후에도 우리 싱글이 발매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어느 가을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앨범이 나오는데 그 전에 가을이 다 가겠다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중 어느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식사 한번 같이 하실래요?”

   “그렇잖아도 감사해서 저희가 식사 대접 한 번 하려고 했어요. 멤버들하고 같이 한 번 보시죠~”

   “아, 아니요. 그냥 자양씨한테만 할 이야기가 있어요.”


   음.. 왜일까? 말하는 사람 속도 모르고 나는 좋다며 만날 약속을 잡았다. 사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이유는 몰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약속날짜가 다가오면서 괜히 기대도 되고(멤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신촌의 어느 골목


   우린 신촌의 음식점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마도 창서초등학교 근처 보쌈집으로 기억하고 있다(2020년 현재도 있는 집).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궁금...


   식사를 하며 나는 연신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본인의 실전 연습을 위해서라지만 작업비 한 푼 받지 않고 작업을 해주다니, 흔치 않은 일.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저희 카페 가서 좀 더 이야기 할까요?”

   “아, 카페 말고 같이 갈데가 있어요.”

   “아, 그래요? 어딘데요?

   “사람들 같이 공부하는 곳인데, 자양씨도 와서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같이 가봐요.”

   “네. 그래요.”


   같이 공부하는 곳이라. 궁금했지만 이상한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이상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유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창서초등학교를 지나 어딘가에서 좌회전하고 전통술집 건너편, 계단을 올라 건물의 맨 위층으로 갔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여기 다 같이 공부하는 곳이에요.”


   특이한 분위기, 뭐하는 곳일까? 그녀가 나를 방으로 인도한다. 방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더 있다.


   여기 앉아 말씀 좀 들어보시라... 뭔가 이상한 말들을 한다. 조상에 대한 이야기, 너는 여기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 등.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상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누가 들어도 예상되는 상황. 하지만 나로 하여금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건 옆에 앉아있던 그녀의 존재 때문이었다. 잠시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아, 도대체 뭐지? 도를 아십니까 같은 건가? 그녀가? 대체 왜? 무슨 상황인거지?’


   그 사람을 믿어보려는 생각을 조금 더 했다면 나는 더 이상한 상황에 내몰렸을지도 모르겠다. 제사를 지내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끝까지 ‘저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하며 온건하게 거절하며 어렵사리 그들을 뿌리치고 빠져나왔다.


   웃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주위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큰 멘붕에 빠졌다가 겨우 멘탈을 붙잡았다.


   이후에도 나는 몇 번이나 그 일을 생각했다. 한참동안 믿을 수 없고 현실이 아닌 상황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의 작업이 포함된 우리의 디지털 싱글은 발매되었고, 지인들은 우리 앨범 중 그녀의 작업부분이 좋다고 말해주는 이가 많았다..


   속도 모르고.. 아니 정말 이 일은 어떻게 해도 여전히 설명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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