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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21. 2020

세 가지 거짓말

이사일기(2010-2020) - 2. 염리동 (2010.08)

결국, 문제는 돈


   이전 글에서 피터팬 카페의 3대 거짓말을 소개한 바 있다. -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1층 같은 반지하, 집주인 정말 좋으시고.’ - 모두에게 통용되는 국룰은 아니고, 전국 3대 짬뽕처럼 누군가 인터넷에 올려 전해진 것도 아니요, 그냥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하하. 하지만 피터팬 카페를 이용해 집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걸? 아님 말고.


   2010년 8월, 염리동 한서초등학교 옆 이 집을 소개하는 글에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1층에 투룸이라는 환경과 저렴한 임대료에 매료된 두 명의 아니 한 남자의 확증편향이 있었을 뿐.


   하지만, 꼭 실패라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하드코어한 검은 무리들과 싸워야 했던 8월 한 달이 지나고 우린 꽤나 안락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으니. 하루에 오직 정오부터 3시까지만 집안을 비추던 그야말로 한 줄기의 햇빛. 그것만 빼고.


   좋은 가을날을 즐기고, 디지털 싱글 준비에 몰두하고, 각자의 일자리에서 혹여나 모를 연장계약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동안 두 번의 계절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자리했다. 두 계절을 보내며 추가로 얻은 집 관련 지식이라면, 사방이 막혀있거나 반지하인 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는 것. 땡볕과 찬바람을 맞을 가능성이 별로 없어 옥탑의 경우와는 반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각설하고, 그렇게 장점을 억지로 만들어낸들, 2011년의 여름을 또 이곳에서 보낼 자신은 없었다. 우리 둘은 여름이 오기 전에 이사하기로 먼저 합의하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을 알아보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역시나 피터팬 카페에서.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카페가 무슨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냥 매달렸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언뜻 좋아보여도 다들 비슷한 금액인 이유는 있었다. 어딘가는 문제가 있었지.


   “결국 문제는 돈이여.”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냐...”


세 가지 거짓말


   내 서울생활 첫 번째 챕터에서 최악의 경험을 제공했던 용강동집이 바로 이 곳 염리동집의 다음 행선지였는데, 그곳의 이야기는 염리동집 챕터를 끝낸 후 자세하게 하도록 하고, 용강동집 가계약을 하고 돌아온 후 우린 이 집을 보러 온 이에게 세 가지 거짓말을 하고 말았는데...


   용강동집 가계약을 마치고 이곳 염리동집을 피터팬 카페에 올렸다. 조금 더 솔직하게 - ‘이대역 도보 7~8분, 1층 투룸’으로 - 올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최대한 밝게 찍은 사진과, 저렴한 조건 그대로 올리니 바로 연락이 왔다. 집을 보러 온다고 했던 여자분을 기다리며, ‘쉽게 계약이 끝나서 이 집을 빨리 그분에게 넘겨버렸으면..’


   “오, 진짜 괜찮은데?”


   그날 저녁에 집을 보러온,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던 그 여성은 동행한 남성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옆에 있던 남성분은 여성분에게 동의의 제스처를 보내면서도 우리를 경계하면서 집에 대해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


   ‘최대한 문제없게 부드럽게 넘어가야 한다.’


   “집에 볕은 잘 들어와요? 밤에 와서 잘 알 수가 없네.”

   “네, 뭐 완전 쨍하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어도 적당히 밝고 괜찮아요.” (시간이 가는 걸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만)

   “벌레는 없나요?”

   “1층이어서 벌레는 뭐 작은 개미 같은 거 어쩌다 한 마리 있는 것 같긴 한데,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여름에 경험하게 될 하드코어한 검은 무리들이 있지만요)

   “괜찮은데 이사는 왜 가시는 거예요?”

   “네 저희도 계속 살고 싶은데 둘 다 이직을 하게 돼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도보 30 거리의 집으로 이사갑니다)


   쿨하게 가계약금을 걸고 돌아간 그분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 뿐.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을 똑같이 겪으실 생각을 하면 죄책감이 말려왔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 걱정을 할만큼 우리도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길 바랄 뿐.



   p.s.) 우리의 서울살이 두 번째 집을 포함한 한서초등학교 후문 일대의 건물들은 현재 다 헐려있는 상태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던 총 열 곳의 집 중 헐렸거나 재건축되어 다른 건물로 바뀐 곳이 두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이 염리동 집(다른 한 곳은 이 다음 집인 용강동 집).


   오래된 집이 많던 염리동 일대에는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했고,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이사한 후로는 그 일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살던 집이 지도상에서 없어지니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사진 : 2010년 10월 염리동의 계단 앞에서, 게으른오후 멤버들(나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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