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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8. 2020

어느 가을밤

이사일기(2010-2020) - 2. 염리동 (2010.08)

어느 가을밤


   내가, 우리 게으른오후가 주거로 인한 이 모든 어려움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서울로 올라오게 된 이유는? 바로 우리 음악으로 공연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음반을 내기 위해서였다. 집구하기, 생활기반 잡기, 일구하기 등의 과정 때문에 그 열망이 다소 퇴색된 감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음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2010년 여름 디지털 싱글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우리의 작업을 도와준 건 H형이었다. 형은 정규 앨범도 냈고, 이런저런 활동도 많이 하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우러러보는 선배이자 진짜 뮤지션. 남산 올라가는 길에 형의 집 겸 작업실이 있었다. 우리의 연습과 녹음은 그곳에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H형이 해준 역할은 정말 지대했다.


   돌아보면 내겐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직업의식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볼 뿐, 그를 위한 전문성과 직업의식 없이 음악이라는 것에 접근했었다.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과, 사람들이 듣기 좋은 수준으로 음원이 제작되어 나오는 것은 다양한 기술적 수준과 요구되는 능력 면에서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내겐 그런 의식이 부족했다. H형은 그런 면에서 내게 많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고, 프로듀서의 역할이었지만 우리 디지털 싱글 작업을 거의 해주다시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0년 11월 우리 디지털 싱글 ‘어느 가을밤’은 정식 발표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밴드 OO의 리듬파트 멤버들과 풀밴드셋으로 공연도 하고, 친분 있는 팀들이 게스트로 몇 차례 도와주기도 했고.


   https://m2.melon.com/album/music.htm?albumId=1060255


   디지털 싱글 발매 후에도 1~2년 간은 계속 공연도 했고 정규앨범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이후 여성멤버가 전주로 리턴하고 함께 살던 남성멤버도 경기도권에 취직하게 되면서 우리 활동은 한 시절 열망했던 일에 대한 기억으로 자연스럽게 일단락되었다.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내게 있었고.


   하지만 과정 중에 알게 된 사람들, 그리고 함께 연대했던 두리반과 같은 이슈들은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계속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이곳에 더 많다고 생각해서 나는 여전히 서울에 머무르고 있다. 덕분에 열악한 주거조건이 계속되고 있지만, 좋은 집보다는 접근할 수 있는 문화적인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여곡절 끝에 나온 우리 디지털 싱글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거나,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음원 판매로 인한 정산 역시 아직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발매를 위해 들어간 비용이나 다 회수되었을지..).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그렇듯, 디지털 싱글을 발매함으로써 우리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같은 일상과 같은 삶이 반복될 뿐.


  2010년 가을 염리동집에서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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