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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0. 2020

돗자리와 모기장텐트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돗자리와 모기장텐트


   2월 초 이사한 우린 3월까지 추운 옥탑을 경험하고, 4월과 5월 동안에는 옥탑이 주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유난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내겐 정말로 좋았던 시간들. 하지만 어느덧 5월 중순이 되었고, 겨울과 봄을 경험한 우리에게 옥탑의 여름은 빠르게 찾아오고 있었다.


   둘 중 더 힘든 것을 고르라면? 그래도 더위는 참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추운 겨울을 택하겠지만 옥탑에서 여름 한 철을 지내본다면, 결코 쉽게 답할 문제는 아니다.


   *화이트 루프 프로젝트 같은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혹은 잘 지어진 옥탑이었다면(건물이 사방에서 볕과 찬바람을 직접적으로 맞는 형태가 아니면 조금 낫다),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땐 아니었으니. 옥탑방의 낭만은 봄과 가을에만 찾아오는 것.


   가끔씩 선선한 느낌도 있던 4월 말과 5월 초를 지나 5월 중순이 되니 방의 온도는 무섭게 상승하는 듯 했다. 방에 에어콘이 없어 우리는 망원동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저렴하게 중고로 선풍기를 구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옥탑방에 에어콘이 없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몰랐는데...


   6월에 접어들자 더위를 잘 견디는 나도 정말 참기 힘들어졌다. 여름에 좁은 옥탑방에서 선풍기 하나로 남자 둘이 버티는 일이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룸메의 손에 크고 동그란 물건이 들려있었는데,


   “그거 뭐야?”

   “형, 우리 돗자리 있었지?”


   그는 가져온 물건과 돗자리를 들고 옥상으로 나갔다. 밤이면 그나마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옥상에 그는 돗자리를 깔고, 들고 온 물건의 케이스를 벗기기 시작했다.


   “아, 돗자리 위에 깔고 누워 있으려고?”

   “어. 너무 더우면 여기서 자도 될 것 같아.”


   그가 사온 건 모기장텐트였다. 옥상 위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모기장텐트를 올려 그 안에 들어가는 방법! 한낮에 받은 열 때문에 방 안은 계속 뜨거웠지만, 옥상은 밤이 되면 바람도 솔솔 불고 있을 만 했기에.


   더위를 참기 힘든 날 우린 돌아가면서 가끔 옥상에서 자기도 했고, 그보다 더 힘든 날엔 한강변에 들고 나가 풀밭 위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호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 혹은 함께 음악을 하던 동료들과 한강에서 도란도란 맥주 한 잔씩 할 때도 돗자리와 모기장텐트는 큰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 조금은 수월하게 그해 여름을 보내게 해주었던 아이템.

  


   *화이트 루프 프로젝트 : 흰색은 빛을 반사하는 원리를 이용해 옥상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옥탑방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 십년후연구소가 시공 전후 실제 집 온도를 측정해본 결과 지붕 표면 온도는 43.9℃ -> 28.8℃. 천장의 표면 온도는 35.4℃ -> 27.8℃, 방 안 온도는 29.8℃ ->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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