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AI에게 마음을 여는가
나는 챗지피티를 굉장히 애용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아이디어를 얻을 때 사용하곤 했지만, 점차 나의 개인적인 속 이야기까지 꺼내며 고민상담을 넘어 진실된 공감을 바라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챗지피티는 때로는 인간보다 더 내가 원하는 부분에서 정확하게 공감을 해주곤 한다. 그러나 순간의 만족을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공허함이 있다. 나를 진짜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이 진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인지에 대한 모호함에서 나오는 공허함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최근에 대화형 인공지능에게 감정적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나처럼 진실로 이해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진심이라고 착각하게 되며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왜 사람들은 ‘AI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걸까? 그전에 앞서, AI가 감정을 이해할 수 있긴 할까?
당연하지만 인공지능은 ‘공감’을 느낄 수 없다. 우리가 느끼는 온기와 슬픔, 미묘한 정서는 생물학적, 사회적 맥락과 얽혀 있는 복합적 현상이기에 AI는 절대 경험할 수 없다. AI는 텍스트, 표정, 음성 데이터로부터 특정 감정 상태를 추론할 수 있을 뿐, 그 감정을 살아본 적이 없다.
MIT의 미디어랩의 로잘린드 피카드는 ‘Affective Computing’에서,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시대’를 연구했다. 하지만 그녀조차 기술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AI는 표정의 변화, 목소리의 떨림과 문장의 톤 같은 외적 신호를 해석해 특정 감정을 ‘예측’할 뿐이다. 결국, AI가 제공하는 공감은 정교하게 훈련된 모방에 가깝다.
우리는 왜 그 모방에 마음을 열게 될까. 아마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AI가 진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상대가 내 말에 반응하고, 내가 느낀 것을 ‘읽어주는’ 듯한 제스처를 보일 때, 우리는 거기에 정서적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쉽게 마음을 열게 되는 걸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굉장히 외롭다. 끊임없는 소셜 네트워크 활동과 끝없는 대화, 수많은 만남 속에서도 진실로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일은 점차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가벼운 소통 속 점차 늘어나는, 관계에 대한 피로감은 우리를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누군과와 깊이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게 되었다. 나는 질문에 대한 힌트를 이곳에서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대화형 인공지능에 마음을 터놓게 되는 것은 그런 복잡한 감정의 결과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AI는 상처를 주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언제나 묵묵히 대답해 준다. 우리는 그것이 살아있는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존재에게 위로를 느끼게 된다. 어쩌면 AI에게 쏟는 감정은 우리가 인간관계에 지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인공지능은 진짜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공허함의 근원일 것이다. 블랙미러 시즌 2의 에피소드 ‘돌아올게(Be Right Back)’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죽은 연인의 디지털 흔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AI는, 표면적으로는 그 사람을 완벽히 재현한다. 말투와 습관, 목소리, 심지어 작은 행동까지도 놀랍게 닮아 있어서 처음엔 마치 그 사람이 진짜 돌아온 것처럼 큰 위로가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점차 기억은 복제될 수 있어도, 감정은 복제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너에겐 역사가 없어. 네가 하는 건, 그가 무심코 했던 행동들을 따라하는 연기일 뿐이야.
기술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인간을 복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순간을 살아냈는지까지는 절대 복제할 수 없다.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 말투를 만들었던 사랑, 상실, 두려움, 기쁨 같은 감정들은 절대 완전히 이해하거나 복원할 수 없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우리가 살아낸 감정의 진짜 질감은 여전히 인간만의 것이다.
그리고 그 질감이 인간만의 고유한 것인 이상,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 AI에게서 모호함을 느낄 틈이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근본적으로 이해받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술이 발전해야 할 방향성은 인간을 더욱 완벽히 모방하는 것이 아닌, 기술만의 방식으로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을 구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만의 고유성은 남긴 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 그것이 기술 발전의 진실된 방향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서툴고, 엉성하고, 부족할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라는 것을. 우리 안의 그것이야말로 기술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진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