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색에 빠지기 전에

1. 어쩔 수 없이 들여다봐야 하는 날들.

by Jay

경박함을 사랑한다. 그것이 부끄러운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지탱하는 근거가 되고는 해서.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그 옹졸함을 내려놓고 어딘가를 들여다봐야 할 때는 이 문장을 반드시 언급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관례적으로라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이, 사색에 잠기기 시작할 때의 내 의례이다.


"Il n'y a qu'un problème philosophique vraiment sérieux : c'est le suicide."

참으로 진지한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Juger que la vie vaut ou ne vaut pas la peine d'être vécue, c'est répondre à la question fondamentale de la philosophie."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 알베르. 『시지프 신화』. 김화영 역. 민음사, 1997.


이 무게감을 굳이 직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마음과 별개로 이 문장에 늘 깊게 공감한다.

시대는 우리들에게 얕고 잦은 사색을 권장한다. 그리고 기획된 폭에서 정리된 결론을 가치로 삼기를 원한다. 정작 삶을 살 가치가 있는지를 답하는 것을 뒤로하고.


'가끔은 쉬어도 괜찮아.'

'고민된다면 일단 시작하라.'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에 끼워 맞춰도 얼추 맞아떨어지는 그것들로써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가 회복되기를 의도한다.

『파랑새』를 자주 끌어와서,


"보세요,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가까운 곳에 있어요."


라고 속삭인다. 그다지 반박할 필요가 없는 이 말에 나는 경계한다. 일상의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은 애써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내게 가까이 있는 행복이란 한 번씩 돌이켜 되찾는 것에 의미가 있고, 잘 지켜내고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충분하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변에 존재하는 '소소한 행복'만이 유일하다 믿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행복은 다양하고 그중에서는 아득하게 먼 곳에서 내가 찾아주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있다. 천천히 나아가고 때로는 무너져서 다시 방황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쫓고 있다.


삶을 이어나가려는 한 사람으로서, 본질적으로 '삶이 의미 있는지'를 자문해 본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물론 의미가 있다.'라고 씩씩하게 답하고 싶다. 그 근거로 행복이라는 충분조건을 내세워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가끔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임을 잘 알면서도 깊은 사색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