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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Feb 08. 2020

모르니까 쓴다

《강원국의 글쓰기》리뷰 1

강원국,《강원국의 글쓰기》, 메디치미디어(2018)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배우고 느낀 점을 돌아봤습니다.




써가며 알게 된다. 알아서 쓰는 게 아니다. 모르니까 쓰는 것이다. (p14)

소재가 없어 못 쓴다고 푸념할 일이 아니다. 경험이 없다고 핑계 댈 일이 아니다. 보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한다. (p55)


아는 것을 쓰는 건 쉽다. 문제는 아는 게 얼마 안 된다는 점이다. 아는 것에만 의존하다 보면 글감이 금방 떨어진다. 독서든 공부든 뭐라도 해서 내공을 늘려야 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평소와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르니까 알려고 쓴다는 작가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 소재가 없는 건 내 탓이다.


글을 읽는 사람은 글쓴이가 얼마나 잘 쓰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관심 없다. 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 그 얘기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집중하는 게 맞다. (p19)

글쓰기 전에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무엇에 관해 쓰지?' '왜 쓰지?' '어떻게 쓰지?' (p65)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노트북 앞에 앉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자체가 모호할 때가 있다. 말하는 사람이 모호하게 말하는데 듣는 사람이 명확하게 알아들을 리 없다. 정확히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도 그렇게 전달하기 어려운 게 글이다. 항상 타자를 두드리기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고, 그 말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 따져보자. 차를 타고 엑셀을 밟기 전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부터 설정하는 것처럼.


글을 써야 내 생각, 내 감정이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깨달음이 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싶게 만든다. (p32)

결국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는 것과 내 감정 상태를 잘 아는 것. (p71)

내 감정을 확실히 이해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글을 쓸수록 배운다. 내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왜 나 스스로가 명확히 알지 못하는 걸까. 이게 어려운 만큼 글쓰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안 쓰면 안 된다. 안 쓰면 결국 모르고 끝난다. 내 생각과 감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 속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까. 글은 독자를 위해서도 쓰지만 작가 자신을 위해서도 쓰는 것이란 말이 이제 이해 간다.


매일 쓰니까 어렵지 않다. 가끔 쓰는 게 어렵다. 매일 쓰니까 글쓰기가 익숙하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매일 쓰면 반기기까진 않더라도 기피하지도 않는다. 기피하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다. (p38)

2020년에는 매일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매일 글을 1편씩 발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만 몇 줄이라도 쓰기로 했다. 강원국 작가의 말처럼 1주일에 한 번 쓰는 것보다 매일 쓰는 게 신기하게 더 쉽더라. 1주일에 한 번은 의무로 쓰는 거다. 그날이 다가오는 게 부담이다. 글을 써본지도 며칠 지나서 감도 잃는다. 오히려 매일 쓰면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술술 써진다. 아직 습관화가 되진 않았지만 관성은 생겼다. 글을 안 쓰면 이상하다. 일상에서 글감 생각이 떠오르는 일도 잦아졌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면 운동도 매일 해야 하나 보다. 주 3회 하기로 결심하고 제대로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매일 하기에 한 번 도전해볼까.


한 가지 실험 사례가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과 너저분한 방에 실험 대상자를 넣어놓고 탁구공의 쓰임새를 써보라고 했다. 지저분한 방에 있던 사람들이 더 창의적으로 사고했다. 무질서한 방이 자유로운 상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단, 논리적인 사고에는 정돈된 환경이 좋다고 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창의력이 필요한 글은 무질서한 환경에서, 논리적인 글은 질서 정연한 여건에서 쓰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p53)

이런 사회과학 연구를 개인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떤 환경에서 글쓰기를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중요하다. 노트북 스크린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장소만 바뀌어도 글이 써지는 경험을 한다. 개인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환경은 싫어하기 때문에 집을 일부러 어지를 생각은 없다. 카페 정도의 무질서함이 좋다. 스타벅스에 가면 그렇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문제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엔 그런 카페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스타벅스가 미국 회사인데 무슨 소리인지 궁금할 것이다. 한국 스타벅스와는 달리 미국 스타벅스엔 의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 생각보다 매장 크기도 서울에 비해 작다. 수십 명이 노트북을 켜놓고 업무나 공부를 하는 장면을 볼 정도의 규모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럴 곳이 없어서 아쉽다. 이 점에서 카페 문화는 한국이 최고다.


독서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다. 책을 읽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된다. 남의 생각을 빌려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게 독서다. (p60)

독서에 회의를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어차피 읽어봐야 다 까먹는 게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실과 정보는 까먹는다. 그런데 변한 생각은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더라. 몇 년 전 내가 하던 생각과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은 너무 다르다. 상당 부분은 독서 때문이다. 강원국 작가의 말처럼 남의 생각을 통해서 내 생각을 만들어가는 게 독서라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질문하는 훈련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대답하는 데에 익숙하다.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답하는 것은 '지식'이다. 반면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이것은 무엇이냐'라고 묻고 답하는 것이다. 글을 쓰려면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문제를 푸는 사람은 읽는다. 문제를 내는 사람은 묻고 쓴다. (p65)

학교에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도, 질문하는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읽기만 했고 답하기만 했다. 구글링 하면 다 얻을 수 있는 지식만 머리에 집어넣었다. 이 점이 요즘 특히 더 아쉽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미국 친구들의 질문에 많이 놀란다. 질문 내용에 놀라고, 질문하는 태도에 놀라고, 질문하는 빈도에 놀란다. 반면 나는 질문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궁금한 거 없나요'하고 누가 물으면 열심히 궁금한 걸 짜내려고 한다. 그래도 잘 안 나온다. 그렇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질문하면 이상한 학생으로 간주되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글쓰기도 자연스럽게 되지 않고 힘내 쥐어 짜낸다. 그나마 짜내면 나와서 다행이다. 쓰다 보면, 질문하다 보면 언젠가 수월해질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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