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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r 07. 2020

글로 쓴 기억만 남는다

《강원국의 글쓰기》리뷰 2

강원국,《강원국의 글쓰기》, 메디치미디어(2018)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배우고 느낀 점을 돌아봤습니다.





독자는 불편한 글을 좋아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편안한 글에서는 아무런 감흥이나 자극을 얻지 못한다. 독자가 좋아하는 글은 글쓴이가 자신을 향해 독립선언을 하고 저항하기 시작한 글, 한마디로 대드는 글이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글이다. 그런 글은 삐딱하다. 독자와 불화하는 글이다. 시끄러움을 즐긴다. 독자의 외면, 독자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부하고 저항한다. 사춘기 소년처럼. (p74)

'독자는 불편한 글을 좋아한다'에서 '좋아한다'의 의미는 like가 아니라 be interested in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생각을 담은 글을 본능적으로 더 '좋아한다.' 하지만 자기 생각과 다른 삐딱한 글이 더 '흥미롭다.' 댓글을 달고 싶게 만든다. 대드는 글은 양날의 검 같아서 더 많은 독자들이 찾지만 그만큼 비난도 많이 받는다. 글을 쓰다 보면 이런 불화에 움츠러들 때도 있지만, 계속 내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봉준호 감독이 시상 소감에서 말한 것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니까.


많은 사람이 내 생각, 의견, 주장, 즉 주관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굳이 주관을 많이 쓸 필요는 없다. 객관적 사실만 잘 써줘도 독자는 주관까지 읽어낸다. 어떤 사실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글 쓴 사람의 주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p105)

내가 고르는 주제 자체가 내 주관을 반영한다는 말이 흥미롭다. 그렇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가, 어떻게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만큼 중요하다. 당연히 내 구독자들은 내가 글을 잘 써주길 바라겠지만, 그에 앞서 내가 특정 주제에 대해 더 써주길 원할 것이다. 그래서 구독을 하는 거니까. 문제는 글을 자주 쓸수록 무엇을 쓸지 정하는 게 곤욕이라는 점이다. 내공이 부족해서다.


우선, 쓸거리가 있어서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때부터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이 책과 연결된다. 독서를 해도, TV를 봐도, 친구와 만나 얘기해도 모든 것이 글감이고 책의 내용이 된다. 일상이 책으로 재편집돼서 새롭게 다가온다. (p194)

부족한 내공은 다른 게 아니라 일상을 재편집하는 능력이다. 누구나 쓸 거리는 있다.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매일매일이 비슷해 보이는 건, 진짜 다 비슷비슷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다른 부분을 흥미롭게 재편집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쓸거리가 있어서 쓰는 게 아니고, 대단한 스토리가 있어서 글 쓰는 게 아니다. 쓰려고 해야 쓸거리가 생기고, 써야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대단한 스토리로 재구성될 수 있다.


인생에서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글로 쓴 추억만 남는다. (p144)

여행 가면 사진만 남는다는 말이 난 왠지 싫다. 오히려 여행에서 일부러 사진을 많이 안 찍는 편이다. 사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일부 감정을 담아낸다. 생각을 저장하진 않는다. 글은 추억뿐 아니라 생각을 남긴다. 내 브런치만 보더라도 1년 전, 2년 전 쓴 글들을 보면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때론 내 속 같기도 하지만, 나란 사람도 성장하고 생각도 바뀌기 때문에 남의 머릿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내가 했던 생각들은 사라진 연기 같다. 미루어 짐작해 보지만 실체는 가고 없다. 기억이란 것도 뇌에서 재구성되면서 변해간다. 글은 그대로 있다. 글로 쓴 생각만 남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작품을 쓸 때 자동차의 모델명까지 구체적으로 쓴다. 추상적으로 쓰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p163)

내 글쓰기의 가장 큰 약점이다. 난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렇게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별로 없어서다. 숲을 보고 숲을 그리는 데만 익숙한 나다. 구체적으로 쓰려면 우선 어휘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머리에 있는 그림을 활자로 옮겨 놓으려면 딱 맞는 단어를 찾아 적절히 표현해야 하는 데 이게 참 어렵다. 이게 가능해도 또 너무 구체적으로 글을 쓰면 속도감이 떨어지고 지루해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 브런치 글들을 보다 보면 섬세한 표현력에 놀라는 경우도 있고, 너무 상세한 묘사 때문에 지루해서 스크롤을 쭉 내려버릴 때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좋다 할 순 없겠고, 중심을 잡으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게 정도가 아닐까 싶다.


글 쓰는 사람은 작곡가인 동시에 작곡가여야 한다. (p164)

이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도 강조되는 부분이다. 글도 결국 말하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속으로 또는 입 밖으로 읽을 때 마치 소리말로 듣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편하게 읽힌다. 글의 기본은 말을 그대로 활자에 옮겨놓는 거다. 나도 글 쓸 때 이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대한 문어체로 안 쓰려고 노력한다. 노래 가사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을 항상 쓰고 싶다.


나는 글을 두 단계로 나눠 쓴다. 1단계로 쓰고, 2단계로 고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쓰면서 고친다. 그래서 글쓰기가 힘들다. 쓰면서 고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머리속에 있는 걸 쥐어짜 꺼내기도 바쁜데, 그것을 고치기까지 하다니. 일단은 쓰고 나서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찾아볼 것도 많고 확인할 것도 많다. 여기에 공을 들이자. (p186)

글 고치는 건 글 쓰는 것보다 두 배 힘들다. 어느 정도 쓰고 나면 그만 발행 버튼 누르고 쉬고 싶다. 이런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서 글을 고치는 게 어렵다. 항상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마무리가 가장 힘든 것도 사실이다.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글쓰기 실력이 많이 는다는 건 모든 글쓰기 책에서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법칙이다. 이 고치기에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서 내 글쓰기가 늘지 않는 게 확실하다. 그래도 일단은 잘 쓰는 건 둘째치고 많이 쓰고 싶다.


제목만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되, 제목만으로는 궁금증이 다 풀리지 않아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p203)

조회수 때문에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제목이 조회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특정 키워드를 넣으면 조회수가 폭발하곤 하는데, 이건 의도치 않은 트래픽을 많이 유발해서 오히려 독이 된다(내 글이 다음 메인에 좀 안 뜨면 좋겠다). 아무튼 글의 제목은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다. 흥미를 끌면서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독자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낚시는 절대 피해야 한다.


재미는 필요조건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에서 나온다. 그 대신 지식이나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로 접근해야 한다. 효용은 충분조건이다. '어떻게, 왜'로 얻어갈 거리를 줘야 한다. '어떻게'로 노하우를, '왜'로 깨우침과 지적 포만감을 안겨줘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얻어가는 게 없으면 화를 낸다. (p212)

스토리가 없이 팩트만 나열한 글은 블로그 글로 보기 어렵다. 기사나 논문에 가깝다. 별로 재미가 없다. 재미와 효용을 둘 다 주는 글이 최고다. 둘 다 담기 어려우면 우선시되는 건 재미다. 효용만 있으면 어차피 아무도 안 읽어서 아무도 그 효용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효용 없이 재미만 있어도 시간 낭비는 아니니 그게 낫다. 대학교 강의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그랬다. "모든 게 심드렁하고 그날이 그날 같고 궁금한 게 없으면 이미 죽은 것이다." (p240)

나는 오늘도 아는 것이 재미있어 책을 읽는다.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생각난 것을 메모한다. 그리고 강의할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된 걸 말한다. 일상이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다. (p243)

아기가 태어나고 하루 중 글쓰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극히 줄었다. 그래도 가끔 재밌는 일상 속에서 '아, 오늘은 이걸 한 번 써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글쓰기를 위해서 괜히 특정 주제에 대해 검색하고 공부해 보기도 한다. 재밌는 일을 글로 쓰고, 또 글을 쓰기 위해 재미를 추구하는 선순환이 글쓰기의 가장 큰 효용인 것 같다. 모든 게 심드렁하고 그날이 그날 같고 글 쓰고 싶은 게 더 이상 없으면 이미 죽은 것일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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