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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Apr 26. 2020

졸지에 온라인 인턴쉽


COVID-19 팬데믹 때문에 미국의 대다수 여름 인턴쉽 프로그램들이 재택근무로 돌아섰다. 아예 여름 인턴쉽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일 시작도 전에 인턴들을 잘라버린 회사들도 꽤 있다. 구직 전선에 나와있는 MBA 학생을 포함한 모든 대학 및 대학원생들에게 고난의 시기다. 특히 취업 사관학교인 MBA 학생들에게 1학년이 끝난 뒤 진행하는 10-12주 간의 인턴쉽은 자기 적성을 파악하고 잠재적인 고용주와의 합을 맞춰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2년의 학업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나 같은 국제학생들에겐 처음으로 미국 회사에서 일해 보면서 새 문화를 접하고, 배우고 도전해볼 수 있는 둘도 없는 찬스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런 상황을 알 리 없고, 알아도 상관하지 않을 테지만, 여하튼 내 여름 인턴쉽도 재택근무 형태로 바뀌었다. 잘리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감사하긴 하다.


내가 이번 여름 12주 동안 일하게 될 오토데스크라는 회사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의 주요 산업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엄밀히 말하면 실리콘벨리는 아니고, 더 넓은 의미에서 Bay Area로 불리는 미국의 테크 중심지에 속한다. 워낙 캘리포니아에 대한 환상도 크고 실리콘벨리에서 일하게 될 날을 긴 기간 마음에 그려왔기 때문에 기대가 컸는데, 안타깝게 회사 근처에도 못 가보고 12주 동안 집에서 외롭게 원격 근무하게 된 것이다. 사실 들뜬 마음에 샌프란시스코에 일찍 월세집도 알아보고 이미 계약금까지 지불한 상태였는데, 계약금 다 날리게 생겨 마음이 조금 많이 아팠다(조금만 꾸물거렸어도 돈을 잃지 않아도 됐을 텐데, 자잘한 문제는 최대한 빨리 끝내 놓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후딱 계약금까지 지불하고 났더니 바로 다음 주에 WHO에서 팬데믹 선언을 하고, 미국 대부분 지역이 lockdown을 명령했다).


원래 일하던 사람이 재택근무로 근무형태만 바뀌는 것과 신규 입사자가 회사 근처도 한 번 안 가보고 집에서 원격으로 일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천수만 명이 내심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 측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인턴들을 원격으로 교육하고 근무시켜본 경험이 없는 회사들은 몸도 마음도 많이 분주할 것이다. 업무 특성상 원격으로는 최소한의 결과물도 내기 어려운 일도 있을 것이고, 수백 명에게 원격근무 인프라를 지원해주기 어려운 회사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 다수 회사들은 인턴쉽을 취소하거나 기간을 줄이는 대신, 졸업하고 full-time으로 입사할 수 있는 옵션을 주기로 했다. 놀라운 건 인턴쉽 기간을 줄이고도 원래 계약상 인턴쉽 임금을 그대로 지급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스터카드는 기존 12주 인턴쉽을 4주로 줄여 밀도 높게 진행하기로 결정했는데, 인턴 임금은 12주 치 전액을 애초 약속대로 지불하기로 공지했다(부럽다). 거의 2천만 원의 무노동 임금을 받는 것이다. 마스터카드 외에도 다수 은행, 컨설팅 회사들이 이런 선택들을 하고 있다.


팬데믹이 초래한 글로벌 경기침체 때문에 2학년 때 새로 구직을 하는 게 녹록하진 않을 예정이다. 여름 인턴쉽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졸업 후에 다시 돌아와 달라는 풀타임 오퍼를 받는 게 특히 중요한 이유다. 3일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민을 일시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항상 그렇듯이 실질적인 의미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쇼라는 분석이 많다. 명목은 경기 침체로 미국 시민들이 유례없는 실업을 겪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의 이민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게 당장 없다고 해도 어쨌든 나 같은 외국인 학생/노동자 입장에서 불안한 일이다. 앞으로 어떤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자국민이 10-20%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 이민 노동자들을 반길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앞으로 1–2년 동안은 외국인의 미국 취업이 과거 3-4년만큼 활발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유학 중인 수만 명 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을 잡기도 어렵지 않을까. 한국 경제는 미국보다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말이다.


지금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비록 원격근무더라도 미국 회사에서 처음 근무해 보는 게 기대된다. 귀찮게 지하철/버스 타고 출퇴근하지 않고 편하게 집에서 잠옷바람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기대된다. 그리고 원격근무를 실험해본다는 사실도 기대된다. 회사도 나도, 만약 원격근무가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판명 난다면 향후에도 업무에 상당 부분을 원격으로 해결할 수 있게 업무환경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놀러 가는 것도 더 자유로워질 것이고, 미국 내에서 또는 유럽 등을 여행하면서 업무를 보는 것도 일부 가능해질 수 있다. 이미 팬데믹 전에도 미국 노동자의 20-40%가 원격근무를 병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숫자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이와 반대로 걱정되는 면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미국 회사 문화를 알지도 못하는데 멀리 떨어져서 이메일과 사내 메신저로 소통하면서 서로 오해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는 게 가능할까? 해봐야 알겠지만 분명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또 다른 걱정은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이다. ‘역’ 기러기라고 해야 하나.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바람에 나는 여름에 한국에 방문할 타이밍을 놓쳤다. 아내와 딸아이만 여름을 한국에서 보내게 될 예정이다. 나는 여기 남아 원격으로 열심히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으로 생활비를 보내줘야겠다. 10주 정도 딸아이도 못 보고 기러기 아빠 체험이다. 혼자 하는 유학의 외로움을 너무 잘 알아서 결혼한 뒤에 온 것인데, 과연 혼자 하는 해외 노동은 어떨지, 정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Thought Catalo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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