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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Apr 15. 2020

졸지에 온라인 MBA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온라인 MBA'가 시작된 지 3주가 지났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시작된 이번 학기 온라인 수업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MBA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 환율 기준으로 연간 학비만 8천5백만 원에 달하는 미국 MBA 경험이 온라인으로 한정된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게 손해 보는 일이다(원래 온라인 MBA 프로그램들은 3분의 1 가격이다). 이런 이유로 주요 미국 MBA 프로그램을 이수중인 여러 학생들은 학교 측에 등록금 일부 환불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대학가에서도 같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걸 뉴스로 봤다. 학생들 입장에서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다. 학교 측 입장은 한국과 미국이 비슷하다. 이번 사태가 자기들 잘못도 아닐 분더러 온라인 수업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비용이 많이 들어서 등록금 일부 반환은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절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있다고 대학이나 MBA를 쉽게 때려치울 사람은 없을 거다. 어쨌든 잠깐이면 지나갈 일이라 믿고, 이런 특이한(특별하다고 믿고 싶은) 경험의 장점은 없는지 고민해봤다.


1. 온라인 수업 치고 질이 나쁘지 않다

=> 물론 오프라인 수업에 비하면 질이 떨어진다. 집중하기도 더 어렵다. 그렇지만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이 정도 수업 진행이 가능하다니 다행이다'라고 느낄 정도는 된다. 내가 재학 중인 Darden MBA 프로그램의 특징인 '케이스 방식의 토론 수업'도 온라인상에서 꽤나 그럴듯하게 구현되고 있다. 처음에는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면서 발표를 하는 게 너무 어색했는데, 이것도 금방 적응됐다. 우리가 사용하는 Zoom 화상회의의 연결 안정성도 뛰어나서 수업 중에 끊기는 일은 드물다. 60명 이상이 함께 접속해 실시간으로 토론하는 일이 이 정도로 부드럽게 가능하다는 사실만도 대단하게 느껴진다(Zoom이 가진 여러 사생활 보호, 보안 결점이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2. 시간 낭비가 줄었다

=> 원래 학교가 시골에 위치해 있다 보니 통학시간이 길진 않다. 학교에 차로 왔다 갔다 해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온라인 수업으로 이 30분이 아껴지는 것도 있지만, 그 외 자잘하게 낭비되던 시간들까지 합치면 훨씬 크다. 우선, 수업과 수업 사이에 붕 뜨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데, 학교에서라면 의미 없이 핸드폰을 보고나 커피를 마시던 시간이다. 잔디밭을 걷거나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시간들은 절대 낭비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론 이 시간들까지 덤으로 생겼다. 요즘은 짧은 20분 쉬는 시간이라도 방에서 거실로 나가 딸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통학시간을 아낀 만큼 더 잘 수 있고, 팀 과제를 하더라도 실제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더 효율이 올랐다. 이렇게 많은 개인 시간을 즐길 날이 내가 은퇴하기 전에 또 올까?


3. 몸이 편하다

=> 노트북 카메라에 잡히는 건 내 상체뿐이기 때문에 아래쪽은 잠옷 바지만 입으면 된다. 이게 너무 편하다. 장시간 앉아 있어도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고 수업을 들을 때보다 훨씬 쾌적하다. 20대 초 대학생 시절과는 달리 이곳 MBA 수업 분위기는 좀 더 격식이 있다. 아무도 트레이닝복을 입거나 슬리퍼를 끌고 수업에 오지 않는다. 드레스코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아무도 선 듯 시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학교에는 매일같이 여러 회사 채용담당자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이유도 있다. 혹시 복도에서 내가 가고 싶은 회사의 채용 담당자를 마주쳤을 때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학교는 컨설팅 업계에서 명성이 높고, 30-40%의 학생들이 졸업 후에 컨설팅으로 향하는 학교인 만큼, 뭔가 더 있어 보이는 게 중요하다. 결국 컨설턴트란 게 고객한테 전문가적으로 보임으로써 신뢰를 줘야 하는 위치니까. 아무튼, 요즘은 잠옷바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4. 지출이 줄었다

=> 돈 쓸 일이 줄었다. 돌아다니지 않으니 우선 주유비가 사라졌다. 학교에서 끼니당 10불 정도 하던 점심을 사 먹던 게 없어져서 식비도 아끼고 있다. 스타벅스가서 프라푸치노를 사 먹거나, 가끔 친구들과 외식을 하던 일도 없어져 용돈 나갈 일도 없다. 집에서 하는 온라인 쇼핑이 늘긴 했지만, 90%는 딸아이 물건이라 어차피 줄일 수 없는 비용이었다. 마침 오늘이 리나의 100일인데, 나가지도 못하고 떡 주문도 할 수 없으니 달리 축하해줄 방도가 없다. 집에서 백설기를 구워볼까 하는데 오늘은 수업도 있고 해서 주말로 잠시 미뤄둘 계획이다. 집에서 백설기를 구우면 원재료 값이 2천 원은 되려나. 그래도 월세로 살고 있어서 다달이 나가는 고정비용이 워낙 큰 관계로 월별 총지출로 보면 크게 줄었다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 돈 조금 더 나가더라도 다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왠지 요즘 군대 다시 가는 꿈을 자주 꾼다...


5. 수업에 빠지기 어렵고,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 수업 빠지기는 내 특기 중에 특기였다. 어차피 피곤해서 집중 못 할 상태라면 그냥 안 가는 게 낫다는 핑계로 쭉 살아왔다. 한 가지 제약은 우리 학교가 토론 중심의 수업이라 출결 여부가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실 출결 자체보다는 수업마다 토론에 얼마나 깊이 참여하는지를 보는데, 안 가면 참여도 못하니 그게 그거다.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줄이고자, 빠지기 직전 수업에서는 최대한 발표를 많이 해서 점수를 쌓아둔다. 결국 성적 목표는 평타 치는 거니까. 근데 온라인 수업은 빠지기가 더 어렵다. 요즘 같이 모두가 집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밖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핑계를 댈 수 있단 말인가? 아프다고 하자니 코로나 감염을 의심받을까 봐 못하겠고, 다른 일을 찾아도 집에서 급한일이 있을 리 없다. 오프라인에서는 혹시 내가 없더라도 교수님이 못 알아챌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했었다. 66명 중에 나 하나 없어도 운 좋으면 티가 안 날 수도 있으니. 그런데 온라인 수업은 모두 녹화돼 기록이 남는다. 그래서 수업 빠지는 건 포기했고, 이왕 수업 가는 거 잘 준비해 가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요즘처럼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한 적이 없으니 온라인 수업의 장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Jeffrey Hamilton on Unsplash

블로그: https://www.jaycho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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