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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y 30. 2020

구름 타고 실리콘밸리 출근하기

6월 1일부터 8월 21까지 매일 구름(클라우드) 타고 (내 방으로) 출근하는 실리콘밸리 MBA 인턴 체험기 시작합니다.




내일모레 6월 1일부터 난 실리콘벨리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12주간의 여름 MBA 인턴쉽이다. 회사 이름은 오토데스크(Autodesk)이고, 주력 제품으로 컴퓨터 디자인 소프트웨어인 AutoCAD를 개발/판매하고 있다. 내가 합류하게 된 팀은 세일즈파이낸스팀으로, 기업금융 본부(division) 안에서 영업을 지원하는 파트다. 같은 본부 내 다른 팀으로는 재무회계팀(FP&A), 데이터 사이언스팀, Treasury(현금관리팀?) 등이 있다. 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보다 재무 관련 부서들이 훨씬 세분화되어 있고, 그 규모도 크다. 나도 미국에서 일하는 것과 기업금융 분야 업무를 하는 것 모두 처음이기 때문에 아직 이해가 깊지 않다. 이제 배워나갈 참이다.


안타까운 점은 실제 실리콘밸리에는 발도 못 들여놓고 방구석에서 일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한국 대비 매우 심각해서, 웬만한 회사들은 모두 업무를 임시 중단했거나 재택근무로 대거 전환했다. 우리가 알 만한 주요 기업 중 오늘을 기준으로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는 곳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은 어떻게 다들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지 신기할 다름이다. 최근에 쿠팡 물류센터 등 산발적으로 업무공간에서 코로나 전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출근하는 사람 수를 생각했을 때, 정말 극소수에게만 신규 감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무튼 미국은 상황이 다르고, 나를 포함해 같이 MBA를 하고 있는 친구들 중 90% 이상이 오프라인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12주간 살 집도 구해뒀는데 갑자기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난 약 300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도 날리게 됐다...


비록 당장은 실제로 실리콘밸리 근처에도 가볼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갑자기 회사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인턴쉽 자체가 취소된 친구들도 꽤 있기 때문에, 특히 나 같은 외국인 학생 입장에서는 어디든 뽑아서 일 시켜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하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 보자면, 12주 인턴쉽 기간 동안 나갈 생활비 지출이 극적으로 줄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실리콘벨리 지역의 주거비와 물가는 살인적인데, 월급은 똑같이 받으면서 이곳 버지니아 시골에서 계속 머무르게 됐으니 말이다. 어차피 지금 사는 버지니아 집도 1년 단위 계약이라 나갈 월세였기 때문에 월세도 아끼게 됐다. 원래는 샌프란시스코는 집도 비싸고 시내도 복잡해서, 아내와 이제 5개월 된 딸아이는 한국에 두고 혼자 12주 동안 일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지낼 수 있게 돼 감사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회사 인사팀에서 내가 날린 보증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비록 팬데믹이라 포기한 것도 많지만, 반대로 이렇게 감사할 일도 많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개발자가 아닌 MBA(경영학도)로서, 오프라인이 아닌 내 집 방구석에서 실리콘벨리 기업에 근무하게 된 것도 참 드문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이 12주간의 여정을 상세히 기록에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단해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면 대단해진다고 했다. 스스로 별거 아닌 경험이라도 누군가에겐 흥미롭고 유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남의 글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길 찾기'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또는 그 비슷한 곳에 이미 가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길을 통해 거기로 갔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먼저 가 있는 사람들이 가르쳐줄 수 있다. 물론 그 길이라는 것도 계속 바뀌지만, 아예 지도 없이 가는 것보단 낫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지도가 됐으면 좋겠다. '강원도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울산에서 대학교를 나온 뒤, 중형 증권사에서 일하던 저 사람은 어떻게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까지 가게 됐을까?' 혹시 이런 궁금함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참고할 만한 그런 지도 말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Om Mali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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