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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y 31. 2020

시작은 우연에서부터

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학교 수업이 끝난 뒤였다. MBA 1학년에게 이 즈음은 한창 여름 인턴 포지션에 지원하는 구직 기간이다. 나도 링트인을 통해서 여러 테크 회사들에 지원서를 넣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 반 교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레주메를 고치고 있는데, 친구 Pam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구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는 안부를 묻기 위해서였다. '이런저런 회사에 지원했고, 이런저런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고 하더라',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마지막에 Pam이 Autodesk는 오늘까지 지원 마감인데 지원했느냐고 물었다.


오토데스크? 그게 뭔 회사야?


내 반응이었다. 그랬다. 미국 젊은 친구들은 웬만하면 다 아는 회사지만 난 그때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어쨌든 친구가 좋은 회사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싶어 바로 웹사이트에 접속해 지원서를 제출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미리 만들어놓은 레쥬메를 업로드하고 추가적으로 이름이나 주소 따위를 입력하는 게 끝이었다. 10분 정도 걸렸다. 이렇게 마감일에 우연히 지원하게 된 회사가 내가 일하게 된 실리콘밸리 기업이다.


면접 소식은 생각보다 늦게 들려왔다. 지원서를 넣은 지 거의 50일이 지난 2020년 1월 13일에 1차 면접 초대 연락을 받았다.


Happy New Year! Thank you for applying to the Financial Analyst internship opportunity @ Autodesk...


인사 담당자는 그 주 또는 다음 주에 면접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아래처럼 수업과 팀 과제 시간을 피해 면접을 볼 수 있는 시간대를 인사팀에 알려줬고, 1차 면접은 1월 17일 금요일 오후 5시(동부시간)로 최종 확정됐다:


My availabilities are:
Fri 17 – 2 PM PST and onwards
Fri 24 – Flexible all day
Mon 27 – 2 PM PST and onwards



1월 중순부터 MBA 1학년은 본격적인 면접 모드다. 나도 대략 2-3일마다 면접이 잡혀 있었다. 때문에 이 시기는 마음도 몸도 많이 바쁜 시기였다. 1월 5일에 딸아이 리나가 태어났기 때문에 어깨는 더 무거웠다. 아내의 산후조리를 도와주실 장모님도 1월 23일에야 이 곳 미국에 도착하셨기 때문에 그전까지 아내도 고생 많이 했다. 내가 최대한 돕는다고는 하지만, 학교도 가야 했고 면접도 보러 다녀야 했던 상황이어서 아내도 혼자 밤새 아기를 보느라 많이 힘들었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볼 수록 빨리 그럴듯한 미국 기업에 취업해야 한다는 나의 부담감도 커져갔다.


드디어 1월 17일, 대망의 1차 면접을 보게 됐다. 미국의 1차 면접은 거의 100% 온라인 화상 또는 전화 면접이다. 스카이프나 줌, 아니면 웹엑스를 이용한다. 나는 줌으로 1차 화상면접을 봤다. 이때만 하더라도 팬데믹 전이어서 화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너무도 어색했다. 줌으로 수 백번 수업을 듣고 토론을 경험한 지금 화상 면접을 본다면 두 배는 더 잘 볼 수 있다. 아무튼 해당 면접은 모든 면에서 꽝이었다. 내가 12월과 1월에 봤던 여러 인턴쉽 면접 중에 가장 못 본 면접이었다. 사실 오토데스크란 회사에 대해 리서치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산후조리와 육아 압박으로 컨디션도 좋지는 않았다. 그날 '면접 운'도 별로 안 좋았는지, 다른 날보다 왠지 모르게 말도 잘 안 나왔다. 면접 말미에 속으로 '아 오토데스크는 이렇게 떨어지고 끝이 나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나의 매니저인 당시 면접관은 '네 프로파일(경력, 학력, 특기사항 등)이 마음에 든다. 기다리면 2차 면접 초대가 갈 거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면접의 절반 이상은 운이라고 항상 믿어왔던 나로서도 믿기 힘든 순간이었다. 기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면접이 잡혔다가도 바람을 맞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진짜 면접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김칫국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혹시나인지 역시나인지, 1주일을 넘게 기다려도 2차 면접 초대 연락은 오지 않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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