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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Sep 18. 2020

스무살의 꿈, 서른살의 꿈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둘

12주 간의 실리콘밸리 여름 인턴쉽이 마무리됐다. 다행히 나를 좋게 평가한 내 매니저는 내게 MBA 졸업 후에 풀타임으로 돌아와 달라는 제안을 건넸다. 뿐만 아니라 2학년 학업을 병행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계속 일해 줄 것을 부탁했다.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정치 상황 때문에 외국인의 미국 취업이 참 쉽지 않은 시기라서 더욱 그렇다. 인턴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 더 중요해진 요즘이다. 다른 한인 동기들도 인턴쉽을 통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에서 풀타임 제안을 받은 상황이다.


풀타임 제안은 감사하지만, 2학년 중 학업을 병행하면서 짬을 내어 계속 일해 달라는 요청은 솔직히 100% 반갑지만은 않았다. 파트타임이라고 해도 주 10시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고, 너무 바빠지면 몸도 마음도 여유를 잃고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교 다니면서 생활비도 벌 수 있는 기회라 오케이 했다. 웃긴 건 내가 임시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시간당 임금이 샌프란시스코에 비해 30-40% 떨어진 것이다. 주거 및 여타 생활비를 감안하면 이해가 가면서도 여전히 기분은 찝찝하다. 난 여전히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 있는 팀에서 일하는데...


할 일이 너무 많은 지금부터가 걱정이다. 나는 내 신체 및 정신 가동률이 70-80%를 초과하지 않는 편을 선호한다. 가동률을 그 이상으로 높이면 그때부터는 일은 더하고 성과는 덜 나서 모두에게 손해다. 난 적당한 빈둥거림을 사랑한다. 그게 내겐 행복의 조건이다.


앞으로 최소 4개월 간 적정 가동률 하에서 MBA,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졸업 프로젝트(NASA와 하게 돼 기대가 큼), 파트타임 근무, 글쓰기(+읽기), 육아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모두 잘하려고 하면 불가능하다. 단 한 가지도 낙제하지 않는 선에서 모두 적당한 성과를 내는 게 목표다.




원격으로 시작해 원격으로 끝난 실리콘밸리 인턴쉽. 꿈같은 얘기다. 2000년이 아니라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원격으로나마 여러 경제활동과 지적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허락됐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여러 IT 기술이 없었다면 내 미국 MBA 유학은 인턴쉽도 한 번 못해보고 시시하게 끝나버렸을 것이다. 원격 수업도 불가능했을 테니 졸업 자체가 1년 뒤로 밀렸을지도 모른다. IT 기술은 내게 1년이 넘는 시간을 벌어준 샘이다. 지난 20년 간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많은 기술들이, 오늘 나로 하여금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니. 소름 돋는 일이다.


실리콘밸리는 스무살 대학생 내게 꿈이었다. 2010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지원해준 장학금으로 미국 대학/연구실 투어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덕분에 미국 서부와 동부의 여러 명문 대학과 그 연구실, 그리고 주변 회사들을 방문해 볼 수 있었다. 그중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곳은 단연 실리콘밸리다. 스탠퍼드 대학교 캠퍼스 야자나무의 아름다움과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의 충격적 자유분방함에 내 심장은 내내 두근두근했다. 스탠퍼드에서 MBA를 하면 진짜 멋지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탠퍼드 잔디밭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었고, 언젠가 실리콘밸리에 입성해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구글 자전거를 타고 구글 캠퍼스 견학을 했었다. 설레는 스무살의 꿈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10년 전 스탠퍼드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


10년 뒤 서른, 안타깝게 스탠퍼드 MBA는 나를 서류전형에서 광탈시켰고, 구글은 내게 면접 기회를 줬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20년, 실리콘밸리는 결국 내 스무살 꿈에 손을 내밀었다.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스무살 나의 꿈은 정말 이뤄진 것일까? 


서른살의 내가 보기에 스무살의 내 꿈은 결코 꿈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뭘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좋아 보이는 걸 머릿속에 그리면서 꿈이라고 했던 것이다. 내가 뭘 진심으로 좋아해서 '아 언젠가는 꼭 이런 일이 하고 싶다'라고 꿈꾼 게 아니라 '저거 멋있어 보이네. 저게 내 꿈이라고 말하면 좋지 않을까'하고 게으르고 피상적인 몽상을 품은 것에 불과하다. 내 꿈이 아니라 남의 꿈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내게 주어진 기회는 꿈을 이루기보단 묵은 꿈을 깨트린 것에 가깝다.


사실 꿈뿐만이 아니다. 스무살에 내가 옳다고 믿었던 가치 중에 아직도 여전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 서른살의 나는 스무살의 내 믿음과 가치관 중 최소 80%를 부정한다. 마흔살의 나도 지금 나를 비슷한 수준으로 부정할 것이므로, 지금 나를 너무 신뢰하면 안 된다. 나이가 들 수록 내 생각과 믿음에 대한 확신은 떨어진다. 좋은 의미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리콘밸리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되겠다'라는 건 꿈이 아니었다. 꿈은 '의사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아픈 사람을 고치고 싶다' 같은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글이 쓰고 싶다'. 이런 게 꿈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물론 나중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의사라서 사람을 고치는 게 아니고,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가 의사를 만든다. 작가라서 글 쓰는 게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실리콘벨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기술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겠다' 같은 게 꿈이다. 저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실리콘밸리가 좋은 무대가 되어줄 뿐이다. 장소나 직업 그 자체는 꿈이 아니라 선호라고 하는 편이 맞다. 꿈은 '되고 싶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로 표현된다.


안타깝게도 서른살 내 꿈은 아직 미정이다. 세상을 기술로 더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거창한 꿈같은 건 내게 아직 없다. 이제는 진짜 꿈을 꿔볼 수 있는 좋은 나이에, 좋은 터에서 새 출발 할 수 있게 된 기회에 그저 감사할 뿐.



커버 이미지: Photo by Jose Rag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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