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대한 열정, 우리 이모할머니가 주신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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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you stop learning, you start dying."
- Albert Einstein -
6월 23일 아내와 함께 제천에 있는 이모할머니의 시골 별장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정말 가기 싫었다. 마침 23일 토요일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한 CFA level II 시험일이었고, 적어도 이날 당일만은 시험 종료를 만끽하면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8시간의 피로한 시험이 끝나자마자 기차를 타고 곧바로 제천으로 향한 건 엄마의 부탁(?) 때문이었다. 이모할머니가 이번 주말에 꼭 들러주길 여러 번 전화로 당부하셨다고, 좀 피곤해도 같이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귀찮았지만 날 키워주신, 지금은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가족도 볼 수 있을 때 봐야 하는 거다. 아무튼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녀온 이번 주말 1박 2일의 여정은 내게 기대치 못했던 자극을 선사했다.
이모할머니 별장은 제천역에서도 30분이나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깡시골이었다. 가는 길에 옥수수 밭이 많았는데, 택시기사님 말씀으로는 보통 옥수수가 아니라고 한다. '종자 옥수수'라는 것인데 옥수수 한 알에 50원이나 하는 고가의 농산물이란다. 여름 3개월만 일하고 1억 정도 수확을 거두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순간 3개월 농사짓고 9개월 놀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솔깃했었다. 30분이 지나 도착한 별장에서는 이모할머니 할아버지와 내 부모님이 마당에서 수박을 드시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속이라 여름 서울 도시 한복판의 무더위는 온데간데 없었고 하늘에 별은 촘촘했다. 올해 처음으로 먹은 수박도 꿀맛이었다. 오기 귀찮다고 아내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던 게 이내 부끄러워졌다. 해보기도 전에 귀찮아하고 짜증내면 안 된다는 것, 이번 여정의 첫 번째 교훈(?)이었다.
도착한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마당에서 한바탕 토크쇼가 벌어졌다. 이모할머니는 교육자시다. 그 옛날 성주 깡시골에서 대구로 고등학교 유학을 가신 뒤 교대를 졸업하신 대단한 분이시다. 여자는 고등학교 유학은 커녕 대학도 잘 안 보내던 시절이다. 지금은 압구정동에서 잘나가는 유치원을 운영하시는데 역시 교육자이자 경영자 마인드가 충만하시고 말씀도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부부의 신혼 생활부터 부모 자식의 도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까지 2시간 동안 토크를 진행하셨다. 다 좋은 말씀이셨지만 특히 나에게 가장 충격을 줬던 건 72세이신 이모할머니가 올해 중국으로 1년 유학을 가신다는 고백이었다. 이미 현지답사를 끝내고 심천에 민박집과 주거 계약을 하셨단다.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기피하는 유학을 72세 할머니가 가신다니. 그것도 이모할아버지는 홀로 깡시골에 남겨두시고.
이런 이모할머니의 계획은 급작스러운 게 아니라 차곡차곡 긴 시간 준비된 거였다. 이미 유치원을 운영하시면서 지난 몇 년간 방송통신대학교에 등록하시고 중국어 전공 4년 과정을 마치셨단다. 그것도 자식들 모르게 하신 거다. 젊은 사람들도 힘든 일을, 노인께서 유치원을 운영하시고 집안을 돌보시면서 새로운 언어로 학위를 따시다니. 얘기를 듣는 내내 머릿속에 조그만 충격의 조각들이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신선한 자극이었다. 원래 자수성가하신 대단한 원장님인 건 알았지만 그뿐이었다. 이모할머니와 긴 시간 대화해 보는 것 자체가 평생 처음이었다. 가시는 할머니를 흔쾌히 보내주시는 이모할아버지도 대단하신 분이신데, 그 시절 서울대를 나오시고 행시를 거쳐 고위 공무원을 지내셨다. 몇 년 전에 은퇴를 하시면서 제천에 소박한 별장을 하나 지으신 거다.
이모할머니는 본인의 공부에 그치지 않으시고 내게 중국어 학습을 권하셨다. 영어만으론 안된다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중국어를 배우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당신의 이런 행동들이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깊은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 자체가 더 큰 자극이 됐다. 이런 조언을 해주시는 72세 할머니라니. 배움에 대해 이렇게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계시다니. 외가 쪽 피가 남다른 걸까. 우리 엄마도 못지않게 배움에 목마르신 분이다. 내가 MBA 갈 거라고 하면 엄마는 항상 본인도 가고 싶다고, 너처럼 이렇게 유학이 가능한 시대에 태어난 건 행운이라고, 지금이라도 나를 따라서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신다. 이 분들 옆에 있으니 내가 이것저것 배운다고 끄적대는 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 72살에도 유학 가는데 30살 내가 무슨 핑계를 댈 수 있을까. 주제가 그 무엇이든 내 건강과 정신이 허락하는 데 까지 우리 이모할머니처럼, 우리 엄마처럼 배움을 멈추지 않고 살고 싶다.
Part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