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다 하기 전엔 잠 못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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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커졌습니다. 처음엔 그저 퇴사하면 시간이 많을 테니 글이나 좀 써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글을 쓰면 머릿속 애매하게 얽혀있는 생각들이 또렷해진다고 하길래 정말 그런지 궁금했습니다. 글쓰기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글쓰기는 근육 같아서 자꾸 쓰면 는다길래 진짜 그런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됐고, 매주 1편씩 총 4편의 글을 발행했습니다.
퇴사를 꿈꾸는 영혼들이 많아서일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들을 멋대로 늘어놓았을 뿐인데 과분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솟구치는 조회수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짜릿함을, 반대로는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짜릿함 때문에 자극적인(특히 퇴사 그 자체를 주제로 팔아먹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부담감 때문에 눈치를 보거나 주제를 가려 쓰지도 않으려 합니다.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대로 그저 꾸준히 쓰겠습니다.
시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회수가 오르고 구독자가 많아져서 글의 퀄리티를 꾸준히 높여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졌다는 겁니다. 쉽게 잘 읽히면서,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고, 너무 진지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상하게 공감이 가는 그런 글을 계속 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끈기가 부족하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나둘씩 실행해가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서 퇴사를 딱 5일 앞둔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앞으로 1년 백수기간 동안 매일 따를 루틴을 정하는 거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데일리 루틴 프로젝트'라고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결국 이런 거다: 시간표 같은 구체적 계획에 얽매일 재주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 계획이 없으면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으니, 시간 순서는 제쳐두고 여하튼 이것들 만은 빠짐없이 매일 하자는 거다. 쌓이고 쌓여서 산이 되길 바라면서.
생각해보자. 일단 하루는 24시간. 이 중에서 아마 7시간은 자고, 2시간은 먹고 씻고 멍 때리겠지. 2시간은 집안일을 하고 아내와 산책해야지. 그럼 하루 동안 내게 남는 시간은 대략 13시간. 그럼 이 시간에 내가 앞으로 1년간 매일같이 버릇처럼 해야 할 일들은?
1. 운동(1h, 이동시간 15분 포함)
매일 헬스장에 간다. 무슨 근력운동이든 상관없다. 걷고 뛰는 건 아내와 헬스장 밖에서 따로 하자. 힘든 날은 대강 해도 된다. 대신 아픈 거 아니면 매일 한다. 난 어차피 천성적으로 운동이 몸에 안 맞기 때문에 이 정도 시간이면 차고 넘친다.
2.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학습(3h)
금융업을 떠나서 Data Science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회사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다. 지금은 짬짬이 Dataquest.io와 Udemy에서 파이썬을 학습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공짜나 공짜에 가까운 양질의 학습자료들이 널려있다. 이런 시대에 산다는 게 너무나 큰 행운이다. 퇴사하고 나면 다음주 부터는 시간이 많아질 거라 Coursera에서 Rice University의 An Introduction to Interactive Programming in Python (Part 1) 수강을 시작할 계획이다. 기초가 좀 쌓이고 나면(아마 2~3개월 뒤) Udacity의 Data Scienist Nano Degree 과정을 수료할 참이다. 이 밖에도 선형대수, 미분방정식 등 학습할 내용이 산더미다... 아무튼 학교 안 가도 배울 건 너무 많다.
3.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젝트(2h)
Udemy와 Datacamp의 project course들을 통해서 배운 이론들을 실제로 써먹어 봐야 한다. Kaggle competition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앞서 언급한 Udacity Nano Degree도 상당 부분 제휴 기업들(스타벅스, 구글 등)의 현실 문제들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많이 기대된다. 근데 일단 가장 먼저 진행할 프로젝트는 Algorithm Trading이다. 그래도 그나마 아는 게 금융이니까 짬뽕해서 써먹어 보자.
4. 독서(0.5h)
원래 독서가 유일한 취미다. 고작 하루 30분으로 배정한 이유는, 분명 책이란 게 읽기 싫은 날이 있기 때문이다. 1시간으로 배정해 두면 분명히 못 채우는 날들이 많을 거다. 그러니 싫은 날도 최소 30분은 읽는 걸로 하고, 더 읽고 싶은 날은 그렇게 알아서 하는 걸로 하자. 지금 읽고 있는 책은 Barbara Oakley의 A Mind for Numbers와 Lawrence A. Cunningham의 The Essays of Warren Buffett: Lessons for Corporate America. 다음 읽을 책은 아마도 Steven Pressfield의 Nobody Wants to Read Your Sh*t. 글쓰기 관련 책이다. 흠 그러면서 나는 지금 sh*t을 쓰고 있는 건가.
5. 영어(1h)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건 내 꿈이다. 근데 미국에 살지 않으니까 잘 늘지 않는다. 영어 쓸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벽을 만난 느낌. 지금 하는 영어 공부는 매주 1회 영어 스피킹 모임에 나가는 것과 출퇴근 길에 영어 팟캐스트를 듣는 정도. 아, 틈틈이 미티영 어플도 사용하고 있긴 하다. 뭔가 더 좋은 공부방법은 없을까? 뭐 안되면 미드를 하루 한편 보는 방법도 있으니 일단 매일 빠짐없이 영어를 듣고 따라하자.
6. MBA 준비(2h, 이건 아마 연말까지만)
미국 MBA 지원 시즌이 다가왔다. 미국 MBA는 보통 1년에 3번 지원서를 받는데 각 회차를 Round라고 한다. 1라운드 지원 마감은 당장 9월 코앞이고 2라운드는 1월 마감이다. 개인적 바람은 어느 학교든 1라운드에 합격해서 2라운드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는 거다.
7. Recall(0.5h)
일종의 명상시간인데, 그날 학습한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는 시간이다. 주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 중 하나가 단순히 그날 배운 내용들을 복기(recall)하는 거란다. 딱 봐도 귀찮은 일인데 그래도 한번 해보련다. 더 이상 비효율적인 학습에 낭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은 나이니까.
= 총 10시간. 자유시간 13시간 중 3시간은 남겠다. 남을까? 과연.
내가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루틴을 구성하는 task 종류와 총량이 부담스럽긴 한데, 사실 총 10시간이면 지금 회사 근무하고 출퇴근하는 시간이랑 비슷하다. 그냥 회사 다닐 시간을 고스란히 나한테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거뜬하지 않을까 싶다. 백수가 솔직히 이 정도는 해야지. 거기다 전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순서도 내 맘대로 하면 되는데. 관건은 피곤하고 질리고 귀찮아도 그저 매일 꾸준히 하는 거다.
1년을 하루 같이 매일. 아 근데 주말은 어쩌지?